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파더스의 덕개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봄. 첫 번째는 윤리, 도덕, 정의와 생존, 안위,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임. 덕개는 데드파더스에 등장하는 메인 인물들 중 꽤나 타산적인 사람으로 비침. 라더나 공룡처럼 자기가 원하는 삶을 위해 부딪치는 스타일도 아니고, 잠뜰처럼 옳은 일을 위해 정면으로 맞붙거나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사람도 아님.

덕개는 자기의 분수와 깜냥을 잘 아는 사람임. 그래서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그의 선택도 현실의 논리에서 과하게 벗어나질 않음. 환멸을 느끼면서도 울프팩에 남아 있다는 점이나, 데드파더스와 함께 있을 때조차 울프팩과의 정면 충돌을 최대한 피하려는 모습(샤그레이브에 쳐들어온 울프팩과 무력으로 맞선다는 데드파더스에게 “싸운다고? 쟤네(울프팩)랑?” / 울프팩 아지트에서 오늘 울프팩 다 터뜨리고 나가자는 잠뜰의 말에 “내가?”라고 되묻는 점 등)이 이런 덕개의 성향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음.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지도 모름.

덕개가 따른 현실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명제는 ‘목숨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임. 실제로 덕개가 등장하는 씬마다 ‘목숨이 n개도 아니고’나 ‘목숨은 하나뿐’이라는 식의 대사가 꼬박꼬박, 상당히 반복적으로 나옴. 누구에게나 목숨은 하나고 소중하겠지만, 작중에서 덕개처럼 반복적으로 제 목숨에 대한 말과 죽음, 위협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인물은 없음. 즉, 덕개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의 안전이라는 뜻임. (+사심을 덧붙이자면, 그렇게 중시하는 가치를 얘기하는데도 ‘들키면 저도 죽거든요.’ 이런 말을 세상 덤덤하게 하는 게 너무 좋다.)

그렇기에 덕개는 울프팩의 행보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라더와 달리 조직에 남는다는 선택을 했을 것임. 그런데 단순한 말단 조직원이 아니라 간부의 자리까지 올라 그 위치를 수년간 유지해 왔다는 건 그만큼 덕개가 조직에 헌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거임. 중요한 건, 울프팩이 조직원에게 강요했던 것 중 하나가 살인과 약탈이었다는 점임. 즉, 덕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이 환멸을 느꼈다고 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했다는 의미가 됨.

그런데 덕개가 완전히 악인으로 돌아섰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님. 사실, 그렇게 자기 목숨과 안위가 중요하고 보신만이 중요했다면 조직을 배신할 필요가 없음. 윤리, 도덕이니, 정의니 하는 것들에서 눈을 돌리기만 하면, 거대 조직의 간부라는 위치와 그에서 오는 권력, 그리고 간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그 실력으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거란 말임. 그런데 덕개는 또 그렇게는 살지를 못함. 선인도 아니고 영웅은 더더욱 못 되며, 라더처럼 자기 한 몸 벗어나는 일조차 시도하지 못하지만, 덕개는 정말로 무법자처럼 살기에는 또 최소한의 윤리와 정의를 버리지는 못하는 사람인 거임.

완전히 악당이 되기에 덕개는, 10대 여자애가 다 큰 성인 남성 둘을 이끄는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애한테 조직 문신을 새기자는 말에 핀잔을 줄 줄 아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임. 또, 잠뜰이 잡힌 것이 자기가 준 정보 때문인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정도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줄 아는 인물임. 그리고 이 애매하고도 평범한 윤리의식은 울프팩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스파이 짓을 하며 외부로 정보를 빼돌리는 이유가 되며, 울프팩의 와해라는 그의 목적과도 연결됨.

물론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한 스파이 행보는 본인의 생존과 연결되는 일이기도 함. 샤그레이브에서 데드파더스에게 협력을 제안했을 때 덕개는 “나는 조직을 터뜨리고 ‘벗어난다’”라고 함. 즉, 울프팩을 무너뜨리는 것은 본인이 조직을 벗어나기 위한 거라는 의미임. 조직에서 빠져나가려다가 수도 없이 실패하고 죽도록 맞았던 라더의 과거나, 늑대 무리를 배신하면 그 이빨에 물릴 거라는 조라의 말만 봐도, 안전하게 조직에서 벗어나려면 조직을 와해시킬 수밖에 없는 거임.

즉, 덕개에게 생존과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면서도 뒤섞여 있는 것임. 그래서 덕개는 말에서 드러나는 가치관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가치관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극이나 모순이 존재하게 됨. 데드파더스나 잠뜰을 도우면서도 자기는 들키지 않게 해 달라고 한다든지, 조직에 환멸을 느껴 무너뜨리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말로 조직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의 적극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든지, 샤그레이브에서 본인의 권력을 이용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의견을 냈던 사람이 샤그레이브로 쳐들어온 조직원을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인다든지 말임.

이런 두 가치관 사이에서의 갈등과 모순은 울프팩의 조직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덕개가 현상금 사냥꾼이었다는 부분과도 연결할 수 있을 거임. 현상금 사냥꾼은 그 일의 특성상 법, 질서, 윤리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두고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는 직업임.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허용한 것 자체가 법 질서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범법자를 잡아들여 치안을 지키기 위함이지만, 범죄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과격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쉽기 때문임. 애초에 덕개는 울프팩의 조직원이 되기 전부터 이런 갈등을 줄곧 겪어 온 인물이라는 것임.
 

한편, 덕개는 이런 내적, 외적인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았을 거임. 이게 데드파더스의 덕개를 구성하는 두 번째 축임. 물론 덕개에게 이를 강요했던 것은 데드밸리에서의 삶, 더 구체적으로는 울프팩 조직 생활이고, 그중에서도 버디였던 라더의 배신 이후로 더욱 심화되었을 것임.

덕개와 라더는 둘 다 말단이었던 시절부터 간부에 오르기까지 계속 함께했던 사이임. 탈출할 당시에 그렇게 끔찍한 조직이 라더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고, 라더가 조직을 배신하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덕개가 ‘끈끈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였단 말임.

그런 사이였던 라더가 조직에서 벗어나려다가 붙잡히기를 수없이 반복했고, 겨우 빠져나갔을 때에는 조직의 기밀 문서까지 빼돌린 데다가 테러까지 함. 그럼 조직에 남아 있던 덕개는 당연히 조직 내에서 의심의 눈길을 받을 수밖에 없음. 덕개는 조직 내에서 자기의 쓸모를 보여아 할 뿐만 아니라 조직에 대한 충성까지 증명해야 했을 것임.

잠뜰이 울프팩 아지트에서 탈출할 때, 덕개가 부하에게 밑도 끝도 없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부하가 불만 없이 명령을 따랐다는 건, 덕개가 그 정도의 위치까지 올랐다는 뜻임. 곧, 라더의 배신이라는 사건이 있었음에도 그 정도의 권력을 잡을 수 있었을 만큼의 능력과 충성을 조직에 내보였다는 뜻임. 조직의 행보에 환멸을 느꼈음에도 그런 위치까지 도달해 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중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덕개의 과거가 얼마나 치열한 자기 증명의 역사일지 알 수 있음.

그럼에도 여전히 울프팩의 상부는 덕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음. 이는, 잠뜰의 감시역을 자원했던 덕개에게 ‘잠뜰의 탈출을 도우면 옛 버디(라더)처럼 죽도록 맞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협박하는 조라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음.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울프팩은 라더의 배신을 기억하고 있고, 그런 라더의 버디가 덕개였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거임.

수년간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덕개는 자기를 변호하는 일이 습관화됨. 데드파더스와 처음 만났던 때만 봐도 자기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부터 이야기함. 사실 이 시점에서 덕개와 데드파더스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잠뜰의 아빠를 찾아 구해야 하고 보석의 비밀을 밝히고 파괴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는 데드파더스와 잠뜰 쪽은 기밀 문서 가방을 반드시 열어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음. 물론 덕개도 이들을 찾고 있는 중이긴 했지만, 사실 덕개는 크게 아쉬워할 입장이 아니란 말임. 그런데도 덕개는 본인이 먼저 나서서 라더와의 관계와 과거의 인연까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울프팩에서 정보를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 버림.

감옥에 갇힌 잠뜰과 재회했을 때도 마찬가지임. 굳이 스스로 본인이 의심스럽게 보였을 만한 점을 짚고, 잠뜰이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대화함.

덕개는 라더가 떠난 후로 계속 의심받는 처지였을 것임. 울프팩 내부에서는 배신자로, 조직의 외부에서든 악당으로, 항상 누군가에게 신뢰받기 힘들고 의심스러운 위치에 있었을 거란 말임. 그리고 스스로도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자기를 바로 믿을 거라는 생각조차도 안 하고, 바로 본인을 믿게 할 수 있을 만한 말부터 하거나 증명할 수 없으면 포기해 버리는 거임.

또, 다른 하나는 자기의 쓸모에 대한 증명인데, 이건 조직 생활을 하는 인물이니 굳이 말할 것도 없긴 함. 이게 단적으로 드러났던 게 세뇌 당한 상태로 라더와 대면했을 때의 대사인데, “형이 쓸모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릴 일간들인데.”라는 부분임. 사실 멀쩡한 인성 박힌 사람은 사람을 쓸모를 가지고 나누지 않음. 세뇌라는 게 팽의 생각을 주입하는 것인지, 피세뇌자의 잠재의식에 있던 생각을 비트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쓸모없는 사람은 버린다’라는 생각이 덕개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임. 다만, 여기서 덕개는 버리는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었을 것임. 덕개는 과거에 버디였던 라더에게 버려졌고(실제로 라더도 조직에서 떠났던 것을 두고 ‘전부 두고 왔다’고 표현함), 현재는 언제든지 조직에게 버려질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 자기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은 외전 시점까지도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음. 외전에서 덕개는 본인만 이방인 같아서 이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단 말임. 애초에 데드파더스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이유가 명확히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조직도 아님. 그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니 덕개는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음. 자기는 이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냥 받아 주는 사람들이니까 도리어 불편감을 느끼는 거임. 데드파더스의 덕개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자기가 있어도 되는 자리를 찾는 사람이었을 거고,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 되려는 인물이었을 것이기 때문임.

그런데 이렇게 살면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음. 울프팩의 일이 막 끝나고 연구실 밖에서 데드파더스와 다시 모였을 때, 덕개는 울프팩 잔당을 정리하고 나면 ‘한적하게 혼자 살까 싶다’, ‘난 지쳤어. 그만할래.’라고 함. 그동안 조직 내에서 제게 가해지던 압박과 의심이 사라진 후 긴장이 풀어지면서 그동안 억눌렀던 피로감이 몰려온 거라고 생각함.
 

그리고 이렇게 홀로 고립되려는 덕개를 붙잡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는 건 데드파더스, 더 정확히는 라더임. 자기가 이방인 같다는 덕개의 고민은 사실 단순하지도, 가볍지도 않은데, 라더는 그런 고민에 ‘그럼 문신을 새기자’라는 아주 단순한 답을 준단 말임. 이런 단순하고 둔감한 면모가 오히려 덕개한테는 편할지도 모름. 눈앞의 사람이 가면 뒤에서 자기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살펴야 했던 덕개가 유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니 쓸모없어지면 버려진다는 덕개의 헛소리를 깨부수는 건 라더일 수밖에 없음.

데드파더스의 덕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라더인데, 라더는 덕개가 여전히 울프팩의 일원임에도 단 한 번도 덕개를 의심하지 않음. 팽이나 조라는 물론이고 공룡과 잠뜰도 덕개를 한 번씩은 의심하고 총도 겨눴는데, 라더는 그런 잠뜰과 공룡 앞에서 ‘전’ 자도 붙이지 않고 ‘동료야, 동료.’라고 못 박아 말한 인물임. 이러한 믿음은 조직을 벗어난 후에도 덕개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이렇게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덕개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 때문일 것임.

근데 덕개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더라도 내심 라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임. 애초에 데드파더스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라더를 보고 그 시절에 ‘빈민촌 출신 백수’였다고 해 버린 인간임.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사실이 섞여 있는 진심도 있었을 것임. 숫자나 글자를 못 본다는 점도 있지만, 성격이나 행동 자체가 앞뒤 안 가리고 무모하고 단순무식하게 구니까 당연함.

근데 “넌 형을 너무 바보로 보는 경향이 있어.”라는 라더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라더는 덕개의 그런 시선까지도 알고 있음.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덕개를 믿고 좋아함. 그러니 덕개가 라더를 믿지 않을 수 없을 거고,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임. 샤그레이브에서 헤어질 때 ‘여긴 중학생한테 다 맡기냐’라고 하던 덕개가 라더의 말 한마디에 잠뜰을 유능하다고 인정해 버리는 것만 봐도, 덕개에게 라더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 수 있는 거임. 설령 자신을 조직에 남겨두고 홀로 떠났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로 인해 자기가 끊임없이 시험에 들어야 했음에도 말임.

원본 타래: twitter.com/snail_er/status/1367252930244481026

1. 썰 마지막 부분 수정+내용 추가됨. 나머지는 내용상 바뀐 부분 없이 복사, 붙여넣기만 하고 읽기 편하게 문단만 나눔.

2. 커플이 된 상태를 전제로 쓴 거라 이부시마라고 써 두긴 했지만, 내용에 커플링 요소 거의 없음.

2021.03.24. 06:34 마지막 문장 수정

 

 

 

 

  우발적 살인/살인 미수 또는 상해 치사 용의자가 도주해서 404가 쫓는 걸로 시작하는 글러먹은 이부시마(사귀고 있음) 보고 싶네. 마침 현장에서 엄청 가까이 있었던 404, 발이 몹시 빠른 이부키 덕분에 용의자랑 대치하는 상황까지는 왔는데, 용의자가 사람들 틈에 섞여서 도망가려고 했던지라 주변에 인파가 꽤 있는 상태인 거지. 일반인들은 대치하고 있는 용의자와 404에게서 거리를 조금 두고 있는 상태긴 하지만, 구경하겠다고 도망도 안 치고 있는 상태에 용의자를 따라잡은 건 현재 404 2명뿐이라 일반인의 인파 라인을 밀어낼 인원도 더 없는 상황.

  방금 사람 한 명을 죽인(또는 죽이려고 한) 상태라 범인은 흥분한 상태고, 구경꾼도 많겠다 여차하면 일반 시민 한 명 붙잡아서 인질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그나마 404가 범인을 계속 경계하면서도 튀어나오려는 시민들 막으며 뒤로 물러서라고 외치고 있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임.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행인들도 뭔가 싶어서 한 명씩 한 명씩 몰려들고 그럴수록 범인은 인파에 둘러싸여서 도망치기 불리해지겠지.

  그때 범인은 자기한테는 실제 범행에 사용했던 흉기 외에도 몇 가지, 도망치느라 경황이 없던 중에 주변을 막 더듬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가지고 나와서 주머니에 막 쑤셔 넣었던 물건들이 있었음을 떠올림. 범인은 여전히 404를 향해 피 묻은 흉기를 겨눈 상태로, 널찍한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음. 잡히는 건, 개수가 족히 20개는 될 듯한 열쇠 꾸러미와 손보다 약간 긴 수준의 작은 스패너. 손에 들고 있는 칼처럼 날카롭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흉기로 쓸 수 있을 만큼 묵직했음.

   칼은 최후의 보루, 스패너는 혹시 모를 보험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범인은 열쇠 꾸러미를 손에 쥠. 서로 거리를 약간 둔 상태로 범인을 노려보고 있는 404를 한 명씩 빠르게 살피다가, 범인은 손에 쥐었던 열쇠 꾸러미를 힘껏 던짐.

  타깃은 시마도, 이부키도 아닌, 404보다는 뒤쪽이지만 그나마 조금 가까이 다가와 있던 일반 시민 중 한 명으로, 정확히 얼굴 위치로 조준해서 던짐. 범인이 노렸던 일반인은 이부키와 시마의 사이에 있던 게 아니라 시마 쪽(이부키-시마 순으로 서 있다면 시마보다 더 오른쪽에)에 있는지라 이부키는 막을 수 없는 위치고 시마는 아슬아슬하게 막아 줄 수 있는 위치였음.

  범인이 404가 아니라 일반 시민을 노린 이유는 첫째, 경봉을 쥔 채로 경계하고 있는 경찰이라면 뭔가를 던져도 분명 막을 수 있을 테지만 그저 재미 삼아 구경하고 있는 일반 시민이라면 갑작스러운 습격을 막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경찰이 둘밖에 없는 상황에서(지원도 늦어지는 듯하고) 시민이 어느 정도 이상의 부상을 입는다면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을 테니 적어도 한 명은 떼어놓을 수 있는 데다, 나머지 한 명이 달려든다 해도 칼과 스패너가 있으니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

  시마도 이부키도, 범인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뭔가를 던지기까지의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친 것은 아니었고, 이부키는 위치상 움직였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지만, 시마는 그렇지 않았음. 이부키와 함께하면서 덩달아 반응속도며 다리가 빨라지기라도 한 것인지, 범인이 열쇠 꾸러미를 던지기 직전에 시선이 움직이는 걸 보고 몸이 먼저 그 방향으로 나감. 덕분에 원래라면 시민이 맞아야 했을 것을 본인의 몸으로 받아냈는데, 노리던 곳이 얼굴이다 보니 범인이 던진 물건은 정확히 시마의 머리에 맞게 됨. 정확히는 눈썹뼈와 관자놀이에 걸친 부위에.

  십수 개의 열쇠가 찰그락거리며 흩어졌고, 묵직한 금속 뭉치에 맞은 머리가 띵 울리며 무게를 못 이기고 넘어감. 사방으로 아무렇게나 흩뿌려지는 열쇠 가운데에는 피가 묻은 것도 있었음. 칼날만큼 예리하진 않았지만, 납작하게 정제된 금속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들은 사람의 피부를 찢기에는 충분했던 듯함.

  바닥으로 몸이 넘어가는 순간에 이부키와 마주친 시마의 눈은 이부키에게 범인을 잡으라고 말하고 있었음. 그렇지만 이부키의 몸은 시마를 향해 달려갔으며(이부키로서 조금 핑계를 대자면 관성 탓도 있었을지도) 그대로 아스팔트에 곤두박질칠 뻔한 시마의 몸을 받아냄.

  그러는 사이에 범인은 칼로 시민들을 위협하며 404의 반대 방향으로 길을 만들어 도주. 이부키를 보던 시마는 도망치는 범인의 등이 흐려지는 걸 보면서 그대로 눈이 감김.

 

  "젠장...."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제대로 맞았나 보군.'

  꺼지는 의식 속에서 이부키의 목소리가 들림.

 

  "구급차, 구급차 불러!"

 

*

 

  시마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문 후였음. 천천히 눈을 뜨는데, 예상치 못한 통증에 시마는 반사적으로 "윽...." 하고 신음함. 그 목소리에 옆에서 허리도 고개도 푹 숙이고 있던 이부키가 고개를 듦.

   하지만 시마에게는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음. 오른쪽 시야가 새까맸음. 손을 들어 오른쪽 눈가를 더듬어 보니 부드러운 거즈와 붕대가 닿음. 눈을 다쳤나? 그런 생각이 들 때, 이부키가 입을 엶.

 

  "눈은 세이프. 하지만 찍히고 찢기고 한 상처는 열몇 바늘인가 꿰맸대."

  "그래. 범인은?"

  "그 뒤에 지원 왔던 녀석들이 쫓아서 체포 완료. 범인이 도망칠 때 휘말린 일반인 1명이 부상."

  "...."

  "...크게 다치지는 않았대. 손을 조금 베였을 뿐."

  "그건 다행이네."

 

  잠깐의 침묵이 흐르다가 시마는 다시 입을 뗌.

 

  "왜 범인을 쫓아가지 않았어?"

  "뭐?"

  "거기서 범인을 쫓았다면 더 빨리 잡을 수 있었을 거야. 지원도 금방 왔을 텐데."

 

  범인이 도망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경찰 인력이 더 왔던 건 사실이고, 이부키의 다리로 거기서 계속 쫓았으면 범인의 행적을 중간에 놓치지 않았을 테니 체포 시간이 더 앞당겨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렇게 됐다면 일반인이 휘말리지 않아도 됐을 것임. 어디까지나 가정의 얘기긴 하지만, 시마의 말에 딱히 틀린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 그것과 이부키의 판단은 별개지만.

 

  "쫓을 수 있겠냐."

  "지원도 왔을 거고, 그 자리에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이 정도 상처는 응급 처치가 됐겠지."

  "아니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애초에 눈앞에서 시마가 쓰러지는데 그 상황에서 범인을 쫓는다니 말도 안 돼."

  "그건 형사로서의 판단인가?"

  "허?"

 

  아이를 훈육하는 듯한 투로 시마가 물음. 시마답게 차분한 목소리지만, 어딘가 불만족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음. 시마의 그런 반응에 불만스러운 건 이부키도 마찬가지였음.

  잠시의 텀을 두고, 시마가 다시 입을 엶. 조금 전보다는 부드러운 목소리였음.

 

  "이부키. 나랑 파트너로서 처음으로 24시간 근무했던 날 기억해?"

  "뭐야, 갑자기? 말 돌리기?"

  "404호 차가 폐차됐던 사고 때."

  "기억하지. 그보다 그 얘기가 왜 지금...."

  "그때, 이부키는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범인을 쫓았어."

  "뭐?"

  "그때와 오늘. 아까의 현장에서 너는 형사로서 판단한 건가? 아니면 나의 '파트너'로서였어?"

  "...."

  "그것도 아니면 연인이었나?"

 

  시마의 물음에 이부키는 입을 다물고 시마를 바라봄. 붕대와 거즈에 가려진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천장만 보고 있던 시마는 어느새 고개를 돌려 이부키를 바라보고 있었음. 언제나처럼 표정은 없었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시마 쨩."

 

  빙긋 웃으며 이런 말로 장난스럽게 넘기는 듯하던 이부키는 시마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함.

 

  "형사로서도, 파트너로서도, 연인으로서도 아니야."

  "...."

  "나는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지금도 인간으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한참을 노려보듯 서로를 향하던 시선 중 시마의 눈빛이 누그러지면서 하나의 대화가 그렇게 일단락됐음을 알림. 푹 내쉬는 한숨 소리에 병실을 감돌던 팽팽한 기류가 풀어질 때, 이부키가 다시 가볍게 입을 엶.

 

  "그렇지만 말야. 시마 쨩, 굳이 몸으로 막을 필요는 없지 않았어?"

  "그럼?"

  "경찰봉으로 날려 버린다든가?"

  "야구냐? 던진 게 열쇠가 아니라 칼이었으면 어떡할 거야. 무턱대고 쳐 냈다가 잘못해서 시민 쪽으로 날아가면 그거야말로 큰일이잖아."

  "그건 홈런으로 어떻게든."

  "바보냐? 아, 바보였지."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뭐가 재밌는지 이부키는 기지개를 켜면서도 계속 키득키득 웃음. 그러다가 또 새롭게 말을 걺.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돼?"

  "안 됩니다."

  "있지, 시마 쨩."

  "대답을 안 들을 거면 뭐 하러 물어본 거야?"

 

  시마는 볼멘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하, 짧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결국은 이부키의 말을 들어 줄 것임.

 

  "뭔데."

 

  마음대로 떠들라는 듯 그렇게 말을 던지고 시마는 이부키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천장을 바라봄. 나이에 맞지 않는 장난기가 서려 있던 이부키의 표정은 시마의 말을 끝으로 빠르게 굳어 감.

 

  "시마 쨩 말대로 범인이 던진 물건이 칼 같은 거였으면 어쩌려고 했어."

 

  가볍게 날아가는 듯하던 이부키의 목소리는 무서울 만큼 착 가라앉아선 으르렁거리며 분위기를 뒤바꿈. 병실에 침묵이 감돎. 시마는 무섭게 노려보는 눈을 마주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발가벗기고 속내를 들추어 내놓는 것 같았음.

 

  "그때 시마는 뭐였어? 시민을 지키는 형사? 그저 한 명의 인간?"

 

  시마의 눈은 여전히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지만, 거즈나 콧대에 절묘하게 가려져 이부키에게는 보이지 않았음.

 

  "그 순간, 시마를 움직이게 한 건 뭐야?"

 

  직업의식? 인간성? 아니면, 죽고 싶은 본성?

  시마의 눈을 볼 수 없는 이부키에게 시마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 듯했음. 사회적 가면을 쓴 것도, 그렇다고 진심으로 즐거워 드러나는 것도 아닌,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짙은 위화감 어린 미소가, 저녁 노을의 그림자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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