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편과 스토리가 다릅니다.
※ 오글거림, 중2스러움 주의
설정 : 사랑(반짝임)이 응축응축농축농축되면 액체가 됨. 액체=눈물.
노아 부인이 그리타를 구한 후 그동안 깨알깨알 모아 놓았던 응축된 반짝임(=눈물)을 제트에게 뿌림. 하늘 위로 흩뿌려지는 반짝임에 제트는 시선을 뺏김. 슈바르츠랑 싸웠던 사실, 노아 부인이 자신을 찔렀던 사실, 그래서 그리타가 결국 해방되었다는 사실 같은 건 전부 뒷전으로 밀림. 일정 시간 이상 햇빛에 노출되기만 해도 현기증을 느끼던 제트는 당연히 기절함.
제트가 눈을 뜬 곳은 어디까지가 벽이고 어디까지가 바닥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하얀 방이었음. 보석류나 하얀 꽃, 마네킹에 걸려 있는 웨딩드레스 따위의 온갖 반짝거리는 물건들로 장식되어 있어서 밋밋한 공간은 아니었음. 바닥에는 웬 물 같은 것이 찰박거리고 있었음. 제트는 곧바로 그게 자신이 뒤집어썼던 액체라는 걸 알았음. 얼마 동안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장시간 닿아 있던 발이 구름과 같은 어둠으로 승화해 흩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임.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은 덤이었음. 제트의 팔은 벽에 고정된 족쇄에 묶여 있었음. 절그럭거리는 사슬과 손목을 감싼 두꺼운 철이 금속성을 울었음. 회흑색의 족쇄와는 어울리지 않는 크리스탈이 족쇄와 사슬 연결부에 걸려 있었음. 작은 구슬같이도 생긴 그 속에는 제트의 발치에 찰랑거리는 액체가 담겨 있었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노아 부인이 들어섰음. 구두 소리와 함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고요하던 방안에 함께 쩌렁쩌렁하게 울렸음. 노아 부인이 제트에게 주절주절 하는 말은 대략 이런 내용.
"방은 마음에 드십니까, 폐하? 폐하께서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이 노아가 신경을 많이 썼답니다. 아, 폐하가 계신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마을 아래에 있지요. 이곳까지 섀도우 라인을 확장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답니다. 들어보세요, 폐하. 인간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 귀여운 그리타 여제의 발 아래 사라질 것이겠지만 말이에요!"
"말씀드리는 걸 잊어버릴 뻔했네요. 폐하께서 딛고 계신 그 액체 말입니다. 이 노아가 폐하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답니다. 인간들에게서 쥐어짜낸 반짝임이랍니다. 어둠을 모으기 위해 인간들을 '조금' 겁을 줬더니, 끝내는 반짝임을 뿌리지 뭐예요? 인간들 말로 가족이니 친구니 하는 것들과 있으면 더 저항도 심하고 반짝거리나 보죠? 폐하의 '반짝반짝' 타령에 진저리가 나서 이제 반짝임을 모으는 건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을 보는 순간 우리 그리타의 앞길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 이렇게 모아놨죠. 이 노아, 이 반짝이는 것을 모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답니다!"
노아는 손에 든 유리병을 흔들어 보였음. 그 속에 있는 액체가 반짝였음.제트의 눈에 그 액체는 너무도 반짝여서 눈을 제대로 뜨고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였음. 평소보다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은 노아가 하얀 방을 가로질러 제트의 앞에 서곤, 깔깔깔 웃으며 내용물을 제트의 머리 위에 부었음. 타고 녹는 듯한 고통이 제트를 엄습했음. 쇠사슬의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노아의 웃음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방을 채웠음.
"어둠의 황제라는 자리, 잘 받아가겠습니다. 네가 그렇게 원하던 반짝임 속에서 사라져 가거라, 제트."
답지 않은 나직하고 굵은 노아의 목소리와 함께 제트의 의식이 멀어져 갔음. 하얀 방의 문은 굳게 닫혔고, 노아가 떠난 뒤로는 그 누구도 그 근처에 가지 않았음. 방에 깔려 있는 액체는 증발하지도 않고 영원히 반짝거렸음. 제트의 몸은 아주아주 조금씩 약해져 갔으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조금씩 몸의 뚜렷한 형체가 흩어져 갔음.
20년이 흘렀음. 어쨌거나 토큐쟈는 그리타와 노아를 중심으로 한 섀도우라인을 격퇴했고, 레인보우라인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확장되어 온 세계로 뻗어나갔음. 토큐쟈에 의해 무너진 섀도우라인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세력을 결집시킬 구심점이 나타나지 않아 그저 땅 아래에서 조용히 살아갈 뿐이었음.
라이토를 포함한 토큐쟈는 20대가 되었고, 더 이상 토큐쟈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수순을 밟아가며 살아가고 있었음. 어린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상상력과 동심은 현실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음. 그나마 라이토는 때때로 레인보우라인 열차를 보는 듯도 하지만, 눈을 깜빡이면 그마저도 마치 헛것을 본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음. 또, 그런 일들에 대해서도 금방 잊어버리곤 했음. 다들 상상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세계를 살고 있었음.
그러던 중에 라이토는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나게 됐음. 여전히 라이토는 즉흥적이었던 만큼, 충동적으로 시작한 배낭여행이었음. 약간의 돈과 배낭, 비행기표만 가지고 시작한 여행이었음. 길을 걷고 걷다 보니 라이토는 자기가 어느 나라의 어디쯤에 있는지도 제대로 몰랐지만,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것만은 알았음.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종종 무지개가 보이는 듯도 했고, 철로도 없는 곳에서 기적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음. 라이토는 문득문득 어린 시절의 언젠가, 어디에서인가 맡아본 듯한 그리운 냄새를 느끼고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서 떠올리기를 포기하는 일을 반복하곤 했음.
여느 때처럼 길을 걷고 있었음.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길을 헤매기도 했더니 어느덧 해가 완전히 지고 캄캄해졌음.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이었기 때문인지 날이 어두워지자 거리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음. 라이토는 하루 밤 묵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음.
한 발 한 발 힘차게 다리를 뻗던 라이토는 갑작스럽게 땅이 꺼지는 것을 느꼈음. 현대의 말로 하자면 싱크홀이었음. 잠시 정신을 잃었던 라이토가 눈을 떴을 땐 주변이 캄캄한 어둠뿐이었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에도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음. 하지만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뿐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음. 방향감각도 없이 일단 걷기 시작했음.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이 땅은 평평했고, 무작정 걷는 라이토의 발에 걸릴 만한 장애물 같은 것도 없는 듯했음.
그렇게 정처없이 돌아다니던 라이토의 시야에 지평선 저 멀리 빛이 보였음. 거리가 꽤 있어 보였지만 빛이 밝아서인지 주변이 어둠뿐이어서 그런지 그 위치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음. 라이토는 달리기 시작했음. 가까워질수록 빛은 커졌음. 마치 개기일식 때 모양이 드러나는 코로나처럼, 문으로 보이는 직사각형을 둘러싼 빛이었음. 라이토는 문을 밀었음. 갑작스럽게 시야를 가득 채우는 하얀색의 방과 그 안에 반짝이는 물건들로 라이토는 잠시 동안 눈을 뜰 수도 없었음. 어느 정도 동공의 크기가 조정된 후에야 제대로 바라본 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음. 라이토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음. 그와 함께 성장과 함께 잊어버렸던 토큐쟈와 레인보우라인, 섀도우라인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음. 그때의 모습 그대로 제트는 거기 있었음. 지독히도 지쳐 보이는 모습과 연기 같은 어둠으로 흩어져 버린 부분이 그를 감싸고 있다는 것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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