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촬 꽃말 합작에 제출한 글입니다.

2. 키바 30화대 후반부~43화의 스포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와타미오 요소가 있습니다.


공백 제외 3,243자




   그와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도착해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각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무척이나 기다리던 만남이었던 탓이었던지, 무심코 준비를 서둘러 버렸던지도 모르겠다. 한 자리에 멀뚱히 서 있고 싶지는 않았기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고른 구두는 굽이 꽤 높았지만, 다리도 발도 아프지 않았다.

   예정에 없던 산책을 즐기던 중 그를 보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적인 일이었다. 건물 밖을 서성이다 쌀쌀한 바람을 피해 따뜻한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큰 회사의 사장이면서도 무척이나 수수한 차림을 즐기는 그는 인파 속에서 그리 눈에 띄는 이가 못 될 텐데도, 하얀 재킷을 걸친 그의 모습을 어째서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문이나 벽 따위 없이 탁 트여 있는 꽃 가게였다. 늘어 놓인 꽃 화분 사이로 들어서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쫓았다.


   “이 가게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줘. 오늘은 특별한 날이거든.”

   “뭐가 특별한가요?”


   구두 굽 소리를 죽였던 것이 무색하게, 무심코 말이 튀어 나갔다. 등 뒤의 목소리를 향해 돌아선 그는 언제나 그랬듯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분명, 내게만 보여주는 상냥함일 터다. 그러나 오늘만은 미처 숨기지 못한 당황의 기색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타이가 씨를 보고 싶어서 일찍 나왔어요. 그것보다 ‘특별한 날’이라니, 뭔가요?”


   그에게 던진 것은 물음의 말이었지만, 답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니,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분명 간절히 기다리던 그날인 것이다. 어쩌면 오늘은 그 이야기를 기다리다 못해 먼저 말을 꺼내고 싶었기에 서둘러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한 말대로,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이 애매하고 불안한 관계를 끝내고 절대로 변치 않는 형태의, 그래, 운명으로 맺어진 관계를 손에 넣고 싶었다. 어쩐 일인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답지 않게 망설이는 그를 대신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해 주신다거나?”

   “……응.”

   “그렇다면, 받아들일게요.”


   눈앞에는 한껏 본 적 없이 기뻐하는 그가 있었다. 킹과 퀸이 맺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단언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는 절실하게 원하던 것을 겨우 손에 얻은 듯 미약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손을 잡아 왔다. 단단하게 양손을 감싸 잡으면서도, 혹여나 부서질세라 겁이라도 내는 것처럼 ― 꼭 유리구슬이라도 쥐고 있는 듯 그의 손끝은 몹시도 부드러웠고, 또, 떨고 있었다. 시릴 만큼 차가운 그 손은 언제나 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으나, 지금만큼은 온기를 머금은 듯한 착각마저 들 것 같았다.


   “이 가게의 꽃을 전부 줘! 아니, 이것만으론 부족해. 더 주문해 줘!”


   처음으로 이 손을 먼저 놓은 그는 점원을 향해 돌아서며 기쁜 듯 외쳤다. 그 하얀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의 두 손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래, 착각이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한겨울의 유리창처럼 차가운 손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듯 구는 타이가도 결국에는 자신과 같은 무기적인 존재였다. 시린 손끝을 그러쥐며,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온기란 없었다.

   눈을 돌린 곳에서 문득, 자그맣게 자라난 꽃잎의 무더기가 눈길을 붙잡았다. 화분을 다 가린 채 만개해 있는 이파리는 지독히도 화려했지만, 그 잎사귀들 사이로 자라 있는 한 줄기의 꽃대는 가여우리만큼 작은 모양새로 서 있었다. 피를 흠뻑 먹은 듯 짙은 자줏빛에 젖어 있는 잎 사이로 자란 것이, 꽃송이도 없이 줄기에 듬성듬성 붙어 있는 꽃잎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일이었다. 꽃의 이름은 분명…….


   “미오?”

   “타이가 씨. 프로포즈를 위한 꽃다발, 이 꽃으로 받아도 될까요? 하나면 충분해요.”


   걱정스러운 낯으로 다가오는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음을 보여주고, 줄곧 바라보고 있던 곳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손끝이 향하는 곳을 따라 그가 눈을 돌리자, 눈치 좋은 점원은 그의 뒤로 걸어와 말을 붙였다.


   “콜레우스 말씀이세요? 다른 꽃은 어떤 걸 섞어 드릴까요?”

   “아뇨, 이 꽃 한 종류면 돼요.”

   “네? 그렇지만 콜레우스는 보통 화려한 꽃 사이사이에 넣어 주는 종류라서 이거 하나만으로는 그다지 예쁘지 않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부탁드릴게요. 잎을 섞어 주셔도 돼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무언가가 걸리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점원은 이내 수긍의 대답과 함께 몸을 돌려 자리를 비웠다. 다시 시선을 돌리고, 수수하게 피어난 꽃의 앞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잎사귀를 매만졌다. 


   “더 화려한 꽃으로 골라도 괜찮은데.”


   어느새 다시 옆으로 다가온 타이가가 말을 걸어왔다. 프로포즈용 꽃다발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그런 말도 덧붙였다. 확실히, 청혼을 위한 꽃다발로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었다. 여러 의미로 그랬다. 그렇지만 스즈키 미오를 향한 노보리 타이가의 프로포즈에는 이 꽃이 가장 잘 어울렸다.


   “이걸로 충분해요. 좋아하는 꽃 중 하나거든요.”

   “그렇구나. ……그러고 보면 이 꽃은, 어딘가 너를 닮은 듯도 해.”


   그를 향해 눈을 돌렸다. 어느새인가 타이가는 탐탁치 않은 듯하던 표정도 거두고,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부족한’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이 꽃의 어떤 면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자신과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만큼은 동의할 수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조용한 대답에 타이가는 이쪽을 보지 않은 채 부드럽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대화가 끝나고 생겨난 공백의 불편함은 작게 피어난 꽃의 무리로 메우기로 한다.

   문득, 며칠 전의 일들이 떠오른다. 그 기억 속에는, 사람 한 명 없었던 늦은 밤의 교각에서 그의 품에 안기던 날도 있었고, 예고 없이 찾아간 그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날도 있었다. 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그의 손은 따뜻하게 등을 감싸 안아 주었고,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분명히 서로 마음이 통했던 시간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도망치듯 이 품 안에서 벗어나 버렸고, 함께하는 시간을 끝까지 채우지 않은 채 식사를 끝내 버렸다. 그것이 그의, 쿠레나이 와타루의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내었다. 멋대로 휘둘리고 주물리던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벗어나, 드디어 원하던 형태의 행복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두려움도 아픔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저 그것 하나만으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도, 계속 피하고 싶었던 만남도 기꺼이 그리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이 손의 낙인이 멋대로 존재의 이유와 방향과 운명을 결정해 버리면서 죽어 버린 듯했던 ‘스즈키 미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 끝에 있는 것이 끝내 좌절일지라도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미오.”


   꽃을 앞에 두고 다짐처럼, 선언처럼 떠올리던 생각들을, 타이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밀어낸다.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던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돌린 곳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는 그가 있었다. 점원과 타이가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꽃다발이었다. 짙은 자줏빛의 잎사귀가 화려한 꽃잎의 흉내를 내며 겹겹이 둘러싸인 사이로, 푸르스름한 연보라색 꽃잎이 줄기들 끝에 이슬방울처럼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상상하던 모습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을 정도로 화사하고 아름다운 자태였다.


   “미오, 나와 결혼해 줘. 나라면 너를 지킬 수 있어. 너를 누구보다도 긍지 높은, 최고의 퀸으로 만들어 줄게.”


   웃음이 나왔다. 기쁨의 웃음인 한편, 조소이기도 했다. 당신은, 화려한 잎으로 작은 꽃을 가려 버리겠다는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좋아요, 타이가 씨.”


   그가 건네는 꽃다발을 기쁘게 받아들었다. 곧 거행될 단둘만의 결혼식,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 있으리라.

   두 손 가득 들어차는 꽃다발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타이가를 바라본다. 당신도, 콜레우스를 닮았다. 머리에 씌워진 왕관과, 발밑에서 기어오르는 뱀과, 두꺼운 가죽 장갑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 왼손의 낙인에 파묻혀 버리고 마는, 가엾은 콜레우스 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에게 이 꽃을 받는다. 콜레우스의 꽃말은 사랑의 끝, 절망적인 사랑. 당신의 사랑에 끝이 오기를 바라며, 끝나게 될 당신의 사랑을 위로하며, 그리고 끝끝내 절망하고 말 나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당신과 나의 사랑을 추도해 줄 꽃을 받는다.

   스즈키 미오를 향한 노보리 타이가의 청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 처연한 꽃을 받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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