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촬 동화 합작에 '눈의 여왕'을 테마로 제출한 글입니다.

2. 키바 극장판 마계성의 왕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공백 제외 6,603자




   “오랜만이야, 나고 군.”

   한여름 날, 눈이 내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름답고, 가장 추악한 존재였다.


*


   날이 무더웠다. 얇고 옷을 입고도 열기의 시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다니기 일쑤였던 날이었다. 나고의 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팔을 모두 밖에 드러내고도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르는 몸이 자꾸만 찬 기운을 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냉기 따위보다 그는 힘을 바라고 있었다. 도심에 버젓이 나타나 인간을 습격하는, 눈앞의 이 기괴한 생물을 무찌를 수 있는 힘을 나고 케이스케는 원하고 있었다.

   그런 나고 앞에 돌연 나타난 남자는 그가 바라고 있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한 괴물의 팔도, 원리를 설명할 수 없는 괴물의 기이한 공격도 남자의 몸에는 조금도 닿지 못했다. 손에 쥔 클로를 제 몸의 일부인 것처럼 휘두르는 남자는, 갈고리처럼 길게 뻗어 나온 날로 흉악한 괴물을 빠르게 제압해 나갔다. 가히 경이롭기까지 한 그의 몸놀림에, 나고 케이스케는 그 자리에 박제된 듯 멈춰선 채 그에게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는 없었다.

   세상은 더럽고 지저분하며 일그러졌고, 또, 흉측했다. 언젠가부터 나고 케이스케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렇게만 보였더랬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그에게 있어 잘못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시선과 마음에 삶이 완전히 장악되고 만 것은, 나고가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버렸던 때였다.

   그리고 세상은 교정의 대상이었다. 세상의 추악함을 알고 있는 자신이 이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야만 한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세상에 대한 혐오는 그의 삶을 움직일 동력이었고, 바뀌지 않을 절대적인 명제인 듯했다.

   그러나 나고의 눈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눈만은 아름답게 보였다. 더러운 발이 짓뭉개기 전의, 아직 손이 닿지 않은 눈송이와 소복하고 깨끗하게 쌓인 눈밭은 순수하고, 고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어떤 이물도 섞이지 않은 청순이, 언제나 불만에 시달리는 심미적 욕구를 충족해 줄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눈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남자는 정체 모를 생물체를 단신으로 물리친 후 무기를 가다듬고 있었으며, ‘소지품’의 정리가 끝난 후로는 조금 전까지 험악한 날붙이를 쥐고 있던 손을 살피고 있었다.

   나고는 남에게 쉽게 말을 붙이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때만큼은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저기……!”


   모든 사람이 대피한 도심에는 이름 모를 남자와 나고밖에는 없었으므로, 남자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으리라. 남자의 시선이 처음으로 나고의 눈과 맞닿았을 때, 나고는 무더운 공기에 한기가 퍼지는 듯한 느낌에 팔을 감싸 안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남자는 부드럽게, 그러나 차가운 웃음을 보이며 나고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를 향해 입을 뗀 나고의 몸은 그런 남자의 부드러움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초면에 대뜸 이름부터 묻는 건가요?”


   남자는 자신의 신상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일 터다. 나고의 언사에 불쾌감을 느껴도 이상하지는 않았으나,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남자에게 있어 그는 별로 개의할 만한 것이 못 되는 모양이었다. 나고 케이스케도 그런 것을 신경 쓸 인물은 아니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고가 던진 말에 남자는 팔짱을 끼곤 고개를 기울였다. 흥미는 몰라도 확실히 호기심은 동한 모양이었다.


   “힘이 필요합니다. 아까의 그 괴물같이 추악하고 흉측한 이 세상을 바꿀, 아름다운 힘이. 당신처럼요.”

   “흐응…….”

   “당신의 이름과 소속을 알려 주세요.”

   “알려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을 흐리던 남자는 팔짱을 풀며 걸음을 뗐다. 한 발짝씩 나고와 가까워질 때마다 독특한 향수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겨울바람처럼 시린 향기였으나, 싫은 향은 아니었다.


   “정보료는 줘야 해요.”

   “돈이라면…….”

   “아뇨. 키스로.”

   “뭐…….”


   뜻밖의 이야기에 나고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남자는 나고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맞부딪쳤다. 갑작스레 입이 틀어막힌 나고가 그 순간 불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그리고 금세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워진 것은, 더운 여름에 불어온,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 때문이리라.


   “첫 번째 키스.”

   “……네?”

   “시라미네입니다. 소속은 3WA. 뭐, 당신이 이곳에 들어오기는 어렵겠지만요.”

   “저는…….”

   “다시 볼 수 있길 바랄게요. 그럼.”


   제 이름을 밝히려던 나고의 말을, 시라미네는 단칼에 잘라내고 돌아섰다. 그의 걸음이 멀어지자 바람에 섞여들던 한기도 빠져나가며 다시 무더운 여름의 날씨로 돌아온 듯했다. 눈처럼 차가웠던 남자는 그렇게 자신이 끌어온 차가운 기운을 모두 거두어서 사라졌다.

   나고 케이스케의 첫 키스는 하지의 태양조차 얼릴 것 같은 차디찬 맛이었다.


*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라던 시라미네의 말을 나고는 뼈저리게 느꼈더랬다. 3WA는 기밀 조직이었다. 어디까지나 민간인에 불과한 나고는 접근하기는커녕 정보를 얻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고’라는, 정치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성이 아니었다면 평생이 걸려도 찾지 못할 일이었으리라. 연줄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 얼음 같던 남자 ― 시라미네는 조직 내에서 이름이 자주 들려 오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엘리트’라는 모양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뿐이었지만, 나고는 3WA에 소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이름이 ‘시라미네 타카토’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소속되어 있다고 하는 조직에 들어와서도, 나고가 시라미네를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최전방에서 일하는 인력이었고, 나고는 인제야 전사로서의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했다. 훈련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나고에게 조직의 유명 인사를 만날 기회며 시간이 주어질 리 만무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전투 시스템이 완성되어 시라미네가 직접 시용해 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도 들려왔으나, 조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고에게는 붕 뜬 이야기로만 다가올 뿐이었다.

   나고는 여타 조직원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런 그도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인간 외에 12 종족 이상의 고등 생명체가 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 마만족의 긴 수명이나 고블린족의 물건 만들기 좋아하는 습성, 프랑켄족의 짧은 역사, 키바트족의 마황력 운용 능력……. 팡가이아의 세력 확장과 마족들의 절멸, 레젠도르가와 팡가이아의 전쟁, 그리고 지금. 3WA이 개발하고 있다는 ― 그리고 지금 시라미네가 시용하고 있다는 ‘라이더 시스템’을 통해 여타의 마족과 인간의 신체 능력의 벽을 허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등……. 아직 육체적인 훈련은 잘 따라가지 못했던 나고는 머릿속에 지식 ― 개중에는 활용성이 높은 것도 있었고, 기껏해야 잡지식밖에 되지 않을 쓸모없는 정보도 있었다. ― 을 쌓아 가는 데에는 뛰어났다.

   시간과 노력은 인간은 성장시키는 법이었다. 정보를 찾는 것조차 막막했던 조직에 몸을 담을 수 있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민간인을 다른 마족과의 전투 인력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미숙한 훈련생은 현장의 민간인 대피 인력으로도 활용하면 되었다. 본인의 바람과는 달리, 나고에게 주어진 임무는 후자였다. 원치 않는 일을 맡은 그를 달래 준 것은 뜻밖의 만남이었다.


   “시라미네 씨가 왔다!”


   누군가가 외쳤다. 분명 멀리서 들려 온 목소리였으나, 그 말소리는 꼭 나고를 위한 외침이었던 것처럼 그의 귓전을 강하게 울렸다. 나고가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해 달려간 자리에서는, 인생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눈이 내렸다.

   기괴하게 뒤틀린 형체를 앞에 둔 새하얀 갑옷은 그 어떤 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거미의 얼굴 같은 헬멧도, 곤충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빛의 복안도, 그리고 두 팔과 어깨에 돋아난 거대한 발톱의 형상도 세상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찢어야 할 부위를 찾아 도려내는 몸짓은 첫 만남에서의 그것보다도 더욱 예리하고 우아했다.

   순식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낸 후 무장을 해제한 남자 ― 시라미네 타카토는 여전히, 아니, 갑옷의 아름다움에 걸맞게 첫 만남 때보다도 더 수려한 자태였다. 그러니 나고가 또다시 무심코 그에게 말을 걸고 만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시라미네 씨!”

   “음?”


   찰랑거리는 셔츠를 털고 칼라의 매무새를 다듬던 시라미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기꺼이 반응을 해 주었다. 제법 멀찍이서 자신을 부르는 인영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빙긋 웃으며, 첫 만남 때와 같은 걸음으로 나고에게 다가왔다.


   “용케 들어왔네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랬지. 3WA에 들어오는 것조차 못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 상을 줄까?”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에 나고가 무어라 반문하려는 것을 막는 듯, 시라미네는 나고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그다음은 첫 키스에 대한 기억의 반복이었다. 조금 거친 입술에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이 가 닿았다. 입술의 감촉은 예전보다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 3WA의 라이더 시스템이 사용하는 그 특유의 냉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리라고, 나고는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솔직히 없었다. 당연하지만, 불쾌감 따위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입술은 금방 떨어졌으나 첫 번째 키스보다는 길었다. 그렇다고 아쉬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키스.”

   “시라미네 씨…….”

   “불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된 너도 보고 싶네.”

   “될 겁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나고 케이스케입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나고 군.”


   미련 없이 돌아서는 시라미네의 뒤에서 나고는 허벅지 옆으로 내려둔 주먹을 굳게 쥐었다. 마치 눈의 요요함을 형상화해 놓은 듯한 존재에게 두 번째 입술을 빼앗긴 남자는 차갑게 식은 손가락을 말아 쥐며, 떠나가는 냉랭한 기운을 언제까지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


   세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조우가 아니었다. 시라미네가 있는 곳으로 나고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이유는 3WA 내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그러나 누구도 표면적으로 입 밖에 내지는 않는 ‘비밀’ 때문이었다.


   “시라미네 씨!”


   분노에 찬 듯한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불렀을 때 시라미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여느 때처럼 정성스레 자신의 광택 나는 손톱을 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남자가 바로 옆에 와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에도 시라미네는 그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시라미네 씨, 당신……!”

   “맞아.”

   “당신, 정말로…….”


   나고는 어제 ― 사실 어제라고 하기에는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 다른 조직원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어느 ‘비밀’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라이더 시스템의 원동력과 그 라이더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의 불순한 존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기간트족의 힘을 이용하는 3WA의 라이더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레젠도르가족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팔아치운 시라미네 타카토의 이야기였다.


   “당신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겁니다!”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천화(天花)가 불순물이 되고 만 것에 대해 나고는 분노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찬란하고 황홀한 존재라 해도, 추악한 것이 섞여들면 더러워지고 마는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지. 이 흉측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그래요. 그런데도 당신은……!”

   “그럼 나고 군 너의 눈에는, 내가 ‘흉측해’ 보였나?”


   금방이라도 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던 모든 언어가 일순 죽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꼭 아무것도 없는 자리인 것처럼 줄곧 나고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던 시라미네는 기묘한 질문과 함께 그제야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라미네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나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런 자신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이 무엇인지는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답언은 없었으나 침묵은 훌륭한 답이었다. 시라미네는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나고의 앞에 마주 섰다. 언제나 그렇듯 여유롭고 차가운 미소를 지닌 얼굴이었다.


   “지금은?”


   쐐기를 박는 말에 나고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시라미네는 여전히 나고의 심미적인 바람을 충족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에게서 자신은 인간에게서, 이 세상에서 느낀 적 없는 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시라미네는 하하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얀 구두를 신은 발이 허공을 시원하게 갈랐다. 다리를 꼬고 앉은 시라미네는 손톱 줄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꼭 상대방을 내려보듯 나고를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고블린족이 만드는 물건엔 재밌는 게 많거든. 그중에 어떤 고블린족은 거울을 만들었어. 세상을 추하게 왜곡해 비추는 거울을. 지금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지만.”


   갑작스레 맥락에 끼어든 듯한 이야기에 나고는 의아한 눈으로 시라미네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나고를 바라보는 시라미네의 눈은 한껏 상대를 깔보고 있었다. ‘그럴 것 같았어.’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네가 세상을 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자기 자신에게서는 찾아본 적 없는 모양이네.”

   “무슨…….”

   “거울이 깨졌다고 해도 거울 조각 역시 사물을 비출 수 있는 법이잖아?”


   시라미네의 팔이 천천히 허공을 향해 뻗었다. 그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나고의 가슴, 심장이 뛰고 있는 자리였다.


   “그 조각이 지금 네 안에 있어. 여기, 그리고…….”


   조금 전 앉았던 몸이 다시 천천히 일어섰다. 나고의 가슴을 가리키던 손가락은 그대로 몸을 타고 올라가 굳어 있는 표정에 닿았다. 한번 감싸 잡아 본 적도 있던 그 뺨이었다. 손톱이 잘 다듬어진 엄지손가락이 나고의 떨리는 눈가를 살며시 매만졌다.


   “여기에.”

   “그럴 리 없어요.”


   나고는 자신의 몸에 닿은 ‘불순물’의 팔을 애써 치워내며 돌아섰다. 그러나 먼저 시라미네를 등진 몸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을 뿐이었다. 다리 옆으로 쥐고 있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시라미네는 내쳐진 손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상대가 원하는 이야기는 분명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을 추하다고 여기는 네가 나만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뭘까? 네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건 뭐였지?”

   “…….”

   “자, 그럼 이렇게 물어볼까? 이런 나를 ‘인간’인 네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

   “이런, 늘 낙제생이었던 네게는 너무 어려웠으려나? 그럼 조금 더 쉽게 물어 줄게. 내가 아닌 모든 것은 뒤틀리게 보고 있는 나고 군은,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흉측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나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등 뒤로는 시라미네 타카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뿌리치듯 귀를 막으며 나고는 그저 두 다리를 혹사하며 뛸 뿐이었다.

   나고 케이스케는 3WA에서 도망쳤다.


*


   “…시라미네 씨.”


   그 이름을 부르며 나고는 그리운 쾌감이 퍼지는 듯한 느낌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몇 년 만의 재회였음에도 그의 모습은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그 이름처럼 눈처럼 하얗고 또 고고하게 서 있었다.


   “네 세상에서 아름다운 건 여전히 나뿐인가 봐.”


   재킷의 안주머니에 손톱 줄을 늘 가지고 다니는 것도 전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어느새 또 손톱을 다듬고 있던 시라미네는 보기 좋게 손질된 손끝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은 나고를 보고 있지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는 분명 나고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너에게는, 널 위해 눈물 흘려 거울 파편을 녹여 줄 사람도, 얼음의 궁전에서 너를 꺼내 줄 사람도 없었던 것 같네. 불쌍하게도.”


   시라미네는 잠시 말을 끊고 손끝을 후 불었다. 더 이상 손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광이 나는 손톱을 몇 번인가 매만지던 손은 이내 손에 쥐고 있던 손질 도구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도구의 수명이 끝난 것이리라.


   “얼음의 궁전을 나가기 위해서는 퍼즐을 풀어야 한다지. 하지만 나고 군, 너는 아직 성을 빠져나가기 위한 퍼즐을 풀지 않았잖아? 안 되지, 게르다도 없는 카이가 여왕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성을 빠져나가 버리면.”


   몇 년의 시간은 한 존재의 방황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혼란의 끝에서 나고는 그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가 품었던 절대 명제로 돌아오는 것만으로 혼란은 종식되었다. 세상은 추악했고, 나고 케이스케는 그런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자 했다. 범죄자는 교정 시설로 보내 교화하고, 교화의 여지가 없는 마족은,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낸 이크사 시스템으로 제거한다.

   언제나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얼굴에서는, 마음을 가진 자의 온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 ― 3WA의 가면라이더 ― 의 복안처럼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에 모두 물들어 버린 것만 같았다. ‘불순했던 존재’였던 인간은 세상의 ‘불순물’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시라미네 타카토는 이 혼탁한 세상에 섞여든, 가장 순수하고 추악한 이물이었다.

   그리고 나고 케이스케의 정의는 세상의 추악함을 지워 나가는 것이다. 나고는 이크사 너클을 힘주어 쥐었다.


   “시라미네 씨, 확실히 당신은 아직도 저에게 있어 유일하게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방법은 틀렸어요. 그러니 저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란 존재를 교정해야만 합니다.”

   “하하하……. 그래. 세 번째 키스를 할 시간이야, 나고 군.”


   몰아치는 블리자드와 폭발적인 극열은, 백색 전사들의 마지막 만남, 이분자들의 마침표를 찍을 잉크였다. 차가운 정의가 백설의 추한 티끌을 녹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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