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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게 얼마 만인지는 굳이 헤아리지 않았으나 무척이나 오래되었음은 알았다. 처음으로 사람을 베었던 그날 이후로는 누군가의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을 할 필요도 없었고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소나 돼지를 도축하기 전에 굳이 그것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았다.

   아미리는 달이 되었고, 밖은 조금 소란스러우나 신경 쓸 것이 못 되었다. 어차피 지상의 생명이 모두 꺼지는 것은 그게 얼마가 걸리든 일어날 일이었다. 발악을 해도 부질없는 일이니, 하루살이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신경이 쓰이는 건 눈앞의 황금 기사, 아니 갑주의 소환 시간은 한참 전에 끝났으니 지금은 그저 '도가이 류우가'일 뿐인 남자였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수 번씩 울리는 고동 소리가 시끄러웠다. 이제는 조용히 멎을 때가 된 것 같은데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눈처럼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소리였다. 있는 힘껏 휘두르는 검이 이렇게나 간단히 막혀 버리는데도 포기할 줄을 모르는 게 도리어 재미있기까지 했다. 마계 기사란 질겼다. 진가 자신도 그런 것을 보면, 그의 뿌리도 마계 기사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류우가의 등에 차갑다 못해 시린 벽이 닿았다. 사정없이 밀어붙이는 힘에, 검을 힘껏 잡은 손이 꺾일 것만 같았다. 여유를 가장한 웃음소리에 류우가가 이를 악물었다.


   “뭘 망설이지?”

   “뭐?”


   진가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과 코와 입을 하나하나 뜯어보듯 쓸어내리던 눈길이 다시 류우가의 시선과 맞부딪쳤다. 제 말을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이기는 했으나, 빈틈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역시 가로의 이름을 받은 기사다웠고,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지금 시끄러워서 귀를 틀어막고 싶을 지경이라고. 네 심장 소리 때문에 말이야.”

   “허?”

   “황금 기사. 아니, 도가이 류우가. 너는 들리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에게서 심장 소리가 들리느냔 말이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죽음과 맞닿아 있는 성에 울리는 고동 소리는 오직 한 줄기뿐이었다. 크윽. 억누르고 있던 호흡이 새는 소리와 함께 류우가의 검의 큰 곡선을 내리 그렸다. 진가는 조금 밀리는가 싶더니 빙글 몸을 돌리며 그 힘을 받아넘겼다. 진가의 두 발은 기껏해야 1~2m 정도 떨어진 곳에 가볍게 멈춰 섰다. 두 손으로 바르고 올곧게 검을 쥔 류우가의 앞에는, 오른손에 가볍게 검을 쥐어 류우가를 향해 겨누고 있는 진가가 있었다.


   “인간이 누리는 시간은 짧지. 그 주먹만 한 심장이 멎으면 그걸로 끝이다. 내일도 태양이 떠오를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호러에게 심장 따위는 없지. 죽어도 잠시 지상에서 사라질 뿐, 밤이 되면 결국 다시 지상에 나타나는 불멸의 존재라고. 그 앞에서 찰나를 사는 인간인 네가 망설일 여유가 있을까?”


   굳이 일깨울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빈틈없는 황금 기사에게 망설임은 옥에 티가 될 것이었다. 여느 호러였다면 하지 않았을 얘기였으나, 진가는 호러치고도 별난 축이었다. '불멸의 존재'가 되어서 찰나의 즐거움을 가장 잘 즐기려는 경향성이 있었다. 올지 어떨지 알 수 없는 미래 따위를 생각할 바에야, 현재 재미있는 모든 것을 모두 불살라 없애며 즐겼다. 그런 맥락 위의 행동이었다.

   진가의 의도대로 류우가의 눈에는 조금 전보다 더욱 빛이 돌았다. 빛줄기란 들어올 곳 없을 칠흑의 성안에서 저렇게까지 빛을 낼 수 있는 것도 이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류우가가 검을 고쳐 잡았다. 가로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검도 주인을 닮아 빛이 나는 듯했다. 아니, 주인의 빛을 반사해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명의 인간이 죽어도 인간의 역사는, 기억은 그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이어져. 미래를 보지 못하는 건 마계로 쫓겨나 기억도 역사도 잃어버리는 호러뿐이다!”


   이 자리에 인간이 있었다면 박수를 받았을지도 모를, 황금 기사다운 멋들어진 일장 연설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에게나 감동적일 이야기였다. 또 어떤 인간에게는 우습기 짝이 없는 이상론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 치 의심도 없이 믿는 도가이 류우가의 눈은 진가의 기분을 고양하기에는 충분했다.

   황금 기사는 별미로서 가장 마지막에 남겨 놓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이 꺼질 때까지 버틴다면 최고로 즐거운 순간이 될 것이었다. 부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텨 극상의 쾌락이 되어 세상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황금 기사 가로. 도가이 류우가.

   새카만 어둠과 황금빛이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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