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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계 기사에게 밤낮의 시간 구분은 크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밤이 되면 호러의 출현 가능성이 높아지니 의미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휴식 시간을 결정하는 데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마계 기사에게 보장된 쉬는 시간이란 없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다리에 기대어 강 건너편의 야경을 보고 있자니 이 광경을 마음 놓고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도가이 류우가는 오늘도 도시의 밤을 지키고 있었다.

   밤이 깊어도 도시는 조용해질 줄을 몰랐다. 세상의 뒤편에서 숨다시피 살아가야 하는 마계 기사로서는 그리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인간의 삶과 번영의 증거였으니, 류우가는 그게 싫지 않았다. 밤의 거리에는 피로해 보이는 인간이 많았지만, 의외로 웃고 있는 인간도 몹시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족과 통화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웃음이 가장 좋았다. 곁에 있지 않아도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 웃음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마계 기사를 이끌어주는 등대 빛과 같았다. 적어도 도가이 류우가에게는 그랬다.

   류우가의 손가락 위에서 방울 소리가 울렸다. 자르바의 부름이었다. 검을 쥐고 있는 류우가의 손에도 조금 힘이 들어갔다. 일단 자르바 위를 덮고 있는 것부터 열어 주었다.


   “류우가.”

   “응. 알고 있어.”


   멀지 않은 곳에서 호러의 기척이 느껴졌다. 호러마다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할 것이었으나, 이 정도 크기의 기운이라면 류우가가 아는 한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야경 구경을 끝내야 한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류우가는 다리를 따라 달렸다. 목적지는 하나였다.

   류우가가 도착한 곳은 문이 잠겨 있어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고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그 옥상의 난간 위에 손을 얹은 채 서 있는 뒷모습은 류우가가 몹시도 잘 아는 존재였다. 검은 하늘과 달과 달빛에 드러나는 마천루를 배경으로, 남자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진가.”

   “왔나, 황금기사. 역시 빠르네.”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였다. 류우가의 손이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눈앞의 등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니, 그건 류우가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여전히 류우가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남자는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투지나 살기는커녕 적대심조차도 드러내지 않았다. 류우가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든 진가에게는 상관없었다. 마찬가지로, 진가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행동을 보이든 류우가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대치 아닌 대치 상태로 오랜 시간이 흐른 듯도 했지만, 사실 류우가의 검이 검집에서 뽑히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을 겨누며 류우가가 진가에게 달려들었다. 내리찍듯 몸통 쪽으로 검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진가의 몸에는 닿지 못했다. 가로검에 닿은 것은 밤하늘보다 더 까만 가죽을 두른 검이었다.

   몇 차례 두 자루의 검이 맞부딪쳤다. 힘겨루기와 함께 합을 주고받은 것은 몇 번이었으나, 불과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제 몸을 향해 들어오는 칼날을 튕겨내고, 진가의 다리가 류우가의 복부를 가격했다. 가볍게 휘두른 듯 보였으나 힘에 밀린 류우가는 벌써 저만큼 날아가 있었다. 진가가 나지막한 웃음을 흘렸다. 가까스로 착지한 류우가가 자세를 고쳐잡고 재차 달려들 기세로 정면을 바라보았으나, 웃음소리가 감돌던 자리에는 벌써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새카만 구두 굽은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류우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것뿐이야.”

   “뭐?”

   “조급해할 것 없어. 어차피 머지않아 내 손에 없어질 순간이 올 테니까.”

   “웃기지 마!”


   검집이 검을 삼키기 무섭게 검집의 장식이 모양을 바꿨다. 류우가가 손잡이를 고쳐잡았다. 진가를 향해 검이 휘둘러지자, 검집의 양옆으로 튀어나와 있던 얄쌍한 모양새의 표창들이 제자리를 벗어나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제각기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날붙이를 쳐내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수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공격으로 무언가 대단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는 류우가도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시선 뺏기일 뿐이었다. 단단한 땅을 박차고 류우가도 진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진가가 땅 위로 단단히 발을 디뎠다. 온몸을 던져 부딪쳐 오는 황금기사를 맞이할 준비였다. 새카맣게 뒤틀려 있는 검집이 은같이 빛나는 검을 뱉었다. 달빛을 담은 듯한 두 자루의 검이 부딪쳤다. 검을 사이에 둔 힘겨루기가 또 한 번 이어졌다.


   “정말 꽉 막힌 기사시군. 가끔씩은 달구경이라도 하면서 쉬는 게 어때?”


   류우가의 힘을 요령 좋게 받아넘기며 진가가 반 바퀴 돌았다. 그와 함께 류우가의 몸도 진가의 몸에 맞추어 돌아갔다. 진가의 눈에 담겼던 달이 류우가의 눈동자 속으로 옮겨 갔다. 류우가의 시야에는 하늘을 메운 달이 가득 들어찼다. 그런 달을 등에 지고 진가는 웃고 있었다.


   “자, 봐. 달이란 건 예쁘지 않나?”

   “호러와 노닥거릴 시간은 없어!”

   “황금기사는 참 바쁘시겠어.”


   잔뜩 얼굴을 구긴 채 진가를 노려보던 류우가가 포효하듯 소리쳤다. 그와 함께, 류우가의 검이 진가의 검을 밀어내듯 튕겨내고 크게 공기를 갈랐다. 어이쿠. 반쯤 장난기가 섞인 듯한 목소리를 내며, 진가는 검의 궤적을 피해 흘러가듯 류우가의 등 뒤로 옮겨 갔다. 그러나 류우가가 등 뒤로 검을 휘둘렀을 때 그 자리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에 갈라지고 이내 사라져 버리는 검은 연기 같은 기척만이 잠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 흩어질 뿐이었다.


   “곧 나의 왕국이 시작될 시간이 온다. 성에 초대 정도는 해 주지.”


   꼭 달로 사라진 듯 목소리는 달빛과도 같이 사방으로 내려앉는 듯했다. 길지 않은 목소리를 끝으로 진가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졌다. 표적이 사라진 검은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진가…….”


   투박한 손가락이 검의 손잡이를 단단히 그러쥐었다. 진가의 흔적을 쫓아가듯 달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칼날에 달그림자가 비쳤다. 그의 말마따나 아름다운 자태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달을 담던 검날은 검집으로 돌아갔다. 달을 뒤로하고 류우가는 다시 땅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가 바라봐야 할 곳은 하늘이 아니었다. 류우가의 눈은 다시 지상을 향했다. 그가 지켜야 할,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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