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지막 화 이후 1~2년 정도 흐른 뒤의 이야기. 본편 최후반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 마사카네 '낮', 유키카네 '밤'과 연작으로 생각하고 썼습니다. 염두에 두지 않고 각각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공백 제외 3,766자




   이 시간의 거리는 어디를 가나 소란스러웠다. 큰 도로와는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었으나, 길 양옆으로 즐비한 술집 때문인지 도로의 소음이 없는 만큼 사람들의 요란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걸음을 계속했다. 어차피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으니, 두통이 올 것만 같은 이 소리의 무더기들도 잠깐만 참으면 지나갈 일이다. 참으면 언젠간 지나갈 일이다.

   딸랑. 오늘따라 유독 머리가 울리는 듯해 조금 서둘러 도착한 곳은 사람이 잘 찾지 않는 바였다. 세상 끝까지 따라붙을 것 같던 소음도 바 안으로 들어서면 말끔하게 차단된다. 술을 찾고 즐기는 취미가 없음에도 그것 하나가 마음에 들어서 고른 곳이었다. 아니, 사실 처음 이곳에 왔던 때의 기억은 나질 않았다. 그러니 그저 오늘 조용한 곳이 간절했기에 찾게 된 곳인지도 모른다. 뭐, 이유야 아무래도 좋았다. 조용한 곳이었고, 바에 앉아도 말을 거는 바텐더는 없다. 바텐더는 없었어도 술은 나온다. 그러니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재킷을 벗어 비어 있는 의자에 걸어 두고, 그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입을 떼기도 전에 스탠드에는 유리잔이 올라 있었다. 술을 한입에 털어 넣고, 술과 함께 나온 레몬 조각을 한입에 베어 물었다. 맛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혀 위에 고이는 것 없이 한 모금의 술은 깔끔하게 목 뒤로 넘어갔다. 주류의 독한 향은 취기를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나, 몸 안으로 열기를 밀어 넣기에는 충분했다. 후우. 한 입에 얻은 것이었기에, 꼭 한 모금의 날숨에 빠져나갈 온기에 불과했으나.

   탁. 주인 모를 손이 또 한 잔의 술을 들이밀었다. 이번에는 쓴맛을 달래 줄 비스킷도 함께였다. 건드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고, 잔을 들기를 재촉하는 이도 없었기에 잠시간 가만히 두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늘 밤마다 술잔을 잡았던 날들도 있었다. 높은 눈으로 선별된 안주는 식도락을 즐기지 않는 입에도 항상 맛있었고, 술을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안주와 잘 어울리는 술은 늘 풍미가 좋았다. 다음 날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곤 했음에도 훌쩍 지나가 버리는 시간은 언제나 짧았기에 아쉬웠다. 몇 번이고 ‘추억’ 따위의 이름에 덧칠되어 부질없이 아름다워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버릇처럼 살살 달래듯 미간을 문질렀으나, 늘 그렇듯 마땅한 효과는 없었다.

   부질없는 손짓을 멈추고 팔을 뻗었다. 잠시 미뤄 두었던 잔을 잡고 싶었다. 유리의 서늘한 표면이 아릿하게 손끝을 울렸다. 그러나 또 한 번 독한 술이 입안을 데우려던 찰나, 돌연 옆자리를 차지하고 이미 만들어진 벽 안으로 침범해 오는 인물에게 방해를 받고 만다. 구겨지는 표정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용건이라도.”


   그리 밝지 않은 조명 빛에 절묘하게 그림자가 진 얼굴은 이목구비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그가 웃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기묘한 불쾌감이 일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 ― 물론 ‘바’라는 곳이 그것을 오롯이 보장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 외부인이 침입해 들어오는 것은 물론 불유쾌한 일이었으나, 그런 종류의 감정과는 달랐다. 무언가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듯한 기묘한 불쾌감이었다.

   탁, 테이블 위로 올려둔 잔의 탁한 울림을 시작으로, 눈앞의 인영은 대답을 대신해 웃기 시작했다. 비웃음 따위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순순히 기뻐서 웃는 웃음에 가까운 듯했다. 제 행복을 자랑할 곳이라도 필요했던 모양이지. 바텐더도, 손님도 없는 바였기에 말동무 삼을 만한 사람을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이리라.

   어쨌든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타인과 말을 섞는 취미는 없었다. 공사를 불문하고 불필요한 언사는 줄일수록 이득인 법이었고, 자기 자신은 감출수록 좋은 법이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이야기를 할 만한 것도 없다. 업무상의 일만으로도 빠듯하게 들어차 있는 기억 메모리에 알지도 못하는 남의 사생활까지 담고 싶은 마음 역시 추호도 없었다. 의자 위에 내려두었던 재킷을 팔에 걸며 몸을 일으켰다. 비우지 못한 술잔은 눈에 거슬렸으나, 어차피 술을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그저……?

   돌연 찾아든 위화감에 발이 묶인다. 그러고 보면, 마치 습관이었던 것처럼 찾아온 이 가게의 이름조차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술을 만드는 사람은 없는데 술은 나오며, 희끄무레한 빛에도 선명히 보이는 표정과 그럼에도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인영의 이목구비,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어그러져 있는 듯한 공간에 위화감을 감지하는 동시에, 시간이 멈춘다. 사람들의 말소리는커녕 시곗바늘의 소리조차도 나지 않는 장소였기에 시간이 멈추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그리 느껴졌다. 시간도 공간도 더 이상의 변화와 흐름을 멈추고 그 자리에 고정된 듯했다. 그 사고의 틈새로 파고들듯, 인영의 웃음이 그쳤다.


   “우에스기 씨가, 돌아오셨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세어 보는 것조차 부질없을 정도로 숱하게 들어 온 자신의 목소리였다. 또, 수도 없이 들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들은 기억이 없는, 주체 못 할 기쁨 따위가 서려 있는 음성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모든 부자연성의 원인을 깨닫는다. 이것은…….


*


   눈을 떴어도 장막은 걷히지 않았다. 아직 뻑뻑한 눈을 지그시 감으며 습관처럼 손을 뻗은 곳에는 늘 손목에 채우고 다니는 시계가 있었다. 매끄럽고 다소 서늘하기까지 한 협탁을 더듬어 시계를 쥔다. 시곗바늘은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깨어 있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협탁 위에 다시 시계를 올려두고 눈 위로 팔을 얹었다. 가릴 만한 빛조차 없는 방이었으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꿈자리가 사납기 때문이었다. 자잘한 일에 일희일비하며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비슷한 꿈에 잠을 방해받는 일은 몇 번을 반복해도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꿈 그 자체보다도, 의식이 현실로 끌려 나온 후에 필연적으로 뒤따라오는, 언젠가의 기억 탓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꿈을 꾸는 일이 부쩍 늘었다. 장소는 제각기 달랐어도, 늘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곤 하는 인영은 나 자신의 목소리로, 잃어버린 사람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부질없이 그것을 바라고 마는 무의식의 발현일 것이라고 스스로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론을 지었어도 그는, 나 자신은 끊임없이 의식이 흐려지는 틈을 노리는 것처럼 찾아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의 기쁨의 잔여물을 남기고, 그런 감정 따위는 부질없이 녹아내리고 말 현실로 이 정신을 돌려보낸다. 그렇게 무의식은 언제나 의식을 기만했다. 그에 속아 넘어갔던 때도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기어이 진창에서 건져 올려진 듯한 착각을 해 버리고 마는 때가 있었다. 기껏해야 썩은 동아줄밖에 되지 않을 자기기만이었다.

   그러나 꿈이나 꾸고 있을 나이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나지 않았는가. 등을 좇을 사람도 없고, 칼을 꽂을 뒷모습조차 사라지고 만 이 현실을 다시 직시할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르고 싶은 이름은 더 이상 없었으나, 그가 남긴 것들이 있었다. 자신의 몫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 딱 맞는 자리를 잃어버렸어도, 그가 없는 곳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남아 있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불쑥 나타나 신경을 긁고 사라지는 애송이도, 그가 남기고 간 것이자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끊겨 버린 수면을 이어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으나, 몸을 일으키기로 한다. 시간은 언제나 더뎠으니, 아직 10분도 채 지나지 못했을 터다. 베개에서 떨어지는 머리는 얼마 안 가 띵 울리듯 통증을 일으켰다. 어젯밤에도 느지막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분명 충분치 못한 수면 탓이리라. 미간과 관자놀이 언저리를 문지르듯 눌러 주니 참을 만한 정도는 되는 듯했다. 미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몸을 다시 움직였다. 침구로 다시 끌려 들어갈 듯 구는 몸의 아우성은 무시하기로 한다.

   침실을 벗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거실의 테이블 위에 늘어 놓인 서류 뭉치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들고 소파에 몸을 앉혔다. 아직도 처리되지 못한 재산 상속과 관련된 문서였다. 기어이, 피상속인의 이름이 눈에 밟히고 만다. 꿈과 현실을 가리지 않고 몇 번이고 눈앞에서 반복되던 기억이 어김없이 또 재생된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미간을 조금 구기며 버틸 수 있는 영상이었다. 시간은 고통을 지속하려는 듯 매 순간 느리게도 흘렀으나, 그런 가혹함에도 어찌 됐든 시간에 무뎌지고 풍화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지도 모를 것이 속에서 마모되고 깎여 나간 끝에 남은 것은 부정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사실뿐이었다. 사망신고서와 사망진단서 따위로 현실에 못이 박히고 만 세상의 원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의식이 그토록 바라고 있을 ‘만약’이나 기적 같은 것은 세상에 없었다. 아니, 결국 이리로 사고가 흐르고 마는 것을 본다면, 어쩌면 자신도 아직 썩은 동아줄을 놓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웃음 없는 자조가 뒤따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꿈속의 그에게는 미처 뱉지 못한 말이었다. 또, 아직은 이 세상에 붙들려 있어야만 하는 자에게 던지는 책망의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히 끊을 수 없을 것 같은 주박도 언젠간 끊어질 터다. 현실에 기적을 가져올 수는 없어도, 이 현실을 벗어나는 것은 또 현실의 영역에 있었다. 그러니 그의 이름에 더 이상 불필요한 오점이 남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주인 없는 이름 아래 남겨진 것들을 정리한 후라면, 그 이후라면 다시 그의 등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곳으로 흐르는 사고를 털어내며 흐트러져 있는 서류를 정리하고, 노트북을 연다. 화면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한 시간은 3시 30분을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시간은 언제나 더뎠다. 꼭 떠나려는 이를 조금이라도 더 이 세상에 붙들어 두고 있으려는 듯, 현실의 시간은 언제나 느리게만 흘렀다. 그러니 항상 그랬듯, 이 길고 지루한 삶을 씹어 삼킨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흘러가고 말 이 시간을,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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