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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4 10:38 오탈자 수정




   아마미야 타케루는 집안일에는 영 재주가 없었다. 가사에 재능이랄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게 옳았다. 5명의 가족이 함께 살 때는 어머니가 주로 가사를 전담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집안일의 대부분을 마사키가 담당했다. 타케루가 했던 일이라고는 히로토와 함께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일이나 청소할 때 가구를 옮겨 놓는 정도가 다였다. 그런 이유로, 동생 둘 다 성인이 되고 처음 타케루가 집에서 나와 혼자 살 땐 도무지 집이 정리되지를 않아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더랬다.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 타케루가 여기저기서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려면 잘 정돈된 공간이 필요했다. 20년이 넘도록 가사 일에 제대로 손을 댄 적이 없던 타케루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람이란 아쉬운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되는 법이었다. 야무지고 꼼꼼하지는 못해도 어쨌든 타케루 혼자 생활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환경을 꾸리며 살았다. ‘혼자 생활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죽은 듯 자던 남자가 눈을 떴다. 한밤중에 물가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타케루의 거처로 오게 된 지 반년 조금 더 되는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눈을 뜬 후에도 목소리조차 잘 내지 못했던 남자가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야 타케루는 그의 이름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타츠야’라고 했다. 눈을 뜬 지 사흘 정도 됐을 때였다. 사실 타케루는 그 전부터 남자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책상 앞 벽면에는 소드 지구의 지도 위로 반년 전쯤의 신문 기사가 스크랩되어 붙어 있었다. 산왕 지역의 부둣가에서 무겐의 창시자가 차에 치였으며, 사고로 인해 물에 빠진 후 발견되지 않아 실종 처리 되었으나 사실상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범인은 스스로 고의적인 살인 시도였다고 자백까지 했다고 하나, 알아서 좋을 정보는 아니었기에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타츠야에 대한 기사 위로는 다른 사건 자료를 덧붙였다. 다만, 그가 살리고자 했던 남자는 살아 있으며, 무겐이라는 집단은 해체되었다는 소식은 전했다. 타츠야는 안심한 표정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운반책 일을 할 때 알게 된 뒤 세계의 의사 말로는 재활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년이나 움직이지 않았던 몸이 하루아침에 회복될 리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입장은 못 되어 병원에 갈 수는 없었으나, 뇌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재활 치료만 제대로 한다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재활에 필요한 기기며 사람은 그 의사를 통해 구했다. 돈만 주면 의료 기구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수술까지도 해 주는 인간이었으니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원래부터 몸이 상당히 건강했던 모양인지 상대적으로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했다. 빠르다고는 하나 6개월이 지나서야 혼자서 걸을 수 있었다. 본인에게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괴로운 일이었을 텐데도 힘든 기색 한 번 비추지 않은 걸 보면 몸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어지간히 강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때쯤부터 타츠야는 타케루를 대신해 집을 조금씩 치우기 시작했다.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평범한 샐러리맨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차라리 종일 집에 있는 자신이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혼자서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만큼 충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넣고, 제대로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날짜에 맞춰 쓰레기를 내놓는 일 정도는 할 만했다. 일반 쓰레기 봉지에 들어가 있는 맥주 캔을 보고 부드럽게 잔소리를 할 기운도 남았다.

   한 달쯤 더 지나서는 요리를 시작했다. 타츠야는 요리를 잘했다. ‘이토칸’이라는 식당을 경영했다고 했다. 좁디좁은 동네에서 단골 장사로 연명했다고는 했지만, 단순히 인맥에 의존해서 운영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집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먹기 시작하고서는 치워야 할 것이 더 많아졌으나 크게 힘든 일도 아니었고, 밥이 맛있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일 년 정도가 더 지났다. 타츠야가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이후로 1년 동안 타케루는 다소 피를 보긴 했으나 쿠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말로만 들었던 아마미야의 동생 둘과 의사―타츠야를 치료해 줬던 그 의사였다.―가 피투성이의 타케루를 데리고 왔을 때는 타츠야도 적잖게 놀랐더랬다. 아마미야 형제는 딱 보아도 타케루가 지내던 곳을 전혀 모르던 눈치였다. 그곳에 있는 ‘낯선 사람’이었던 타츠야는, 잔뜩 가시를 세우며 자신을 경계해 오던 아마미야 동생들의 태도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을 뻔했으나, 함께 왔던 의사 덕에 다행히도 불필요한 오해는 면할 수 있었다. 동생들은 타케루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가거나 그것도 안 되면 타케루의 집 근처에서 함께 살기를 원하는 듯했으나, 의식이 돌아온 타케루는 한사코 거절했다. 덕분에 타케루를 보살피는 일은 타츠야가 도맡게 되었다. 거짓말로라도 힘들지 않다고는 못 하는 일이었지만, 싫은 것은 아니었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기꺼이 타케루의 병간호를 할 생각이 있었다. 종종 동생들이 찾아와 생활이나 치료에 필요한 물건들을 전해 주기도 했으니 못 버틸 정도도 아니었다. 총상이 몇 군데나 돼서 정말로 죽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때도 있었으나, 다행히 타케루의 명줄은 꽤 질긴 모양이었다. 몇 번의 고비가 지나간 후로는 놀랄 만큼 회복이 빨랐다. 타츠야와 타케루의 2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내일, 아침 일찍 집에 가 볼까 하는데.”


   타츠야가 타케루의 거처로 온 지 2년이 약간 안 되었을 때였다. 타케루는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추고 타츠야를 바라봤다. 타츠야는 타케루보다 더 먼저 밥그릇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늦어지긴 했지만, 이젠 너도 나도 멀쩡하니까. 걱정했을 녀석들도 있을 테고, 나오미한테도 가 봐야지.”


   그러고 보니 동생이 있다고 했다. 여동생이었던가. 타츠야와 함께 경영하던 음식점을 지금 혼자 꾸려 나가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녀석도 꽤 좋아했으니까, 이토칸.’ 하고 말하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깔려 있었다. 동생을 꽤 아끼는 모양이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타케루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브라콤이었으니 알 만도 했다.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잘 알았다.


   “그렇겠네.”

   “너도 가끔은 동생들한테 얼굴 좀 비추는 게 어때? 몸 나은 뒤로도 한 번도 안 찾아갔지?”

   “네가 가고 나면.”

   “미루는 건 안 좋은 버릇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표시이긴 했으나, 의미 없는 움직임이라는 것은 타츠야도 알았다. 또 시작되려는 잔소리를 대충 넘기려는 게 뻔히 보였다. 젓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말을 꺼내도 소용없을 테니 식사나 마저 할 생각이었다. 저녁 식사는 여느 때처럼 맛있었고, 아무리 많은 반찬을 내놓더라도 2인분뿐이었으니 뒷정리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식사인가.”

   “응?”

   “짐, 챙겨 놔야 하지 않나.”

   “짐이라니? 짐 같은 거 있지도 않아. 웬만한 건 다 네 거니까.”


   타츠야에게 물컵을 건네는 타케루는 대답할 생각은커녕 질문을 제대로 들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2년간 함께 살며 ―그 중 거의 1년은 대화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였지만― 타케루가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못 된다는 걸 잘 알았던 타츠야도 굳이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날짜가 지나가는 건 금방이었다. 평소보다도 좀 더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시간에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해는 떴고 아침이 밝아 왔다. 입맛이 없어 평소보다 간단하게 해결한 아침 식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당기지 않더라도 제대로 챙겨 먹을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굳이 말로 뱉지는 않았다.

   타츠야의 말대로 짐은 없었다. 칫솔과 같은 잡다한 물건은 있었지만, 굳이 챙겨 갈 필요는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셔츠의 단추가 단정히 잠겼다. 핏자국이 번진 채 물에 푹 젖어 있던 셔츠를 버리고 그것을 대신하기 위해 타케루가 처음 사 왔던 옷이었다. 옷을 다 갖춰 입은 타츠야의 손에는 작은 가방조차도 없었다. 옷이나 조금 길어진 머리카락 길이를 빼고는 타케루의 집으로 왔을 때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씁쓸한 커피를 마저 비우고 습관처럼 담배를 물었다. 원래라면 금방 끝에 불이 붙어야 했으나 타케루의 손은 평소보다 더 오래 책상 위를 뒤적이고 있었다. 늘 담뱃갑과 함께 두던 것이 어디로 갔는지 라이터가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새 라이터를 사러 나가야 하나 고민하며 입술 새에서 담배를 뺐다.


   “아마미야.”


   인사라고 할 것도 없이 나서는가 싶었던 타츠야의 부름에 타케루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타케루를 바라보는 타츠야는 여느 때처럼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같이 갈래?”

   “……?”

   “나오미한테 소개도 해 줄 겸.”


   타케루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타츠야의 의중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타츠야와 눈을 마주친 채 멈춰 있는 타케루의 모습에 타츠야는 결국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빌려줄 테니까. 응?”


   타츠야의 손 안에서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은 타케루가 조금 전까지 찾고 있던 라이터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라 생각했던 그도 제법 뻔뻔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타케루가 실소를 터뜨리자 타츠야는 손을 흔들며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옷 입고 나와.”


   대답이야 뻔히 안다는 듯 타케루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달각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혔다. 정말이지 만만치 않게 제멋대로인 남자였다. 까만 가죽 코트에 팔을 꿰고, 담뱃갑을 챙겼다. 다시 문이 여닫혔다.


*


   2년 만에 보는 거리의 모습은 가게 몇 개가 달라졌거나 사라진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이토칸은 여전히 타츠야의 기억 속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산왕가에 오지 않는 동안 이토칸이 없어졌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토칸 앞에 바이크가 멈춰 서고 옛 동료가 만들어 줬던, 철자 틀린 간판을 봤을 때는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던 것이었다.

   점심 시간이 시작되려면 아직 두 시간가량 남았다. 청소를 하거나 재료를 다듬는 준비 시간 동안에는 손님을 받지 않았으나, 장사를 하지 않는 시간에도 가게 문은 항상 열어 두었었다. 나오미는 시끄럽고 방해된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타츠야는 언제든지 동료들이 올 수 있어야 한다며 한사코 고집했던 것이었다. 가볍게 힘을 줘 잡은 문이 쉽게 밀리는 걸 보면, 타츠야가 사라진 뒤에도 나오미는 오빠의 말을 따라 주는 모양이었다.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은 게 눈에 뻔히 보였지만, 타츠야는 함께 들어갈 생각인 듯, 느긋하게 시동을 끄는 타케루를 기다렸다. 조심스럽게 들어선 이토칸은 퍽 조용해서, 툭툭툭 투박한 칼질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딸랑이는 풍경 소리에 그마저도 멎자 가게의 분위기는 고요함에 더욱 가라앉는 것 같았다. 기다란 나무 스탠드 너머에서 야채를 썰고 있던 나오미는 꼭 죽은 사람을 만난 얼굴이었다.


   “다녀왔어.”

   “……어서 와.”


   타케루는 사고 이후 자신을 치료해 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2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진 않기로 했다. 나오미도 무사히 잘 돌아왔다면 그걸로 됐다는 듯했다.

   객관적으로 타케루의 인상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겠지만, 타츠야 덕에 어렸을 적부터 주변에 말끔한 인상인 사람이 그다지 없었던 탓인지 나오미가 타케루를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성격 좋은 그녀를 타케루도 나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었다. 둘 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는 없었어도 분위기는 제법 괜찮았다.

   급하게 내 온 카레는 나오미 본인이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상당히 맛있었다. 함께 운영하던 때까지만 해도 손님에게 내는 요리를 타츠야가 주로 만들곤 했지만, 지금이라면 오히려 나오미를 보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토칸을 혼자 경영하던 2년을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닌 듯했다. 그 발전에 놀라워하며 맛있다고 말해 주는 타츠야에게 나오미는 조금 자신감 있는 얼굴로 웃었다.

   시침의 끝이 11시 눈금에 다다랐다. 30분 후에는 손님을 받을 시간이었다. 타츠야는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꽤 좋아했지만, 타케루는 달랐다. 슬슬 이야기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나오미, 내 바이크 아직 있어?”

   “응, 있는데. 어디 가게?”


   계산대 한쪽에 늘 그대로 있던 열쇠가 오랜만에 사람의 손을 탔다. 집 열쇠, 가게 열쇠, 바이크 키. 잘그락 소리를 내며 제 손으로 돌아온 것들을 보니 돌아왔다는 게 겨우 실감이 났다. 열쇠 뭉치를 보고 있으려니, 연갈색 가죽과 함께 매여 있는 열쇠 하나가 문득 기억에서 떠올랐다.


   “코하쿠는?”

   “이제야 생각났어? 본인이 알면 서운해하겠네.”

   “…….”

   “바이크 키, 제대로 돌려받았을 거야. 얼마 전에는 츠쿠모 씨랑 같이 가게에도 왔었고.”


   뒤늦게 떠올렸어도 영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던 모양인지 타츠야는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직접 만나 보면 되잖아.”

   “나중에. 급해질 필요도 없고.”

   “오늘 같이 온 사람 쪽이 더 급한가 봐?”


   2년 만에 만난 나오미는 눈치도 제법 생긴 듯했다. 게다가, 그리 능글맞은 성격은 못 되던 동생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타츠야를 놀릴 정도면 확실히 2년이라는 시간이 길긴 긴 모양이었다. 그런 성격도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타츠야의 손이 짓궂게 나오미의 머리칼을 흩뜨렸다. 아, 정말! 짜증이 잔뜩 배어 있는 나오미의 목소리에 타츠야는 도리어 웃어 버렸다.


   “가게는 내일부터 나올게.”

   “늦지 말고 와.”


   문이 여닫히며 종이 울렸다.

   바이크 키를 받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타케루는 벌써 밖에 나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액셀을 당기려던 타케루는 조금 늦게 따라 나온 타츠야를 보곤 멈칫 손을 멈췄다. 타츠야는 웃으며 타케루의 어깨에 손을 얹고 톡톡 두드렸다.


   “5분만 기다려.”

   “5분?”

   “내 바이크 가져오게.”


   타케루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곤 타츠야는 ‘내 것도 있는데 굳이 같이 탈 필요 없잖아.’라며 말을 보탰으나,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반응에 타츠야도 도리어 미간을 밀어 올리며 왜 그러냐는 듯 타케루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돌아가려고?”

   “응. 가게는 내일부터 나오겠다고 했으니까.”

   “짐, 없다고 하지 않았나?”

   “무슨 소리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는 두 사람의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깔렸다. 빙빙 헛돌기만 하는 대화에 타케루도 타츠야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돌연, 타케루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무언가 퍼뜩 떠오른 듯한 타케루는 그답지 않게 놀란 것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너…….’ 하며 입을 여는 타케루의 표정은 평소 본 적 없는 것이었기에, 타츠야도 괜히 더 호기심이 일어선 그의 말에 평소보다 더 귀를 기울였다.


   “동생은?”

   “나오미? 저 녀석이라면 괜찮아.”

   “……보살펴 줘야 하지 않나?”

   “여태까지도 나 없이 혼자 잘 해 온 걸 보면 하루 정도는 괜찮아.”

   “가게 얘기가 아니야.”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냐는 말이다. 예상 밖의 말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는 반응에, 크게 표는 나지 않았어도 타케루는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타츠야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의외인 일인가 싶었다. 다시 돌아가면 안 되는 거였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벽에 부딪힌 느낌은 상당히 불유쾌한 것이어서 멋쩍은 기분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될 일이기는 했다. 집안일을 조금 해 주고 있다고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더부살이하는 처지였으니 상대방의 생각을 묻는 게 먼저였건만.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뱉은 타츠야가 어색하게 웃었다.

   불편하다면 다시 집으로 들어갈게. 그렇게 말을 뱉으려던 참이었다. 문득 어제저녁부터 영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던 타케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건 뭐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생각나는 답에 타츠야의 입꼬리가 꿈틀 움직였다.


   “그 집에서 내가 나가 주길 바라?”

   “대답을 안다는 얼굴인데.”

   “아니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도 있어.”

   “……바이크나 가져와.”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웃음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히 기뻐서 웃는 웃음이었다. 뭐, 타츠야 딴에는 그랬으나, 타케루는 차라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었다. 바이크 손잡이를 괜히 힘주어 잡는 손 위로 타츠야의 손이 턱 하고 올라갔다.


   “금방 올게.”


   타케루의 눈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타츠야는 가볍게 뛰어서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5분은 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어린아이도 가지고 다닌다는 스마트폰 하나 없는 타케루에게는 남들보다 좀 더 길게 느껴질 것이었다. 담배라도 피울까 했지만, 생각해 보니 아직 타츠야에게서 라이터를 돌려받지 못했었다. 그 덕분에 타케루가 기다림의 시간 동안 할 만한 것이라고는 별것 없는 거리를 둘러보는 것이 다였다. 볼 것 없는 거리를 훑어본 끝에 시선이 멈춘 곳은 역시 ‘ITOKAN’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였다.

   타츠야의 선택이 싫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지만, 타츠야는 그녀가 기댈 수 있는 하나뿐인 가족일 것이었다. 게다가 치안도 좋지 않은 이런 동네였다. 이대로 형제와 떨어져 살게 되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타츠야도 제 동생을 꽤 아끼는 듯했다. 역시 마냥 기뻐하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멀리서 묵직한 배기음이 들려 왔다.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타케루는 어렵지 않게 그 주인공이 타츠야임을 알 수 있었다. 발로 뛸 때는 시간이 조금 걸렸어도, 차와 함께 돌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과연 바이크 광의 것인 만큼 그가 타고 온 바이크는 위풍당당이란 말과 잘 어울렸다. 애마와 오랜만에 만난 타츠야도 꽤 기분이 고양되어서는, 기분 좋게 타케루의 바이크 옆으로 멈춰 섰다. 

   그런 기분을 망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네 동생…… 정말로…….”

   “괜찮아. 혹시 여자애라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멀쩡한 남자 몇 명쯤은 눈 감고도 때려눕힐 수 있는 녀석이니까. 적어도 이 동네에서만큼은 쟤 건드리려고 하는 사람 없을걸.”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제법 단호한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타케루는 타츠야의 답에 영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여’동생이어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그의 시선은 나오미가 있을 식당에 머물러 있었다. 나 참……. 짧게 한숨을 뱉고, 타츠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너 말이야. 저 녀석이 몇 살이라고 생각해? 내가 일일이 챙겨줘야 할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났어.”

   “그렇더라도 유일한 가족이지 않나.”

   “그런 가족이라도, 나는 너랑 있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유한 성격의 타츠야답지 않게 힘이 들어간 말이었다. 시종 다른 곳을 보고 있던 타케루도 그 대답에만큼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타츠야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타케루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뭇 진지한 타츠야의 표정도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 얼굴로 그런 답을 받으니, 타케루도 더 이상 말을 보태지 못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타케루는 무어라 선뜻 말을 내지는 않았지만,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는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타츠야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오늘 아침밥 안 먹은 만큼 저녁은 제대로 해 줄게.”


   어느새 기분좋은 웃음을 띤 타츠야는 타케루의 어깨를 툭 치고는 먼저 달려나갔다. 시원스러운 엔진음이 거리를 뻗어 나갔다.


   “기대할게.”


   타케루도 액셀을 당겼다. 그리 속도를 내고 있지 않던 바이크를 따라잡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대의 바이크가 속도를 맞춰 나란히 달렸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바람이 시원했다.

공백 제외 2,004자




   날이 딱 알맞게 좋았다. 요 며칠은 곧 여름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꽤 더웠기에, 이렇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낮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소동―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꽤 큰 사건이었지만―이 모두 끝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늘 사건 사고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인 만큼 얼마나 지속될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금의 이 평화로움을 코하쿠와 츠쿠모는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바로 어제까지 이어졌던 더운 날씨에도 이토칸이나 바 오다케 같은 곳을 돌아다녔건만, 외출하기에 딱 알맞은 날이었음에도 오늘은 왠지 코하쿠도 츠쿠모도 영 밖에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대신 츠쿠모는 따스한 햇볕에 몸이 조금 나른해져서는 낮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잤다가는 분명 밤에 잠이 오지 않으리라.


   “커피라도 타 줄까?”

   “맥주가 좋은데.”

   “어제 다 마시고 없어.”


   젠장. 따뜻한 걸 먹느니 차라리 차가운 맥주를 먹는 편이 더 잠이 달아날 것 같았다.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코하쿠는 다시 앉지 않고 구태여 주방으로 가 냉장고와 찬장을 열어 보고 있었다. 없으면 굳이 찾아볼 필요 없는데. 츠쿠모의 중얼거림을 코하쿠도 듣긴 했으나 그냥 넘겨 버릴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츠쿠모도 더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곧 커피포트 안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고, 티스푼이 컵에 부딪히는 소리가 몇 번 들려왔다. 코하쿠가 다시 츠쿠모의 옆으로 돌아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새콤한 향이 올라오는 컵이 하나 들려 있었다.


   “뭐야?”

   “아이스티.”

   “그건 또 언제 사 놨데.”


   말은 그렇게 했어도 어쨌거나 땡큐, 하는 인사는 잊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얼음까지 띄워 놓은 아이스티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새콤달콤한 맛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마셔 보니 나쁘지만도 않았다. 입안 가득 차는 얼음을 우득우득 씹어 먹었다. 그거 이빨 상한다. 코하쿠의 잔소리에 츠쿠모는 아직 그럴 걱정 할 나이는 아니라며 입에 있는 얼음을 마저 씹어 삼켰다.

   평일의 한낮은 조용했다. TV도 켜지 않은 집안의 조용함은 어색한 공기를 부르기에 딱 좋았지만 츠쿠모도 코하쿠도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항상 온갖 소음이나 말소리로 떠들썩한 곳에서만 지내 왔던 만큼 ―물론 코하쿠도 츠쿠모도 숨 막히는 침묵을 견뎌야 했던 1년이 있었지만―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었다. 괜찮은 일이긴 했으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시간이 어색하긴 했다.


   “코하쿠 씨.”

   “응?”

   “이거 꿈인가?”


   바닥에 앉아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채 조용히 천장을 보고 있던 코하쿠가 츠쿠모를 쳐다봤다. 소파 맞은편의 벽지만 빤히 바라보던 츠쿠모도 천천히 시선을 옮겨 코하쿠를 마주 봤다.


   “꿈이면 빨리 깼으면 좋겠네.”

   “……?”

   “자는 동안 당신 또 어디 가 버리면 따라가기 귀찮잖아.”


   츠쿠모는 피식 웃으며 아이스티를 또 한 모금 마셨다. 농담처럼 던진 말들이 제법 뼈아팠다. 코하쿠는 바닥에 잠시 컵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한 개비를 입에 물고, 팔을 들어 츠쿠모에게도 권했다. 츠쿠모의 담배가 다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권해 오는 것을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같은 종류였기에 맛도 다르지 않았다. 코하쿠가 츠쿠모의 담배 끝에 불을 붙여 주자, 달달한 음료의 맛에 물들어 있던 입안으로 텁텁한 담배 연기가 들어찼다. 목구멍과 폐를 적시는 매캐함이 달콤한 아이스티의 맛보다 더 현실 같았다.


   “꿈일 리가 없잖아.”


   제 담배에 불을 댄 후 연기를 내쉬며 코하쿠가 뱉은 말이었다. 소파 위에 앉은 츠쿠모에게는 코하쿠의 얼굴이 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무겐과 얽혀 있는 사람들에게만큼은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무척이나 쉽게 느껴 버리는 남자가 됐으니, 알다 마다였다. 어쩌다 이렇게 겁쟁이가 되었는지. 예전의 그 무서울 것 없던 츠쿠모가 지금의 코하쿠를 본다면 틀림없이 한심하다고 느꼈을 테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의 츠쿠모는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이든 따라가기로 했으니.

   설핏 웃으며 츠쿠모도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았다. 입에 물려 있던 담배를 한 차례 깊게 빨아들인 후 두 손가락 사이에 옮겨 놓은 츠쿠모는 담배를 쥐지 않은 손으로 코하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저를 부르는 손짓에 코하쿠의 고개가 뒤로 돌았다. 가볍게 물고 있던 담배를 순식간에 뺏겨 버린 입술 위로 츠쿠모의 입이 닿았다. 적잖게 놀란 탓에 반사적으로 뒤로 빠지려는 코하쿠의 몸을 츠쿠모가 요령 좋게 막으며 갑작스러운 입맞춤을 키스로 이어갔다. 아이스티의 달짝지근함과 담배의 씁쓸함이 섞인 오묘한 맛의 키스였다. 코하쿠에게도 츠쿠모에게도 썩 편한 자세는 아니었기에 오랫동안 진득하게 이어지진 못했어도 이런 스킨십에 절대적인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떨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채 다물리지 않는 두툼한 입술 사이로 다시 담배가 물렸다. 츠쿠모도 다시 담배를 물었다.


   “꿈 아닌 거 맞네.”


   소파의 등받이에 털썩 소리가 나도록 몸을 기댄 츠쿠모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코하쿠도 가만히 그 얼굴을 보다가 마주 웃었다. 근데 그게 내 담배인 것 같은데. 허? 그런가? 근데 상관없잖아, 누구 거든. 아무리 봐도 그게 더 길잖아. 쪼잔하네. 고요하던 집에 웃음 섞인 말소리가 이어졌다. 종종 투닥이는 소리가 들리긴 했으나, 걱정할 만한 정도는 못 될 것이다. 조금씩, 그렇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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