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썰 많음. 지뢰, 날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네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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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촬 동화 합작에 '눈의 여왕'을 테마로 제출한 글입니다.

2. 키바 극장판 마계성의 왕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공백 제외 6,603자




   “오랜만이야, 나고 군.”

   한여름 날, 눈이 내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름답고, 가장 추악한 존재였다.


*


   날이 무더웠다. 얇고 옷을 입고도 열기의 시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다니기 일쑤였던 날이었다. 나고의 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팔을 모두 밖에 드러내고도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르는 몸이 자꾸만 찬 기운을 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냉기 따위보다 그는 힘을 바라고 있었다. 도심에 버젓이 나타나 인간을 습격하는, 눈앞의 이 기괴한 생물을 무찌를 수 있는 힘을 나고 케이스케는 원하고 있었다.

   그런 나고 앞에 돌연 나타난 남자는 그가 바라고 있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한 괴물의 팔도, 원리를 설명할 수 없는 괴물의 기이한 공격도 남자의 몸에는 조금도 닿지 못했다. 손에 쥔 클로를 제 몸의 일부인 것처럼 휘두르는 남자는, 갈고리처럼 길게 뻗어 나온 날로 흉악한 괴물을 빠르게 제압해 나갔다. 가히 경이롭기까지 한 그의 몸놀림에, 나고 케이스케는 그 자리에 박제된 듯 멈춰선 채 그에게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는 없었다.

   세상은 더럽고 지저분하며 일그러졌고, 또, 흉측했다. 언젠가부터 나고 케이스케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렇게만 보였더랬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그에게 있어 잘못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시선과 마음에 삶이 완전히 장악되고 만 것은, 나고가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버렸던 때였다.

   그리고 세상은 교정의 대상이었다. 세상의 추악함을 알고 있는 자신이 이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야만 한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세상에 대한 혐오는 그의 삶을 움직일 동력이었고, 바뀌지 않을 절대적인 명제인 듯했다.

   그러나 나고의 눈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눈만은 아름답게 보였다. 더러운 발이 짓뭉개기 전의, 아직 손이 닿지 않은 눈송이와 소복하고 깨끗하게 쌓인 눈밭은 순수하고, 고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어떤 이물도 섞이지 않은 청순이, 언제나 불만에 시달리는 심미적 욕구를 충족해 줄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눈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남자는 정체 모를 생물체를 단신으로 물리친 후 무기를 가다듬고 있었으며, ‘소지품’의 정리가 끝난 후로는 조금 전까지 험악한 날붙이를 쥐고 있던 손을 살피고 있었다.

   나고는 남에게 쉽게 말을 붙이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때만큼은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저기……!”


   모든 사람이 대피한 도심에는 이름 모를 남자와 나고밖에는 없었으므로, 남자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으리라. 남자의 시선이 처음으로 나고의 눈과 맞닿았을 때, 나고는 무더운 공기에 한기가 퍼지는 듯한 느낌에 팔을 감싸 안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남자는 부드럽게, 그러나 차가운 웃음을 보이며 나고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를 향해 입을 뗀 나고의 몸은 그런 남자의 부드러움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초면에 대뜸 이름부터 묻는 건가요?”


   남자는 자신의 신상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일 터다. 나고의 언사에 불쾌감을 느껴도 이상하지는 않았으나,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남자에게 있어 그는 별로 개의할 만한 것이 못 되는 모양이었다. 나고 케이스케도 그런 것을 신경 쓸 인물은 아니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고가 던진 말에 남자는 팔짱을 끼곤 고개를 기울였다. 흥미는 몰라도 확실히 호기심은 동한 모양이었다.


   “힘이 필요합니다. 아까의 그 괴물같이 추악하고 흉측한 이 세상을 바꿀, 아름다운 힘이. 당신처럼요.”

   “흐응…….”

   “당신의 이름과 소속을 알려 주세요.”

   “알려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을 흐리던 남자는 팔짱을 풀며 걸음을 뗐다. 한 발짝씩 나고와 가까워질 때마다 독특한 향수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겨울바람처럼 시린 향기였으나, 싫은 향은 아니었다.


   “정보료는 줘야 해요.”

   “돈이라면…….”

   “아뇨. 키스로.”

   “뭐…….”


   뜻밖의 이야기에 나고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남자는 나고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맞부딪쳤다. 갑작스레 입이 틀어막힌 나고가 그 순간 불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그리고 금세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워진 것은, 더운 여름에 불어온,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 때문이리라.


   “첫 번째 키스.”

   “……네?”

   “시라미네입니다. 소속은 3WA. 뭐, 당신이 이곳에 들어오기는 어렵겠지만요.”

   “저는…….”

   “다시 볼 수 있길 바랄게요. 그럼.”


   제 이름을 밝히려던 나고의 말을, 시라미네는 단칼에 잘라내고 돌아섰다. 그의 걸음이 멀어지자 바람에 섞여들던 한기도 빠져나가며 다시 무더운 여름의 날씨로 돌아온 듯했다. 눈처럼 차가웠던 남자는 그렇게 자신이 끌어온 차가운 기운을 모두 거두어서 사라졌다.

   나고 케이스케의 첫 키스는 하지의 태양조차 얼릴 것 같은 차디찬 맛이었다.


*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라던 시라미네의 말을 나고는 뼈저리게 느꼈더랬다. 3WA는 기밀 조직이었다. 어디까지나 민간인에 불과한 나고는 접근하기는커녕 정보를 얻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고’라는, 정치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성이 아니었다면 평생이 걸려도 찾지 못할 일이었으리라. 연줄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 얼음 같던 남자 ― 시라미네는 조직 내에서 이름이 자주 들려 오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엘리트’라는 모양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뿐이었지만, 나고는 3WA에 소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이름이 ‘시라미네 타카토’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소속되어 있다고 하는 조직에 들어와서도, 나고가 시라미네를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최전방에서 일하는 인력이었고, 나고는 인제야 전사로서의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했다. 훈련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나고에게 조직의 유명 인사를 만날 기회며 시간이 주어질 리 만무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전투 시스템이 완성되어 시라미네가 직접 시용해 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도 들려왔으나, 조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고에게는 붕 뜬 이야기로만 다가올 뿐이었다.

   나고는 여타 조직원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런 그도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인간 외에 12 종족 이상의 고등 생명체가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 마만족의 긴 수명이나 고블린족의 물건 만들기 좋아하는 습성, 프랑켄족의 짧은 역사, 키바트족의 마황력 운용 능력……. 팡가이아의 세력 확장과 마족들의 절멸, 레젠도르가와 팡가이아의 전쟁, 그리고 지금. 3WA이 개발하고 있다는 ― 그리고 지금 시라미네가 시용하고 있다는 ‘라이더 시스템’을 통해 여타의 마족과 인간의 신체 능력의 벽을 허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등……. 아직 육체적인 훈련은 잘 따라가지 못했던 나고는 머릿속에 지식 ― 개중에는 활용성이 높은 것도 있었고, 기껏해야 잡지식밖에 되지 않을 쓸모없는 정보도 있었다. ― 을 쌓아 가는 데에는 뛰어났다.

   시간과 노력은 인간은 성장시키는 법이었다. 정보를 찾는 것조차 막막했던 조직에 몸을 담을 수 있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민간인을 다른 마족과의 전투 인력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미숙한 훈련생은 현장의 민간인 대피 인력으로도 활용하면 되었다. 본인의 바람과는 달리, 나고에게 주어진 임무는 후자였다. 원치 않는 일을 맡은 그를 달래 준 것은 뜻밖의 만남이었다.


   “시라미네 씨가 왔다!”


   누군가가 외쳤다. 분명 멀리서 들려 온 목소리였으나, 그 말소리는 꼭 나고를 위한 외침이었던 것처럼 그의 귓전을 강하게 울렸다. 나고가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해 달려간 자리에서는, 인생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눈이 내렸다.

   기괴하게 뒤틀린 형체를 앞에 둔 새하얀 갑옷은 그 어떤 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거미의 얼굴 같은 헬멧도, 곤충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빛의 복안도, 그리고 두 팔과 어깨에 돋아난 거대한 발톱의 형상도 세상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찢어야 할 부위를 찾아 도려내는 몸짓은 첫 만남에서의 그것보다도 더욱 예리하고 우아했다.

   순식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낸 후 무장을 해제한 남자 ― 시라미네 타카토는 여전히, 아니, 갑옷의 아름다움에 걸맞게 첫 만남 때보다도 더 수려한 자태였다. 그러니 나고가 또다시 무심코 그에게 말을 걸고 만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시라미네 씨!”

   “음?”


   찰랑거리는 셔츠를 털고 칼라의 매무새를 다듬던 시라미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기꺼이 반응을 해 주었다. 제법 멀찍이서 자신을 부르는 인영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빙긋 웃으며, 첫 만남 때와 같은 걸음으로 나고에게 다가왔다.


   “용케 들어왔네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랬지. 3WA에 들어오는 것조차 못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 상을 줄까?”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에 나고가 무어라 반문하려는 것을 막는 듯, 시라미네는 나고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그다음은 첫 키스에 대한 기억의 반복이었다. 조금 거친 입술에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이 가 닿았다. 입술의 감촉은 예전보다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 3WA의 라이더 시스템이 사용하는 그 특유의 냉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리라고, 나고는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솔직히 없었다. 당연하지만, 불쾌감 따위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입술은 금방 떨어졌으나 첫 번째 키스보다는 길었다. 그렇다고 아쉬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키스.”

   “시라미네 씨…….”

   “불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된 너도 보고 싶네.”

   “될 겁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나고 케이스케입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나고 군.”


   미련 없이 돌아서는 시라미네의 뒤에서 나고는 허벅지 옆으로 내려둔 주먹을 굳게 쥐었다. 마치 눈의 요요함을 형상화해 놓은 듯한 존재에게 두 번째 입술을 빼앗긴 남자는 차갑게 식은 손가락을 말아 쥐며, 떠나가는 냉랭한 기운을 언제까지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


   세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조우가 아니었다. 시라미네가 있는 곳으로 나고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이유는 3WA 내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그러나 누구도 표면적으로 입 밖에 내지는 않는 ‘비밀’ 때문이었다.


   “시라미네 씨!”


   분노에 찬 듯한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불렀을 때 시라미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여느 때처럼 정성스레 자신의 광택 나는 손톱을 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남자가 바로 옆에 와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에도 시라미네는 그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시라미네 씨, 당신……!”

   “맞아.”

   “당신, 정말로…….”


   나고는 어제 ― 사실 어제라고 하기에는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 다른 조직원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어느 ‘비밀’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라이더 시스템의 원동력과 그 라이더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의 불순한 존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기간트족의 힘을 이용하는 3WA의 라이더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레젠도르가족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팔아치운 시라미네 타카토의 이야기였다.


   “당신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겁니다!”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천화(天花)가 불순물이 되고 만 것에 대해 나고는 분노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찬란하고 황홀한 존재라 해도, 추악한 것이 섞여들면 더러워지고 마는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지. 이 흉측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그래요. 그런데도 당신은……!”

   “그럼 나고 군 너의 눈에는, 내가 ‘흉측해’ 보였나?”


   금방이라도 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던 모든 언어가 일순 죽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꼭 아무것도 없는 자리인 것처럼 줄곧 나고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던 시라미네는 기묘한 질문과 함께 그제야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라미네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나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런 자신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이 무엇인지는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답언은 없었으나 침묵은 훌륭한 답이었다. 시라미네는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나고의 앞에 마주 섰다. 언제나 그렇듯 여유롭고 차가운 미소를 지닌 얼굴이었다.


   “지금은?”


   쐐기를 박는 말에 나고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시라미네는 여전히 나고의 심미적인 바람을 충족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에게서 자신은 인간에게서, 이 세상에서 느낀 적 없는 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시라미네는 하하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얀 구두를 신은 발이 허공을 시원하게 갈랐다. 다리를 꼬고 앉은 시라미네는 손톱 줄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꼭 상대방을 내려보듯 나고를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고블린족이 만드는 물건엔 재밌는 게 많거든. 그중에 어떤 고블린족은 거울을 만들었어. 세상을 추하게 왜곡해 비추는 거울을. 지금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지만.”


   갑작스레 맥락에 끼어든 듯한 이야기에 나고는 의아한 눈으로 시라미네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나고를 바라보는 시라미네의 눈은 한껏 상대를 깔보고 있었다. ‘그럴 것 같았어.’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네가 세상을 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자기 자신에게서는 찾아본 적 없는 모양이네.”

   “무슨…….”

   “거울이 깨졌다고 해도 거울 조각 역시 사물을 비출 수 있는 법이잖아?”


   시라미네의 팔이 천천히 허공을 향해 뻗었다. 그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나고의 가슴, 심장이 뛰고 있는 자리였다.


   “그 조각이 지금 네 안에 있어. 여기, 그리고…….”


   조금 전 앉았던 몸이 다시 천천히 일어섰다. 나고의 가슴을 가리키던 손가락은 그대로 몸을 타고 올라가 굳어 있는 표정에 닿았다. 한번 감싸 잡아 본 적도 있던 그 뺨이었다. 손톱이 잘 다듬어진 엄지손가락이 나고의 떨리는 눈가를 살며시 매만졌다.


   “여기에.”

   “그럴 리 없어요.”


   나고는 자신의 몸에 닿은 ‘불순물’의 팔을 애써 치워내며 돌아섰다. 그러나 먼저 시라미네를 등진 몸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을 뿐이었다. 다리 옆으로 쥐고 있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시라미네는 내쳐진 손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상대가 원하는 이야기는 분명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을 추하다고 여기는 네가 나만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뭘까? 네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건 뭐였지?”

   “…….”

   “자, 그럼 이렇게 물어볼까? 이런 나를 ‘인간’인 네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

   “이런, 늘 낙제생이었던 네게는 너무 어려웠으려나? 그럼 조금 더 쉽게 물어 줄게. 내가 아닌 모든 것은 뒤틀리게 보고 있는 나고 군은,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흉측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나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등 뒤로는 시라미네 타카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뿌리치듯 귀를 막으며 나고는 그저 두 다리를 혹사하며 뛸 뿐이었다.

   나고 케이스케는 3WA에서 도망쳤다.


*


   “…시라미네 씨.”


   그 이름을 부르며 나고는 그리운 쾌감이 퍼지는 듯한 느낌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몇 년 만의 재회였음에도 그의 모습은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그 이름처럼 눈처럼 하얗고 또 고고하게 서 있었다.


   “네 세상에서 아름다운 건 여전히 나뿐인가 봐.”


   재킷의 안주머니에 손톱 줄을 늘 가지고 다니는 것도 전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어느새 또 손톱을 다듬고 있던 시라미네는 보기 좋게 손질된 손끝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은 나고를 보고 있지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는 분명 나고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너에게는, 널 위해 눈물 흘려 거울 파편을 녹여 줄 사람도, 얼음의 궁전에서 너를 꺼내 줄 사람도 없었던 것 같네. 불쌍하게도.”


   시라미네는 잠시 말을 끊고 손끝을 후 불었다. 더 이상 손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광이 나는 손톱을 몇 번인가 매만지던 손은 이내 손에 쥐고 있던 손질 도구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도구의 수명이 끝난 것이리라.


   “얼음의 궁전을 나가기 위해서는 퍼즐을 풀어야 한다지. 하지만 나고 군, 너는 아직 성을 빠져나가기 위한 퍼즐을 풀지 않았잖아? 안 되지, 게르다도 없는 카이가 여왕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성을 빠져나가 버리면.”


   몇 년의 시간은 한 존재의 방황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혼란의 끝에서 나고는 그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가 품었던 절대 명제로 돌아오는 것만으로 혼란은 종식되었다. 세상은 추악했고, 나고 케이스케는 그런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자 했다. 범죄자는 교정 시설로 보내 교화하고, 교화의 여지가 없는 마족은,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낸 이크사 시스템으로 제거한다.

   언제나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얼굴에서는, 마음을 가진 자의 온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 ― 3WA의 가면라이더 ― 의 복안처럼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에 모두 물들어 버린 것만 같았다. ‘불순했던 존재’였던 인간은 세상의 ‘불순물’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시라미네 타카토는 이 혼탁한 세상에 섞여든, 가장 순수하고 추악한 이물이었다.

   그리고 나고 케이스케의 정의는 세상의 추악함을 지워 나가는 것이다. 나고는 이크사 너클을 힘주어 쥐었다.


   “시라미네 씨, 확실히 당신은 아직도 저에게 있어 유일하게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방법은 틀렸어요. 그러니 저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란 존재를 교정해야만 합니다.”

   “하하하……. 그래. 세 번째 키스를 할 시간이야, 나고 군.”


   몰아치는 블리자드와 폭발적인 극열은, 백색 전사들의 마지막 만남, 이분자들의 마침표를 찍을 잉크였다. 차가운 정의가 백설의 추한 티끌을 녹일 시간이었다.

1. 특촬 동화 합작에 '헨젤과 그레텔'을 테마로 제출한 글입니다.

2. 아동 학대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전국 남사 17화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공백 제외 15,017자




   자고로 정장 구두란 것은 매끈하게 포장된 길을 걷는 데 적합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황톳빛은 찾을 수 없는 시커먼 아스팔트 길, 퍼즐처럼 알맞고 단정하게 배열된 보도블록 위, 까딱 긴장을 풀었다간 미끄러질 것만 같은 대리석 바닥, 폭신한 쿠션감을 자랑하는 자동차 바닥 매트……. 뭐, 아무튼 구두란 그렇게 잘 정돈된 땅을 딛기에 적절한 신발일 터였다.

   그런 신발은 지금 제게 맞지 않는 흙길을 걷느라 무던히도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검은빛을 자랑하곤 하던 값비싼 구두는 흙먼지에 광채가 다 죽어 버린 지 오래였다. 카네츠구는 회사의 여느 임원들과 달리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큰 관심을 두는 인물은 아니었고, 또 제가 걸치고 있는 물건들의 값어치를 일일이 따지고 들 만큼 예민한 성격도 아니었으나, 자신보다 조금 앞에서 걷고 있는 남자의 옷깃이 초목의 날카로운 손톱에 쓸려 상한 것을 보았을 때에는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들은 대로 산세가 험하군요.”

   “카네츠구의 말대로다.”

   “허탕을 치는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평일 한낮에, 그것도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등산이니 뭐니 하는 취미로 이곳에 방문했을 리가 없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업무상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초목의 푸르른 색에 섞여 있는 검은 정장 차림의 두 인영은, 잘 그려진 풍경화에 검정 잉크 몇 방울이 잘못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보다 키가 머리 하나만큼은 큰 남자를 뒤에서 따르며, 카네츠구가 하고 있을 생각도 그런 감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카네츠구는 저를 담고 있는 ‘풍경화’의 조화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장소에 있다는 것이 카네츠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당연히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일도 묵묵히 처리하는 것 역시 그의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이 일을 지시한 사람은 지금 카네츠구의 눈앞에서 걷고 있었다.

   소문이 돌았었다. 뭇 사람들에게는 시답잖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했으나, SLPM에서는 ― 그러니까, 현현과 관련된 데이터와, 수족으로 부릴 현현자가 필요한 회사에서는 확인해 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제목은 ‘헨젤과 그레텔’. 거창하게 제목씩이나 붙어 있기는 했으나 내용 자체는 뻔하디뻔했다.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건너갈 때 흥미 본위로 덕지덕지 붙은 불필요한 장치들을 걷어내고 나니, 확실하게 남아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느 부모가 제 자식들을 산에 유기했고, 그 아이들은 저들을 버린 어른들의 예상과는 달리 계속 산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제게 들어온 그 정보를 아주 간결하게 정리하여 제 상사에게 전했을 때, 카네츠구는 산의 흙먼지와 풀잎 따위에 지저분해진 남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곧 불필요한 감상은 구석으로 치워 버리며, 소문의 배경이 되는 그 산에서 애들을 확보하기 위한 ― 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 ‘직원’ 몇을 속으로 추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카네츠구의 그런 사고는 불과 30초도 지나지 않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직접 가 볼까.”


   물음의 형식을 빌려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말은 통보 내지 지시라는 이름에 더 어울렸다. 카네츠구는 다소 의외라는 얼굴로 제 상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그는 카네츠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제게 돌아올 대답은 어차피 알고 있었다.


   “일정을 조율해 두겠습니다.”


   카네츠구의 말이 끝나는 순간에 맞춰 우에스기의 손 위에서 놀아나던 물병이 텅 소리와 함께 데스크 위에 올라섰다. 카네츠구는 어린 남매를 쫓는 사냥꾼이 되기 전 주어진 며칠의 시간 동안 소문에 대해 더 정확한 정보를 보다 많이 그러모으기로 했다. 비효율적으로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에스기와 카네츠구는 아닌 때에 원 없이 산의 공기를 마시게 된 것이었다. 늘 무료한 듯 보이던 그의 상관으로서는 적당히 숨을 돌릴 일정으로 괜찮게 여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렇지만…….’


   단조로운 색채의 식물 무리를 가르며, 카네츠구가 호흡을 조절하여 말했다.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비꼬려고 하는 말은 아니었으나, 카네츠구답지 않은 발언이라는 것은 말을 뱉은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우에스기와 카네츠구는 미성년의 아이와 얽힐 일이 없었기에 지금껏 그에 대한 호오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카네츠구는 이 상황에서, 얼마 전에 제 상사가 ‘주웠던’ 꼬맹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을 뿐이었다.


   ‘재미라도 들리신 것인지.’


   꼬마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제쳐 두더라도, 카네츠구는 내심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린애를 대하는 것이 영 껄끄러운 카네츠구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저 우에스기는 웃음이 맞기는 한 것인지 확실치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악의 없는 코웃음만을 쳤을 뿐, 대화를 이어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뱉은 말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대화를 시작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입이 무어라 떠들든, 묵묵히 나아가던 두 다리의 결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길이라고 하기에는 풀이 너무도 무성한 곳을 얼마쯤 더 나아가자 나뭇가지가 끊어지거나 풀이 밟힌 자국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길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숲에서 그것은 명백한 흔적이자 단서였다.

   자연과 어울리는 취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카네츠구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할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게 다다른 곳에서는 또 번거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으나, 하나의 단계가 끝났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시야 가득 드리워진 녹음을 걷어 낸 곳에는 기다리던 ‘집’이 있었다.


   “과자 집은 아니네요.”


   카네츠구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니었으나, 우에스기 옆에서라면 카네츠구도 종종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하고는 했다. 물론 웃음을 일으키기에는 힘이 부족한 농담이었으며, 우에스기는 농을 즐기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달리 보일 만한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다만 조금쯤은 입꼬리를 올려 주며 답한다.


   “카네츠구의 말대로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집은 지극히 평범했다. 아니, 21세기의 일본에서 실거주지로 쓰이는 집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으니 평범하다고 할 수만은 없는지도 모른다. 소문의 내용대로 ― 물론 카네츠구가 걸러 냈던 것 가운데 하나였다. ― 과자 집이 있지는 않았으나, 꼭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양새의 나무 집은 있었다.

   집이라기보다는 ‘오두막’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그 건물은 자연의 풍화와 시간이 남기고 간 흠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보였다. 이 낡은 집에는 군데군데 새것처럼 보이는 보강재가 엉성하게나마 덧대어져 있는 것이었다. 만듦새가 영 헐거워 유의미한 효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찌 됐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는 그 집에는 분명히 인기척이 있었다. 헛걸음이 아니라는 데에 카네츠구는 일단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카네츠구의 안도와는 별개로, 아직 얼굴도 마주하지 못한 집주인들은 아무래도 낯선 이들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검은 실루엣의 남자들이 지저분한 오두막의 문 앞에 멈춰 섰을 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문 안쪽에서 나무의 틈새로 빠져나왔다. 얇디얇은 나무 벽은, 미처 죽이지 못한 발소리와 속닥거리는 말소리는커녕 두려움에 가빠진 숨소리조차도 막아 줄 수 없을 만큼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왔어……!’

   ‘무섭게 생겼다…….’

   ‘도망쳐야 돼?’

   ‘안 돼. 더 이상 갈 곳도 없는걸. 그리고 이제 우리 집은 여기잖아.’

   ‘마, 맞아! 마녀 같은 녀석들이면 혼내 주면 돼. 그치?’

   ‘응!’


   문 너머의 목소리를 들은 카네츠구는 코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우에스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큼지막한 손을 들어 목덜미를 매만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때 종종 보이는 제스처였다.

   우에스기가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은 그의 유능한 예속이 도맡아 처리했다. 주어진 사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를 취합하여 판단하고, 취해야 할 행동을 정하는 데까지, 카네츠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 우에스기를, 제 부하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 무능한 상사로 치부하는 눈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선은 어디까지나 이들의 관계를 겉모습으로만 판단한 결과일 뿐이었다. 선택지의 폭을 줄이는 것은 카네츠구일지언정, 선택은 언제나 우에스기의 몫이었다. 그의 입버릇인 ‘카네츠구의 말대로’라는 말은 그런 것이었다. 뭐, 그런 사정까지 모두 안다고 한들 우에스기에 대한 인상을 그리 바꾸고 싶지 않아 하는 인물도 있는 법이었다.

   우에스기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그의 심복은 제 주인이 생각할 법한 것들을 머릿속에 늘어놓고 있었다. 어린애에게 손 뻗치기를 꺼리는 제 상사는, 자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을 게 뻔한 아이들을 상대로 효과적이고 온건한 방법을 고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걸렸다고 하기에도 짧은 시간이 지나고, 조용히 목덜미 위에서 내려오는 손이 신호였다. 카네츠구의 손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단단하고 또렷한 소리가 문밖에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뻔한 연기였으나, 이러한 인사치레는 상대가 누구든 언제나 필요한 법이었다. 문 너머에서 몸을 옴직거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졌다. 그들에 관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낯선 방문객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게 뻔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카네츠구의 손이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처음 것보다 조금 더 센 강도였다. 대답이 없다면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의외로 외부인을 향해 쉬이 열렸다. 카네츠구는 다소 과격한 감이 있는 자신의 계획이 실행 단계에 들어서지 않고 멈춘 것에 한 차례 마음을 놓았다. 애들이 껄끄러운 것과는 별개로, 상대에게 굳이 나쁜 인상을 심어 줘서 좋은 것은 없었다.

   맥없이 열린 문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문 바로 근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앞서 걸어 들어간 것은 우에스기였다. 카네츠구는 잠시 제 상사의 걸음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분명 불확실한 상황이나 위험을 즐기는 성향은 못 되었지만, 제 주인이 나아가는 길이라면 망설임 없이 그의 뒤를 따르는 인물이었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카네츠구는 다소 신경질적인 눈총으로 집 안을 살폈다. 그의 눈에 띈 것은 먼지가 한 꺼풀은 감싼 듯한 석유난로였다.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구식 난로는 모양새의 구색은 모두 갖추고 있는 듯했다. 생긴 것대로 충분한 온기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나, 그럼에도 추운 밤을 버틸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열상을 방지할 용도의 가림막은 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비교적 멀쩡해 뵈는 헝겊이 보호망에 까맣게 탄 채 붙어 있는 탓이었다. 카네츠구는 난로에서 두어 발짝을 더 떨어져 있는 것이 좋으리라는 주의를 머리에 새기며, 우에스기의 등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찾던 아이들은 문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애초에 실내가 한눈에 다 보이는 집 안에서 방문자의 눈에 띄지 않을 곳은 그곳밖에는 없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등을 보인 것은 그들의 여유였다. 의외로 얌전히 모습을 드러낸 아이들은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소문대로 남매인 모양이었다.

   사실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풍설은 차치하더라도, 아직 보호자의 손길 아래에 있어야 할 어린애들이 ‘이런’ 집에 저들끼리만 남게 된 일에 좋은 뒷이야기가 있을 리는 없을 터다. 그럼에도 남매의 눈은 이 낡은 가옥과 허름한 행색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빛이 나고 있었다. 수중에 넣기만 한다면 제법 쓸 만한 말이 될 것이다.

   카네츠구는 짐짓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웃는 얼굴이 협상과 비즈니스에 있어서 마이너스 요소가 된 적은 없었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인가요?”


   카네츠구는 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 앞으로 다가서는 어른의 그림자에 남매는 주춤거리며 두어 발자국쯤 뒷걸음질을 쳤다. 행동만 보자면 단순히 겁이 많은 어린애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의식적인 자기방어 행위인 듯했다.

   어른들을 올려다보는 눈에 풀이 죽은 기색은 없었다. 여자아이는 더욱 그랬다.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는 작은 눈동자들은 상대방의 속을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애답지 않은 애가 껄끄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물론 애다운 애라고 싫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 이는 어디까지나 카네츠구 개인의 호오일 뿐이므로, 업무를 진행하는 데는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다만 굳어질 것 같은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카네츠구가 무던히도 애쓰는 중이라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다행인 것은 카네츠구의 그런 노력이 쓸모없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카네츠구는 미소를 꾸며 내는 데 제법 뛰어난 편이었고, 그는 그런 미소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 호감형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상기했듯, 그의 미소가 역효과를 부르는 일은 잘 없었다.


   “네,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대화가 끊기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 카네츠구는 제 옆에 서 있는 상사의 표정을 살폈다. ‘아저씨’라는 말은 우에스기 앞에서는 금기어였으나, 우에스기는 미간의 거리를 아주 미약하게 좁혔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에스기가 카네츠구를 향해 힐끔 시선을 보냈다. 계속하라는 의미였다. 먼저 문턱을 넘었던 우에스기는 잠자코 카네츠구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마땅한 보호자와 거주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왔습니다만, 맞나요?”

   “…….”

   “우리는 SLPM에서 왔습니다. 사회환원사업의 일종으로, 보호자 없는 아동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SL… PM?”

   “네. 일단은 제 명함을 드리겠습니다.”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카네츠구는 뒷말을 삼키며 안주머니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냈다. 한쪽에 SLPM의 로고가 박힌 빳빳한 종이가 그의 손에서 자그마한 손으로 넘어갔다.


   “나오에 카네츠구라고 합니다. 당신들은?”

   “……헨젤이랑, 그레텔.”


   저들의 이름을 동화 속 인물의 것으로 댄 쪽은 남자아이였다. 그러니까 그 자신의 말대로라면 ‘헨젤’이라는 이름이 되겠다. 어린애의 시시한 이름 짓기 놀이라는 생각을 한편으로 치워 버리며, 카네츠구는 자연스레 여자아이, ‘그레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마주친 그레텔의 눈은 조금 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래, 적대감이었다. 그것도 제법 뿌리가 깊어 보였다. 어리다고는 해도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일이야 으레 있는 일이라지만, 회사명을 듣고 반발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이의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저 ‘아저씨’는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듯한 말투와 목소리는 카네츠구의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톱니바퀴를 강제로 멈추는 것 같았다. 카네츠구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굴리는 일이야 습관에 가까운 것이라지만, 애들을 상대로 호들갑스럽게 구는 것은 기운만 낭비하는 일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레텔은 앞으로 나서며 제법 당돌한 태도로 우에스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자리한 어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그레텔을 향해 우에스기는 즉답을 내놓는 대신 무심한 시선을 내려보냈다. 제 역린을 두 번이나 건드렸음에도 우에스기가 분노를 터뜨릴 기색은 없어 보였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돌같이 굳어 있는 표정 아래에는 분명히 미약한 불쾌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 카네츠구만이 겨우 알아챌 수 있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다.”


   우에스기는 스스로 제 이름을 밝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나서서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을 정도의 지위에 있었고, 우에스기의 일은 대부분 카네츠구가 도맡아 처리했기에 굳이 그의 이름까지 입에 올릴 필요가 없었으며, 이름을 대야만 하는 상황에서 역시 카네츠구가 그의 목소리를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카네츠구는 속으로 손가락 하나를 더 꼽았다. 늘 우에스기와 함께하는 카네츠구에게도 그가 자기 자신의 이름을 직접 발음하는 일은 손에 꼽는 일이었다.


   “우에스기…….”


   그레텔은 낯선 이름을 혀에 익히려는 듯 그 이름자를 한번 입 안에 굴려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불러 본 일도, 그리고 직전에 우에스기가 제 이름을 직접 가르쳐 준 일도 모두 무색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레텔은 그들을 이름으로 불러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말없이 잠자코 있는 헨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는 그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에요?”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우리 회사에 관심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카네츠구가 다소 공격적인 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신이 경애해 마지않는 상사에게 결례가 될 일임은 알고 있었으나, 카네츠구로서는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애들이라고는 해도 ― 어쩌면 애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 상대방의 속내를 읽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숨어 있는 의도가 읽히지 않는 그 질문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좋은 말로 하자면 나이에 맞지 않게 똑똑했고, 나쁜 말로 하자면 영악했다. 다른 말로, 우에스기의 흥미를 부를 만하다는 소리였다.


   “SLPM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저씨들이 높은 사람들이라면 지금 따라가는 게 좋잖아요. 돈도 많을 거니까 우리 둘을 같이 데려갈 수도 있을 거고.”


   아이들은 아무래도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는 복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눈앞의 어른을 따라간다면 그대로 그들의 식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리라. 카네츠구는 조무래기들의 그런 생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는 데에 내심 불편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우에스기는 답지 않게 어린아이에게는 물렁했고, 특히나 지금 마주하고 있는 애송이들과 같은 호랑이 새끼들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 사람이니, 남매가 원한다면 그들을 자신의 거처로 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카네츠구가 탐탁지 않음을 느끼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


   늘 그렇듯 반 정도는 감긴 듯한 눈은 멍하니 어딘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양손 모두 얌전히 골반께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으나, 분명 우에스기는 고민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카네츠구 역시 입을 다문 채 그를 살피고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카네츠구처럼 그를 잠자코 기다려 줄 수 없었던 것은, 어린아이들 특유의 조급성 때문일 것이다. 카네츠구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저분한 손이 우에스기의 소매를 붙잡았다. 생각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잠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눈은 그 손길에 이끌려 다시 시선을 낮추었다. 그 앞에서 우에스기의 팔을 붙잡고 있는 그레텔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었다. 행색이 조금 지저분하기는 했어도 꽤나 귀여운 얼굴이 아이스럽게 구는 것은 뭇 어른들이라면 껌뻑 넘어갈 만도 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두 명의 아이를 도맡아 양육하는 것을 그런 애교만으로 선뜻 결정해 버릴 어른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착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카네츠구는 다시 한번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러분을 보호하는 것은 여기 있는 저희가 아니라, 시설이 될 겁니다.”


   카네츠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단정적인 어투로, 원칙적인 이야기를 던졌다. 원래라면 그의 말대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었다. SLPM의 ‘사회환원사업’이라는 것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SLPM의 아동 복지 시설에서 수용하는 아이들은 모두 정상적인 교육 단계를 거치되, 사회로 나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SLPM의 표면 또는 이면의 인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럼 안 갈래요.”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반응에 카네츠구는 한숨조차 쉬지 않고 표정을 골랐다. 이제,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 협상에서 그가 으레 하던 일처럼, 눈앞의 상대를 설득할 카드를 하나씩 내놓을 차례였다. 카네츠구는 뒤로 물러서는 아이들을 따라 걸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이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듯한 모양새로 보일 것이 뻔했으나, 꺼릴 것은 없었다.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위생적이지도 못한 이곳보다는 생활면에서도 훨씬 나을 겁니다.”

   “…….”

   “교육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의무 교육 이상에는 그에 걸맞은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요.”

   “…….”

   “입양 가족을 찾는 데에 있어서도 보호소 쪽이 더 나을 겁니다. 입양처는 우리 SLPM에서 철저히 엄선하고, 당신들에게도 거절할 권리를 주죠.”

   “그래도 싫어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카네츠구는 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그레텔 앞에 한쪽 다리를 꿇어앉았다. 답지 않게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주며 그레텔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등 뒤의 낡은 난로에서 확 올라오는 듯한 석유 냄새에 인상을 구길 뻔했으나, 그는 표정을 애써 가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여 서로 떨어지는 것이 싫은 거라면…….”


   그렇게 다시 설득의 말문이 열렸을 때, 카네츠구는 대화의 상대가 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고 있음에 퍼뜩 눈을 돌렸다. 그레텔의 눈은 제법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시선의 끝은 헨젤을 향하고 있었다. 카네츠구가 아이의 눈동자를 미처 쫓지 못했던 그 찰나, 분명 그의 앞에 서 있을 터인 작은 체구 하나가 카네츠구의 옆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헨젤이었다. 카네츠구는 아차 싶은 기분을 느끼며 급하게 그 몸뚱이를 잡으려 했으나, 그 좁은 틈새를 돌진해 빠져나가는 아이는 잽싸게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그대로 이 집을 빠져나가 도망이라도 가려는 것인가 싶었던 차에, 헨젤은 저들을 얕보는 어른들을 또 한 번 골탕 먹이듯 도리어 우에스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봤자 아무렴 제 체구의 족히 2배는 될 법한 어른을, 잘 쳐줘도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을 어린애가 어쩔 수는 없을 터였다.


   “이익!”


   카네츠구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헨젤은 그레텔과 같이 앞에 나서서 남과 대화하는 성향은 아닌 것으로 보였으나, 그레텔 못지않게 총명함이 분명했다. 우에스기는 허리가 곧기는 했으나 자세 바르게 서 있기보다는 언제나 다리 한쪽을 내놓듯 짝다리를 짚고 있는 편이었고, 이 낡은 오두막에서도 그 습관이 다르지는 않았다. 헨젤은 자신보다 훨씬 큰 체구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려야 하는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게으른 파트너의 몫까지 홀로 도맡아 거구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우에스기의 오른쪽 다리는 갑작스럽게 충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맥없이 꺾이고 말았다. 산속의 자라다 만 나뭇가지들에 이미 보기 싫은 생채기가 여기저기 나 있던 다리는 이번에는 거칠고 지저분한 나무 바닥에 처박히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우에스기 씨!”


   카네츠구의 다급한 외침에도 맹랑한 공격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바닥에 무릎을 처박은 우에스기의 몸 위로 뜨겁게 달궈진 석유난로가 쓰러진 것이었다. 이번 것은 그레텔의 작품이었다. 언제나 제 상사가 우선인 카네츠구가 우에스기를 향해 몸을 돌린 틈을 놓치지 않고, 그레텔은 카네츠구의 영역에서 벗어나서는 새빨간 빛을 뿜던 난로를 힘껏 걷어찼다. 성인의 몸을 깔아뭉개며 이곳저곳 부딪히는 철판의 비명이 조용하던 오두막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카네츠구의 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 상사를 향해 튀어 나가듯 달려갔을 때, 그런 그의 머리 위로도 맹격이 날아들었다. 세 번째 습격이었다. 그러나 이번 것만은 유의한 공격이 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카네츠구의 머리를 노리던 물건이 맥없이 그의 손에 잡히고 만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우에스기 씨!”


   상황이 예상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지 않는 모습에 아이들은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으나, 카네츠구는 그런 아이들은커녕 자신에게 직접 가해진 위해조차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방해물들을 모두 지나쳐 곧장 우에스기를 향해 달음박질했다. 거리낌 없이 앞을 향해 뻗치는 그의 손이 뜨거운 쇠판을 붙잡으려던 찰나, 우에스기의 몸 위로 쓰러져 있던 묵직한 난로는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쥐색의 단정한 정장 소매에는 눈에 띌 만큼의 색 변화는 없었지만, 섬유가 눌으며 올라오는 탄내가 등유 냄새에 섞여서 풍겨 왔다. 그러나 빨갛게 달아올랐던 쇳덩이 아래에서 우에스기의 몸에 얻은 상처라고는 손등의 화상뿐인 듯 보였다. 딴에는 완벽했을 악동들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애송이들이……!”


   우에스기의 안위를 확인한 후, 카네츠구는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오기 시작한 분노를 굳이 참을 생각이 없었다. 어린애의 장난으로 치부해 넘기기에는 도가 지나친 수준이었다. 동화 속의 과자 집처럼 화로라도 있었다면 그 안으로 밀어 버리려 들었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소름까지 돋을 지경이었다.

   조금 전 제 뒤통수를 노려 왔던 물건을 여전히 손에 쥔 채 카네츠구는 헨젤과 그레텔을 향해 위협적으로 돌아섰다. 헨젤이 침입자에게 맥없이 빼앗기고 만 것은 이 허름한 집에 어울리게 꼬질꼬질한 나무 막대였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적도 있었을 자루는 힘주어 휘두르면 쉽게 부러져 버릴 것처럼 낡아 있었다.

   나무 소재의 물건이 낡게 되면 으레 그렇듯 카네츠구의 손에 들린 나무 자루 역시 여기저기 가시 같은 거스러미가 올라와 있어 카네츠구의 손을 난도질하기 시작했으나, 정작 손의 주인은 그다지 신경을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애새끼가 멋대로 구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카네츠구는 손에 쥐어진 것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조무래기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눈앞의 아동들을 SLPM으로 거두어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것만이 그의 최선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강경책을 택하는 것은 카네츠구는 물론이거니와 우에스기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이런 상황에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온건하게 대해 줄 필요는 없었다. 솔직한 말로, 강제력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편했다. 명분은 저쪽에서 만들어 주었으니 거리낄 것도 없지 않은가. 인제 와서 양심이니 측은지심이니 하는 것으로 일을 망설일 인물도, 카네츠구는 못 되었다.


   “아저씨들이… 아저씨들이 나쁜 거잖아!”

   “너희 같은 애송이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해 교육이라는 게 있는 거지.”


   쇠에 긁혀 나오는 듯한 음색은 불과 1분 전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아이를 어르던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카네츠구의 두 손이 더 이상 거리낄 것 없다는 듯 아이들을 향해 뻗쳤다. 그런 카네츠구를 멈춘 건 우에스기였다.


   “카네츠구.”


   나지막하고도 또렷하게 제 이름을 읊조리는 목소리에 카네츠구의 몸은 제동이라도 걸린 듯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카네츠구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찰 뻔한 것을 겨우 참으며, 목소리의 근원지로 다시 몸을 돌렸다. 그가 돌아서 바라본 곳에서는 어느새 몸을 일으킨 우에스기가 붉게 달아 오른손으로 정장의 먼지를 아무렇게나 털어 내고 있었다.


   “제게 맡겨 주셔도 됩니다.”


   카네츠구는 채 힘을 빼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 일의 처리를 맡겨 달라는 요구라는 것쯤은 우에스기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리 말을 꺼낸 카네츠구도 상사가 자신의 메시지를 받아 주지 않을 것임은 예감하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우에스기는 허공에 손을 한 번 젓는 것으로 제 의사를 표하고 말았다. 카네츠구는 좀처럼 표정을 풀지 못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주인의 의지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발짝 물러선 카네츠구 앞으로 우에스기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지나갔다. 발이 멈춘 곳은 헨젤과 그레텔의 앞이었다. 여느 성인 남성보다도 한 뼘쯤은 더 큰 몸은 무릎을 완전히 굽혀 앉아서야 아이들과 간신히 눈높이가 맞았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으나, 그것은 여느 때의 표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이목구비에 배어 나오는 감정이 마땅히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코 경하다고 할 수 없을 상처를 입힌 이들을 눈앞에 둔 표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

   “우리가 나쁘다고 했던가.”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분노 또는 억울함에 씩씩거리던 아이가 무미건조한 어투의 질문을 알아듣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아이의 대답을 요구하는 그 질문이란 결국 마중물에 불과했다. 당초 아이들에게는, 어느 시점부터 계속,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맞아… 맞아! 아저씨들이 나빠. SLPM이 다 나빠!”

   “그런가.”

   “엄마랑 아빠는 매일 웃어 주고 그랬는데…….”

   “……아저씨들 같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면서 엄마도 아빠도 안 웃게 됐어.”

   “엄마, 아빠가 힘들지 않게 우리도 힘냈는데… 말도 잘 듣고, 말대꾸도 안 하고…….”

   “SLPM 때문에 힘든 거라고 했어!”

   “우리를… 분명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있으면 데리러 올 거라고…….”

   “그러니까 다 당신들 때문이야! 당신들만 아니었으면! SLPM만 아니었으면…….”

   “우리가 나쁜 게 아니야…….”


   구석에 몰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식의 발악밖에는 없었다. 꼭 한풀이라도 하듯 울먹거리며 또 화내며 쏟아내는 모든 이야기를 우에스기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설움이 북받치는 와중에도 이를 꾹 물고 울음을 참으려는 아이들의 모습은 눈물이 날 만도 한 광경이었으나, 그런 아이들의 감정에 동조할 만한 마음을 가진 이는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카네츠구는 감흥 없는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왔던 정보들을 되짚어 보았다. 애당초 친부모가 아니었다느니, 계모의 설득에 넘어갔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더러 섞여 있었으나 그런 불필요한 낭설은 제하고도 몇몇 주목할 만한 정보가 남았더랬다.

   ‘헨젤과 그레텔’의 부모는 이 마을에서 도망치듯 떠난 모양이지만, 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넉넉하게 꾸릴 수는 없었어도 생계를 이어 나가기에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는 모양이다. 그런 생계가 회사 하나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도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터다. 작은 곳에 큰 물이 들어오면 그에 떠밀려 나가는 존재도 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겠는가.

   카네츠구로서는 이곳으로 오기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이야기였으나 그런 시시콜콜한 사정의 전말을 굳이 확인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참을성 없는 조무래기들은 이렇듯 묻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알려 주곤 한다. 물론, 이들이 그런 ‘어른의 사정’까지도 다 알고선 덤벼들기까지 할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카네츠구는 인제야 화끈 열이 올라오는 손바닥을 몇 번인가 쥐었다 펴며 인상을 구겼다.

   어쨌든 헨젤과 그레텔은 계속 울 듯 말 듯 북받치는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고, 카네츠구는 그런 아이들의 사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마음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버려진 아이들에게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분명히 있었다.


   “뭐, 그럴지도 모르겠군.”


   또 한바탕 온갖 이야기를 쏟아낸 후 그레텔이 색색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을 때, 우에스기는 무거운 입을 뗐다. 줄곧 저들의 말을 무시하듯 목석처럼 앉아만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을 땐 헨젤도 그레텔도, 그리고 뒤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카네츠구도 놀란 듯 보였다. 수긍 뒤로 이어지는 말소리도 우에스기의 것이었다. 그답지 않게 말이 길었다.


   “그런데도 너희들, 부모를 원망하고 있나 보군.”

   “어?”

   “낳아 놓고서, 거둬 놓고서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냐, 우리는…….”

   “‘착한 아이’로 있었건만 기어이 너희를 버린 부모가 원망스럽겠지.”

   “나, 나는 엄마, 아빠가…….”

   “어떤 짓을 했건 ‘가족’이라는 말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건 폭력이지. 안 그런가? 헨젤, 그레텔.”


   헨젤과 그레텔은 주먹을 꼭 쥔 채 더 말이 없었다. 저들을 향해 웃어 주던 얼굴과 지금까지 나눠 주던 애정은 결코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고, 진심으로 사랑을 담아 안아 주던 때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가짜는 아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는, 여기저기 때가 타고 녹슬어 있는 저 난로도 그들이 남겨 놓고 간 것이었다. 마지막까지도, 부모로서의 애정, 또는 책임감, 또는 죄책감, 그런 것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은 것, 그리고 기른 것, 부모로서의 모든 일은 어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고,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었다. 제대로 책임질 수 없었다면, 부모가 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모는, 엄마와 아빠는 도망친 것이다. 저들이 세상에 내놓은 생명을 놔두고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들이 제 자식들과 함께 이 산에 투기한 책임은 아이의 마음에 원망의 싹을 틔웠다.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성도 없고 국적도 출신도 불분명한 이름은 그런 애한의 발로였다. 그럼에도 부모를 사랑하는 줄밖에는 모르는 아이들의 마음은 그 싹에 천천히 곪아 가고 있었을 터였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고, 동화 속 인물이 아닌 그들에겐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해 줄 영원한 과자 집 같은 것은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꾹 누르며 입을 앙다물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우에스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린것들의 머리 위로 길게 그림자가 늘어졌다.


   “SLPM에 좋은 부모나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어. 하지만 너희를 끝까지 책임질 능력과 보호자는 있지.”

   “…….”

   “내가 거둬 주지. 마지막으로 묻겠다. 오겠나?”


   카네츠구는 우에스기의 이름이며 만류의 말을 모두 삼킬 수밖에는 없음에 속으로 탄식했다. 결국에는 이렇게 될 것을 모두 예상하였음에도, 카네츠구는 제 주인이 별 이득 없이 책임만을 져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더랬다.

   그런 카네츠구의 염려는 뒤로 한 채 우에스기는 조막만 한 것들에게 제 오른팔을 내리뻗고 있었다. 기다란 팔을 따라 올라가 고개를 든 눈동자에는, 그 자신의 말대로 애정 따위는 비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이에게 선택을 넘긴 채 잠자코 기다리는 어른이 한 명 있을 뿐이었다. 그레텔이 그 눈을 노려보듯 똑바로 마주하고 있을 때, 제게 뻗어 온 손을 먼저 잡은 것은 헨젤이었다.


   “갈래.”

   “오빠!”

   “가자. 춥고 배고프게 여기서 엄마, 아빠를, 아니, ‘그 사람들’을 기다리는 건 인제 그만두자.”


   지금껏 줄곧 동생의 뒤에서 위축되어만 있던 헨젤은 나이에 맞지 않게 제법 의연한 얼굴까지 하며 그레텔을 바라보았다. 남자아이는 저들이 버렸던 이름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있는 누이동생의 손을 붙잡으며, 다시 입을 뗐다. 목소리에는 조금 전의 것보다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둘이서 함께 살아갈 수 있어.”


   금방이라도 울먹일 듯 입술을 꾹 물고 있던 그레텔도 이내 눈에 바짝 힘을 주어 눈물을 삼키고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또 제가 새겼던 화상 자국을 보곤 멈칫 손을 멈추고 말던 아이는, 조심스레 상처를 피해 기다란 손가락을 감싸 잡았다.


   “착한 아이들이군.”


   카네츠구의 한숨 소리를 가리는 나직한 목소리가 막 새로운 곳으로 발을 뻗으려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들의 불안한 발걸음이 구둣발 뒤를 따랐다.


*


   카네츠구는 제 허벅지 위에 올려둔 노트북을 닫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지칠 줄 모를 것 같았던 태양도 기운이 다한 듯 지평선을 향해 추락해 가고 있었다. 오늘의 업무를 끝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시간이었다. 이대로 곧장 본사나 지사를 향해 밟더라도 어차피 도착해서는 퇴근 시간일 것이었다.

   카네츠구는 노트북을 넣으며 등 뒤로 힐끔 시선을 넘겼다. 언제나 우에스기의 자리였던 차 뒷좌석은 어린아이들의 잠자리가 되어 있었다. 색색거리는 아이들 숨소리가 차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듯했다. 카네츠구는 여전히 불만이 가시지 않은 듯 다소 미간을 구기고 있었으나, 늘 둘뿐이던 차 안이 가득 찬 듯한 느낌이 우에스기는 그다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됐어. 이대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답지 않게 말이 많았던 탓인지 우에스기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가라앉은 듯 들렸다. 카네츠구는 뒷좌석에 잠든 아이들의 몸을 피해 새 물병 하나를 끄집어내어 제 상사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 뚜껑을 여는 것부터는 본래 우에스기의 일이었지만, 이번만은 카네츠구가 하기로 한다. 카네츠구의 손에 느슨하게 풀린 물병으로 만족스레 입과 목을 축인 우에스기는 여전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에게는 지낼 곳을 따로 주는 게 낫겠지.”

   “……준비해 두겠습니다.”

   “카네츠구는, 애들을 꽤 싫어하는 모양이군.”


   카네츠구는 산을 오르며 제가 상사에게 던졌던 말을 떠올렸다. 지금 그가 한 말은 그에 대한 대답이리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좋아해 보라고 강요하는 말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좋아하는 듯한 상사에게 들어서 기분 좋을 만한 말도 아니었다. 카네츠구는 바람 빠지듯 웃으며, 산에서 내려오던 중 등 뒤의 꼬맹이 중 하나가 제게 하던 소리를 떠올렸다.


   ‘그래도 저 아저씨는 싫어.’


   들으라는 듯 뱉어 버리는 말에, 어른답지 못하게 무심코 되받아칠 뻔했더랬다. 불쾌한 기분으로 힐끔 시선을 돌린 곳에서 영악한 여자아이는 당신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능청스레 딴 곳을 보고 있었다. 다시 떠올리려니 또 한숨이 나올 듯해 카네츠구는 슬며시 눈을 감으며 무릎 위의 서류 가방을 옆으로 치웠다.


   “그나저나 저 꼬맹이들, 이쪽이 불쾌해하는 게 뭔지 눈치챈 것 같더군요.”

   “아, 계속 ‘아저씨’라고 불렀던 것 말이지.”

   “우에스기 씨, 그에 대해 별말씀은 안 하시더군요.”

   “뭐, 애들이니까 말이지.”


   역시 어린아이에게는 무른 사람이다. 카네츠구는 어찌할 수 없음을 느끼며 지그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우에스기도 그에 맞춰 잠시 물병을 내려두고 안전벨트를 매었다. 부드러운 시동 음이 차체에 잔 진동을 일으켰다.


   “저 꼬마들은 내게서 그것까지 확인해 본 것인지도 모르겠군.”


   카네츠구가 기어를 바꾸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을 때, 우에스기가 넌지시 던진 말이었다. 카네츠구는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에 룸미러로 시선을 올렸다. 애들은 여전히 세상 모른 채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으나, 카네츠구는 그 얼굴마저도 완벽한 연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천사처럼 보일 법한 저 얼굴로 어른을 시험해 봤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랬다.

   공연한 생각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카네츠구는 다소 호들갑스럽기까지 한 주관을 애써 밀어내며 핸들을 돌렸다. 그러나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 역시 저는 다루기 힘든 꼬맹이들은 영 껄끄럽네요.”

   “그런가.”


   우에스기의 목소리에 서려 있는 웃음기에 카네츠구는 괜한 볼멘소리가 나올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리 느끼고는 있었어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카네츠구가 거스를 의사가 없다는 것은 우에스기도 잘 알고 있었다. 제집으로 직접 아이들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별택으로 보내는 것은 그런 카네츠구를 위해 우에스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보였다. 카네츠구도 알고 있으리라.


   ‘뭐, 너와 나의 아이라고 생각하고 대해 봐.’


   별안간, 우에스기는 머릿속에 실없는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평소 자신이 할 만한 생각과는 한참 동떨어진 언사를 잠시 곱씹어 보다가, 그는 이내 웃음과 함께 삼키고 말기로 했다. 카네츠구의 반응이 궁금도 했으나, 염려할 것 많은 부하는 오늘 있었던 일만으로도 충분히 고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마디 불평 없이 따라 주는 심복을 이 이상 놀리는 것은 괜한 짓궂음밖에는 되지 못하리라. 우에스기는 싱거운 웃음과 함께 눈을 붙였다.

   카네츠구는 조용히 눈을 감는 우에스기를 힐끔 보곤 완만하게 속도를 올렸다. 결코 짧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하루가 끝나 간다. 그의 주인은 무엇이 만족스러운지 설핏 미소까지 짓고 있는 표정으로 잠들 모양이었으나, 카네츠구에게는 채 끝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아니, 한 가지 더 일이 생겼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애들에게 간식거리 정도는 사 줘도 나쁘지 않겠군.”

   “…과자 집 대신입니까?”


   문득 떠오른 생각인지 제법 가벼운 목소리로 가벼운 소리를 하는 우에스기의 말에, 카네츠구는 실없는 농을 던지며 핸들을 꺾었다. 그에 답하듯 우에스기는 싱겁게 웃었다. 정작 본인은 그다지 즐거울 수 없는 농담이었을 테지만,


   “카네츠구의 말대로다.”


   그렇게 답하며 제게 건네는 우에스기의 희미한 미소에는 카네츠구도 어찌할 수 없이 마주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자 집 따위 없는 세상에서 그를,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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