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제외 1,312자




   까마귀에게는 둥지가 없다. 대신 숲속의 어느 장소를 정해 두고 그곳에 몸을 누일 뿐이다. 그 어깨의 깃털처럼 새까만 검을 품에 안은 채 오늘도 크로우는 적당히 마른자리에 엉덩이를 붙인다. 낮에는 오브제의 처리, 밤에는 호러 퇴치. 그 사이의 저녁 시간은 마계기사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르바는 말이 많은 편이었으나, 이 시간만큼은 입을 닫는다. 오른쪽 무릎을 세워 무릎 위로 머리를 떨구었다. 컨디션 조절을 못해서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이때 제대로 쉬어 놔야 한다. 크로우의 까만 눈동자가 이불을 덮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사람에게 공로를 양보받고 싶지는 않다.

   크로우.

   다정한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눈을 떠도, 있는 것이라고는 난색으로 물든 나무들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조금 더 숙인다. 눈을 뜨지는 않았으나, 의식이 너무도 또렷했다. 이것도 관리의 실패라면 실패일까.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일도, 단 한 번의 부름을 들었을 뿐임에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는 것도. 크로우의 상태를 눈치챈 오르바가 조심스레 입을 뗀다.


   “괜찮아, 크로우?”

   “……괜찮아. 잠이 좀 안 오는 것뿐이야.”


   덤덤한 크로우의 말에 오르바는 다시 입을 닫았다. 1분이라도 더 쉬는 데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그다지 도움이 될 것이 없었다. 숲에 다시 정적이 차오른다. 그럼에도 크로우는 좀처럼 잠에 들 수 없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나, 산짐승이 흙을 헤치는 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눈꺼풀 아래 비친 황금빛이 너무 밝기 때문이었다.

   밀정이란 어둠의 저편에 숨어 있어야 하는 존재다. 까마귀가 터부시되지 않는 곳은 그 검은 깃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어둠 속뿐이다. 그가 서 있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늘 그림자에 가려 있던 곳에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태양은 세상의 어둠을 모두 덮어 버리고, 까마귀의 검은 빛깔마저도 노랗게 물들이려 드는 듯했다. 햇볕은 따뜻하지만, 빛은 눈이 부시고, 태양의 정기가 몸속에서 뭉치는 것 같은 감각은 이질적이다. 그 끝에 온몸이 금빛으로 물들면 까마귀는 더 이상 까마귀로서 존재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맹목적인 따스함이, 다정함이 무던히도 괴로워졌다.

   그러나 머리 좋은 까마귀는 그 빛을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기나긴 겨울은 끝났고, 이미 봄 중이다. 어느새 따뜻해진 날씨에 적응한 몸은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할 테다. 자신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를 바라게 된다. 몸을 녹여 주는 태양이 떠오를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 끝에 여름이 오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이 봄이 언제나 되어야 끝날지, 아니, 봄이 끝나고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때가 오기는 할지, 겨울에 태어나 겨울밖에 겪어 본 적 없는 가여운 새끼 까마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크로우, 번견소의 호출이야.”

   “응.”


   크로우가 몸을 일으킨다. 검을 고쳐 쥐고, 길이 나지 않은 숲을 걷는다. 크로우의 손이 코트에 들러붙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마법의를 가다듬는다. 무릎에 문대어지던 머리카락도 가느다란 손가락이 몇 번 훑으니 금세 정리된다. 매무새를 가다듬는 것도 마계기사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크로우는 스승에게 그렇게 배웠다.

   번견소의 부름이라면 호러가 나타난 게 분명하다. 휴식 시간이 줄었지만, 시간이 더 주어졌어도 제대로 쉴 수 없을 게 뻔했으니 오히려 나았다. 그리고 지령서를 전달하지 않고 굳이 직접 불러낸 거라면.


   “가로도 같이 부른 모양이야.”


   까마귀의 태양이 떠오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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