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제외 1,586자




   SLPM의 본사는 늘 분주하고 소란스러웠으나, 츠루가조 지사는 언제나 조용했다. 사무실에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기는 했으나, 가장 큰 원인은 이곳 지사장의 성향 때문이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큰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부산스러운 분위기도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주변은 늘 공기가 무거웠다. 그러니 그가 있는 장소는 목소리가 모두 죽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런 우에스기도 카네츠구와 단둘이 있을 때만큼은 제법 분위기가 누그러지곤 했다.


   “바빠 보이는구나, 카네츠구.”

   “……따분하십니까?”

   “카네츠구의 말대로다.”

   “바람이라도 쐬시겠습니까?”

   “아니, 됐어.”


   줄곧 바쁜 듯이 키보드 위를 오가던 손은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노트북을 덮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래프의 추이를 놓치는 것은 좋지 않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저 한 번씩 확인하기만 하면 족한 정도였다.

   사실, 카네츠구는 바쁘지 않았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밀린 일 따위도 없었다. 거대 기업의 임원직에 있는 사람에게서 대부분의 일을 위임받아 처리하는 인물답게, 카네츠구는 유능하면서도 성실한 인간이었다. 그러니 조금 전까지 붙잡고 있던 일도, 다음 날, 다음 주의 일을 미리 당겨서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어느 때라고 해도 그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자신의 유일한 주인이었을 터다.


   “손이 쉬는구나.”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가.”


   내일부터는 주말이었고, SLPM은 사원들의 휴식을 꽤나 잘 보장해 주는 회사였다. 부서나 지사마다 다를 수는 있는 사안이겠으나, 어쨌든 카네츠구는 사에서 보장하는 휴일을 온전히 잘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에는 타인의 집에서도 시계를 편히 풀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이 익은 몸은 내일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뜰 테지만, 의무에 매여 몸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날이었다. 그렇기에 가로등의 불이 들어온 지 한참인 시간임에도 억지로 눈을 붙일 필요는 없다.


   “카네츠구는…….”


   기다란 손가락이 재떨이 위로 장초를 내려놓았다. 달아오른 담배 머리 위로 머리칼 같은 연기가 하얗게 흐트러져 올라갔다. 제법 매캐한 향이었으나,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몇 년이나 그의 곁에서 일하며 익숙해진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 감각 기관은 다른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움직임 없이 그저 노트북 위에 얹혀 있기만 하던 손 위로 궐련의 향기가 밴 손가락이 가볍게 올라섰다. 외부의 자극에 미약하게 반응을 보이는 피부 위에서, 장난기 어린 손끝이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손은 투박한 손가락의 마디마디를, 지문의 무늬 하나하나로 탐색하듯 맴돌았다. 꼭 낯선 놀이터를 찾은 아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모습 같았다. 아이는 산을 하나 넘어 평평한 손등 위에 섰다. 푸르스름하게 도드라진 핏줄 위로 살살 발을 문지른다. 단단한 땅 가운데 말랑거리는 살결이 아이의 발길에 부드럽게 문대어지고, 다시 되돌아온다. 그러나 키가 큰 아이가 놀기에는 비좁은 것인지, 다시 자리를 옮긴다.


   “우에스기, 씨…….”


   가늘게 뻗은 손가락이 닿은 곳은 손목 위로 돋아오른 마루였다. 둥그스름하게 솟아 있는 뼈 위를 가볍게 누르며 빙글거리며 맴돈다. 그리고 끝내는, 제법 부피감이 있는 손목 전체를 손바닥 안에 거머쥔다. 이따금씩 움찔거리며 떨리던 탐색체이자 놀잇감은, 일렁이는 물결의 움직임처럼 은근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흔들리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바쁜가?”


   어느새 저를 향해 부딪쳐 오는 눈동자를, 우에스기는 나지막하고 조용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감싼다. 곧 돌아올 대답을 마저 기다리지 않고, 그는 제가 쥐고 있는 것을 가볍게 들어 올려 제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늘 다물려 있곤 하는 얇은 입술이 손목 안쪽의 여린 살 위를 부드럽게 탐한다. 가느다란 눈매의 끝은 제게 손을 내놓고 있는 이를 향하고 있었다.


   “…아, 니요….”


   만족감 녹아든 숨결이 부드러운 살갗 위를 쓸었다. 숨을 뱉어내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몸을 드러냈다. 카네츠구의 몸이 그의 주인을 향해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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