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나와 상관없이 잘도 돌아가는 너라는 행성 그 머나먼 불빛, 모래, 지나가버린 버스
※ 가면라이더 가이무 본편 43화을 바탕으로 썼으며, 본편의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무말대잔치 주의
※ 사망 요소 주의
※ 심하게 짧음 주의
자와메 시도, 팀 가이무도, 마이도. 지켜 주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은 그들을 도와주는 손길을 거부했다. 내 옆에서, 내 손 위에 있었다면 겪을 필요도 없었을 고통이었고 절망이었다. 내가 꿈꿔 왔던 미래의 그림은 카즈라바 코우타라는 먹물로 범벅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혔을 뿐이었다. 내가 가지고자 발버둥을 쳐야 했던, 그럼에도 끝내 얻을 수 없었던 모든 것을 카즈라바 코우타는 당연한 듯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고, 겨우 얻어낸 것조차도 앗아갔다. 그리고 그런 바이러스와 같은 당신을 나는 드디어, 드디어.
빠른 속도로 셔츠를 물들이는 붉은 빛깔과, 한마디씩의 말과 함께 울컥 쏟아지는 진득한 선혈은 코우타와 미츠자네의 이별을 종용했고, 등을 꽉 끌어당기던 떨리는 팔도, 어깨를 부여잡던 손도, 카즈라바 코우타의 죽음을 알리는 듯한 깃털들과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조각들은 아직도 허공에 흩날리며 조금씩, 천천히 그를, 그리고 코우타가 그랬던 것처럼 미츠자네의 어깨를 덮어 갔다. 미츠자네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건 그 하나하나의 빛이 너무도 따뜻하면서도, 또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원했을 뿐인데. 분명 한 번은 닿았을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제는 그려지지 않았다. 안식처에 걸맞은 것을 찾고자 걸었던 길은 오아시스 하나 찾을 수 없는 사막 위 모래성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이 초목이 번성했을 이 비옥한 대지는, 나의 발자국이 새겨짐으로써 이제 바람에조차 힘없이 날아갈 뿐인 모래가 되었다.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카즈라바 코우타’라는 이 행성의 빛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모습일 뿐이었다.
그래, 새삼스럽게도. 당신은 내가 겨우 얻어낸 것조차도 앗아가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