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제외 9,329자




   저택은 언제나 낯설었다. 우에스기의 자택도 그의 지위에 걸맞게 만만치 않은 저택의 느낌이었으나, 토요토미 가의 위엄에는 미치지 못했다. 부자 단둘이 살기에는 쓸데없이 넓고 거대했다. 사용인이 몇 있는 듯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낭비와 사치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건물이었다. 물론 생각을 말로 낸 적은 없었다.

   우에스기는 그 전부터 종종 이 저택에 불려온 적이 있었지만, 카네츠구를 동반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우에스기의 의지도 아니었고 히데요시의 명령도 아니었으니, 어디까지나 직급과 지위상의 문제 같은 것이었다. 히데요시가 쌓아 올렸던 회사의 임원이기는 했어도 카네츠구는 우에스기의 사람이었고, 우에스기는 윗사람의 부름에 부하를 동반하는 일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우에스기가 히데요시를 만나러 갈 때 카네츠구에게 허락된 일은 오직 마당 밖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는 손은 멈추지 않았으니 한가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주인과 떨어져 있어도 처리할 업무는 언제나 있는 법이었다. 어쨌든, 카네츠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사장과 직접 대면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좀처럼 없는 일인 것이다. 투박한 손가락이 고동색 나무문을 두드렸다. 카네츠구가 자신의 이름을 대기 전에 문 너머에서 명령조에 가까운 허락의 말이 먼저 떨어졌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방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서고라고는 해도, 한 나라의 IT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람의 방치고는 영 현대적인 감이 없었다. 책장과 책상은 물론이고 소파까지도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사 온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런 감상은 속으로 삼키며, 카네츠구는 불필요한 정보를 일단 머릿속에서 치우기로 했다. 지금 가장 알아내야 할 것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였다.

   오래 머무를 일은 없을 거라는 듯 카네츠구는 문이 닫힌 후에도 여전히 문앞에 서 있었다. 그런 카네츠구에게 히데요시도 굳이 앉을 것을 권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금방 끝날 이야기이기도 했다. 백색의 도화지에 푸른 꽃잎 몇 개가 떨어져 있는 듯한 찻잔이 제 짝인 접시 위로 달그락거리며 올라앉았다. 방 안 가득 단내가 풍기고 있었다.


   “카게카츠에게는 미리 말을 해 두었지만…….”


   가볍게 불리는 무거운 이름에 카네츠구가 고개를 들었다. 찻잔 위로 떨어져 있던 저쪽의 눈도 카네츠구를 향해 쳐들렸다. 직접 시선을 마주친 것은 몇 번 되지 않았으나, 언제나처럼 매서운 눈이었다. 문장의 중간에 텀을 두는 동안 무슨 생각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어도 무언가 의도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저쪽은 자신이 그 이름에 반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포식자 앞의 사냥감이 된 기분은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래, 승진이다.”

   “…….”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내놓은 말에 침묵으로 답한 것은,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불친절한 화법에 맞닥뜨렸을 때, 섣불리 되묻기보다는 잠시의 정적 속에서 차근차근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그의 성향에 맞았을 뿐이다. 그가 모시고 있는 상사 덕에 도가 트인 부분이기도 했다. 충분히 쌓인 경험과 영리한 두뇌가 답을 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답을 냈음에도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으나.

   우에스기에게 먼저 말을 해 두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양해를 구한 것일 터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수단이자 장난감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그가 부하의 것을 다짜고짜 빼앗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에스기는 그런 주인을 충실히 따르는 부하였다. 카네츠구에게 이 이야기가 전달되었다는 것은, 그의 주인이 그를 양보했다는 것이었다. 이름 모를 차의 단내에 후각신경에 자극이 누적된 탓인지, 관자놀이부터 미약한 두통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침묵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됐다. 카네츠구는 욱신거리는 미간을 문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익숙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보였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런데?”

   “제게는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


   카네츠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히데요시는 다시 찻잔을 들었다. 흐응, 하는 콧소리와 함께 달달한 향을 한 모금 머금었다. 대답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한 반응이었으나, 카네츠구 역시 그의 반응에 개의치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법 겸손한 대답을 내놓은 이는 겸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일정 부분은 사실이기도 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자리를 벗어나서 지금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의 능력은 우에스기 카게카츠 아래에 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동기 부여는 능력을 이끌어 내는 데 꽤 중요한 부분이었다.


   “자네는 욕심 같은 게 없는 건가 싶었는데 말이야.”

   “…….”

   “그런 자네가 탐내는 것이 그건가? 카게카츠의 옆자리.”

   “……예?”


   카네츠구는 무심결에 되묻는 소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나 감정을 표정에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줄곧 피하곤 했으나, 미처 신경 쓰지 못한 틈으로 당혹감이 새어 나왔다. 내내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던 히데요시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재미있는 것을 찾았을 때 지어 보이곤 하는 표정이었다. 불쾌한 것은 아니었으나, 달가운 것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잘못된 것을 정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욕심 따위가 아닙니다.”

   “오, 그래? 그렇다면 뭐 때문에?”


   카네츠구는 잠시 입을 닫고 말을 골랐다. 꼭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제게 원하는 대답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좋으며, 대답을 들은 남자는 제 안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것인가. 대답을 고민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네츠구는 문득 다시 깨닫고 만, 제 안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기로 했다.


   “우에스기 씨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일 순위로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결국 자네의 욕망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말을 잇기 전, 작게 호흡을 뱉었다. 숨결에 섞여 제 안의 무언가가 함께 빠져나가는 듯했다. 익숙해질 만도 했으나 몇 번을 겪어도 생소한 허전함이 다가왔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다짐이었다.


   “제가 지금의 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이곳이 우에스기 씨를 위해 가장 잘 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리는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입니다. 제가 우에스기 씨의 곁을 벗어나는 것이 그분을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겁니다.”


   업무 외에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퍽 오랜만인 일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내려놓는 히데요시는 어딘가 만족스럽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재미있는 일장 연설이었다. 그 충성심이 향하는 곳이 자신이 아니라는 점은 다소 아쉬운 맛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가 수행하는 모든 일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자신을 위한 것이 될 테니 안타까울 것도 없었다. 볼일은 끝났다.


   “불쾌한 언사가 있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 좋아. 이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지. 가 봐도 좋아.”

   “예, 그럼 며칠 뒤 회의에서 뵙겠습니다.”

   “그래도 자네는 정말이지 카게카츠를 좋아하는구만.”

   “……실례하겠습니다.”


   한마디 더 사족을 붙일까 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사원의 개인적인 영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악취미였다. 그들의 동기가 어떤 것이든, 자신은 부하들이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일해 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카네츠구는 조금의 미련도 보이지 않은 채 문밖으로 나섰다.

   손을 내보낸 문이 다시 굳게 닫힌 후, 히데요시는 전화를 꺼냈다. 액정에 뜬 것은 자신의 옆에서 많은 일을 보좌하곤 하는 이의 이름이었다. 신호음이 금방 끊어지고, 굵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늘 그렇듯 점잖은 예의로 그를 반겼다. 그의 것과는 상반되는 격의 없는 목소리로 히데요시는 상대방의 이름을 불렀다.


   “그쪽에서 거절했어. 아쉽게 됐네, 밋쨩.”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는 그의 말마따나 아쉬운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


   “다녀왔습니다, 우에스기 씨.”


   해는 애저녁에 넘어갔다. 사원들을 늦게까지 잡아 두려는 상사는 없었기에, 츠루가조 지사 건물에 조명기 켜지기 시작할 땐 이미 사무실에 남은 인원이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카네츠구가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은, 지사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상사 한 사람뿐이었다. 우에스기는 마땅한 대답 없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손에 들린 물병의 찰랑거리는 울음이 말소리를 대신했다.


   “아시리라 생각되지만,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건은 거절해 두었습니다.”

   “조건이 좋았을 텐데.”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던지는 말이었다. 종종 한 번씩, 우에스기는 그렇게 짓궂게 굴곤 했다. 카네츠구가 우에스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우에스기 역시 카네츠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상대방을 뻔히 꿰뚫어 보기에 나오는 여유는 히데요시의 그것과도 비슷했다. 다른 것이라면 그 앞에 서 있는 자신에게 있었다. 카네츠구는 설핏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게는 이 자리가 맞습니다.”

   “카네츠구의 말대로다.”


   페트병 바닥에 찰랑거리고 있던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이 우에스기의 목울대를 움직였다. 한 모금으로는 약간 모자란 양이었다. 아쉬운 듯 우에스기의 입술이 소리 없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입을 적실 수 있는 것은 물 말고도 또 있었으니, 오늘분의 것은 이것으로 족했다. 데스크 위에 놓여 있던 시계를 손목에 채우며, 우에스기가 몸을 일으켰다. 무거운 몸을 받아내고 있던 의자가 끼익거리며 해방감을 표했다. 회사의 일원으로서의 하루를 끝낼 시간이었다.


   “오늘도 마실 생각이시죠? 우에스기 씨.”

   “카네츠구의 말대로다.”

   “생각해 두신 곳은 있으신가요?”

   “오늘은… 조용한 곳이 좋겠군.”

   “우에스기 씨의 말씀대로입니다.”


   불이 꺼지는 사무실을 뒤로하고, 카네츠구는 넓은 등을 눈으로 좇으며 걸음을 따라 옮겼다. 우에스기의 옆자리는 늘 카네츠구의 몫이었다. 뒷좌석이 아닌 보조석에 오르는 우에스기에 내심 만족감을 느끼며, 카네츠구도 운전석에 올랐다. 검은 차량이 이내 눈을 밝혔다. 어디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어도, 우에스기가 가려는 곳이라면 카네츠구도 잘 아는 곳이었다. 조용한 곳, 오늘은 분명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일 터다.

   원래도 이 시간의 도로는 제법 빡빡했으나, 오늘은 유달리 더했다. 평소라면 밀리지 않는 곳까지 차량들이 적잖게 들어차 있었다. 사무실이나 본사 다음으로는 차에 있는 시간이 긴 편이긴 했으나, 도로에 갇혀 있는 것은 역시 좋아할 일이 못 되었다. 이렇다 할 표정 변화 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우에스기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다. 조용히 한숨을 뱉으려던 찰나, 문득 낮의 저택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에 적합한 화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카네츠구는 입을 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낮에 사장님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카네츠구의 목소리에, 줄곧 창문 너머의 지루한 풍경을 바라보던 눈이 또륵 굴렀다. 고개를 돌리지도, 눈을 맞춘 것도 아니었으나, 우에스기에게 있어서 그것은 분명한 반응의 표시였다. 카네츠구의 말이었기 때문인지, 자신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인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나.


   “제가 우에스기 씨의 옆자리를 탐낸다고.”

   “아닌가?”


   카네츠구는 잠시 숨을 삼켰다. 부러 뿌리쳤던 히데요시의 마지막 말과 함께 그 저택에 놓고 온 것이 있었다. 어찌할 수 없음이 그것의 속성이라면, 그를 매번 부정하고 도려내는 것이 카네츠구의 일이었다. 어렵거나 괴로운 일은 아니었으나,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길어지고 마는 머리카락처럼 문득 깨닫고 보면 또 자라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손발톱을 잘라내듯 한 번씩 깎아내야 한다는 것이 골치 아플 뿐이었다. 그렇게 잘라낸 것이 몇 번째인지는 이제 기억도 나질 않았으나, 몇 번을 겪어도 잘라낸 자리에 감도는 허전함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무언가를 도려낸 자리가 허전했다. 그러나 이 감각도 또 익숙해질 일이다. 그것에 적응하는 것까지가 카네츠구의 일 가운데 하나였다. 우에스기의 말에 잠시 텀을 두었던 카네츠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제 자리가 없다 해도 우에스기 씨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런가.”


   덤덤한 반응과 함께, 우에스기는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여전히 지루한 광경이었으나, 타이밍 좋게 길이 열리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자동차들이 앞으로 조금씩 움직여 갔다. 그들이 몸을 싣고 있던 차량도 부드러운 엔진음과 함께 나아가기 시작했다. 차가 제 속도를 찾는 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목적지가 그리 먼 곳은 아니었기에 길이 뚫리고 나서 도착하는 데까지는 시간을 오래 잡아먹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술집치고는 제법 조용한 가게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그들을 친숙하게 맞아주는 주인이 있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늘 비슷한 위치의 흡연석으로 안내하는 것은 단골에 대한 대접 같은 것이었다. 우에스기도 카네츠구도 웃는 낯으로 남을 대할 성격은 못 되었으나, 그런 부분마저도 익숙한 듯 주인은 몹시도 친절한 태도로 그들을 안내하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우에스기가 말이 없는 것은 회사 안에서만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천성에 가까운 것이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것은 술자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우에스기 대신 목소리를 내곤 하는 카네츠구도 사적인 이야기로 떠드는 것은 취미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오직 한 사람 앞에서뿐이겠으나, 그마저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술을 마시며 안주 삼을 이야깃거리란 딱히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편함 따위는 없었다. 몇 년이나 쌓아 온 관계란 굳이 억지로 대화를 만들어 내려 하지 않아도 침묵 속에서 충분히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안주가 나오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나, 술은 금방 테이블에 올랐다. 잔을 부딪치고 함께 털어 넣기보다는 채워진 잔을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마시는 것이 좋았다. 꺼리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카네츠구는 그리 술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다. 술이 약하기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또 아니니, 마시려면야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일이기는 했다. 다만, 술자리가 끝난 후 자신의 주인을 자택까지 모시는 것은 늘 카네츠구의 역할이었기에 자제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카네츠구가 한 잔을 다 기울이는 것은 언제나 드문드문하고 더뎠다. 그런 그가 서너 번째의 잔을 들었을 때였다.


   “카네츠구, 종교 쪽의 이야기, 관심 있나?”

   “네? 갑자기 무슨…….”


   카네츠구에게 맥락 없이 질문을 던지고, 우에스기는 제 맞은편에서 의아한 듯 고개를 드는 카네츠구를 보며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항상 침묵을 지키며 위압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그였으나, 보기와는 달리 엉뚱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만 볼 수 있는 그의 일면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그렇기에 그의 메시지를 파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업무상의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행간을 읽을 수 있었으나, 이런 자리에서 던지곤 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감추어진 의도를 읽어 내기가 어려웠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넨 질문에 일단 대답하는 일이었다.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압니다만…….”

   “불교 어느 종파에는 ‘애염왕’이라는 명왕이 있다지.”

   “네?”


   이번에도 우에스기는 말을 더 잇지 않은 채 애매하게 대화를 끝냈다. 남은 것은 카네츠구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아리송한 의문과, ‘애염왕’이라는 이름뿐이었다. 우에스기가 남긴 말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오롯이 카네츠구의 몫이었다. 업무 외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말하자면 숙제 같은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은 본디 껄끄러운 일임이 분명했으나, 그것이 우에스기에게 받은 것이라면 기꺼이 휴식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그와 보내며 무수히 술잔을 나눴어도, 일상 속의 그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면이 많았으므로.

   카네츠구가 그의 말을 조용히 되뇌고 있는 동안, 우에스기는 가득 채워진 잔을 깔끔히 비우곤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 꼬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참 전에 식어 버리기는 했어도, 그가 선별한 가게의 음식답게 여전히 맛은 좋았다. 어느새 테이블의 한쪽으로는, 두 사람이 마셨다기에는 제법 많은 양의 병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흐트러진 기미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카네츠구, 돌아간다.”

   “……네.”


   우에스기의 말에, 카네츠구는 미처 비우지 않았던 자신의 잔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대로 남겨 놓기로 하고 우에스기를 따라 일어섰다. 가지런한 걸음이 우에스기의 등 뒤에서 뚜벅뚜벅 울렸다.


*


   탁. 샤워기의 물소리가 그친 실내에 무기질의 충돌음이 울렸다. 머리카락에 스며 있는 물기가 주백색의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하루를 끝내는 시간대에는 늘 몸이 무거웠다. 피로가 쌓인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카네츠구는 침대 위로 몸을 올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이동이 많은 날이었기 때문인지 유달리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러나 아직 잠에 들 수는 없었다. 카네츠구는 침대 옆의 서랍장 쪽으로 손을 뻗자, 그에 기대어 있던 묵직한 가방이 그의 손에 끌려 침구 위로 올라왔다. 그가 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노트북이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노트북과 함께 검토해야 할 서류도 몇 장인가가 들어 있긴 했으나, 침실에서까지 서류를 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잠들기 전에 노트북을 꺼내어 경제 동향이나 주가 현황 따위를 확인하는 것은 그가 하루를 마치는 과정 중 하나였다.

   화면 속에서 오르내리는 그래프와 숫자를 훑어보고 몇 분간 손가락을 놀리던 카네츠구는 돌연 손을 멈추었다. 한 시간 전쯤 자신에게 던졌던 우에스기의 말이 떠올랐다.


   ‘불교 어느 종파에는 애염왕이라는 명왕이 있다지.’


   불교는 물론이고 어느 종교에도 흥미를 느껴 본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줄곧 그런 삶을 살 터였다. 그러나 자신의 주인이 던진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라면 그런 부질없는 것이라 해도 얼마간의 관심은 나누어 줄 수 있었다. 복잡한 표와 그래프가 그려져 있는 화면이 내려간 자리에 무척이나 단순한 인터페이스의 창 하나가 떠올랐다. 검색창 위로 낯선 이름을 입력하자 무수한 글자들이 액정 속으로 들어찼다. 그 가운데 가장 위에 떠 오른 링크를 누른다. 간단한 정의가 쓰여 있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었다. ‘인간의 애욕을 인정한다.’

   불교의 교리 따위에 관심은 없었어도 남들이 아는 것 정도로는 알았다. 분명 애욕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터부시되는 것일 터다. 아마도 미혹의 근원이니 뭐니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 모든 세속의 것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까지도 이탈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일 터였다. 그러니 감정과 욕망과 탐욕을 버리고 소유에의 집착을 버린다.

   문득 카네츠구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은가. 어느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이 가진 것을 버려 가며 걸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우습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고, 부처가 이런 생각을 읽는다면 분명 어이가 없어 혀를 찰 터다. 카네츠구는 잡스러운 생각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며, 노트북을 닫았다. 그들의 교리라는 것을 더 찾아볼까도 했으나, 역시나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카네츠구는 노트북을 제자리로 돌려 놓고, 몸을 편히 뉘었다. 그래서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인가. 주인은 애염왕이라는 이름을 말하며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속절없이 생겨나고 마는 이것을 버리지 않는 방법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의 말은 언제나 별나고 미궁 같은 면이 있었다. 우에스기가 만들어 놓은 미로를 헤매는 감각을 그저 받아들이며, 카네츠구는 몸의 긴장을 놓았다. 오늘 막 다듬었던 손톱이 유달리 빠르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


   아침 공기가 자못 쌀쌀했다. 슈트 위로 코트라도 걸칠 것을 그랬는가 하는 생각을 머리 한쪽으로 치워 버리며, 카네츠구는 차에서 내렸다. 출근 시간으로는 아직 일렀으나, 카네츠구의 업무는 늘 남들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시작되곤 했다. 회사로 들어서기 전, 항상 그가 먼저 향하는 곳이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에스기 씨.”


   몇 년째 들르는 곳은 굳이 벨을 누를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집만큼이나 익숙하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선 곳에서 우에스기는 베스트의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그는 인사말이 들린 방향으로 짧게 눈길을 던지는 것으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몸에 꼭 맞는 옷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어느새 재킷을 팔에 걸친 우에스기를 대신해, 카네츠구가 식탁 위의 물병을 챙겼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으나, 늘 추위에 둔감한 그였기에 굳이 말을 꺼내진 않는다. 우에스기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카네츠구의 입에서 오늘 하루의 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왔다. 노트북이나 수첩 따위를 보지 않았어도 하루분의 스케줄 정도는 줄줄이 꿰고 있었다. 커프스 아래에 시계를 채우는 것으로 준비를 마친 우에스기의 손 위로 묵직한 물병이 건네진다. 카네츠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물을 넘겼다. 뚜껑이 단단히 잠김과 동시에 카네츠구의 브리핑도 끝이 난다.

   그의 주인과 마찬가지로 혼자 사용하기에는 어지간히 규모가 있는 사택을 등진 채, 우에스기와 카네츠구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고요한 가운데 그르렁거리는 엔진음만이 울려 퍼졌다. 회사로 향할 시간이었다. 첫 일정은 본사에서의 간단한 회의였다.

   브레이크를 밟은 채 기어를 바꾸려던 카네츠구를 향해, 돌연 우에스기가 말을 던졌다. 아침에는 유독 말이 없는 그에게는 별난 일이었다.


   “카네츠구.”

   “네.”

   “‘애연취’라는 말의 뜻, 알고 있나?”


   카네츠구는 기어를 잡던 손을 떼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분명 어제의 연장선에 있는 질문일 터였다. 그는 또 카네츠구에게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또 퀴즈입니까?”


   무엇이 그리 재미가 있는지 우에스기의 입가에는 미상불 웃음기가 번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를 찾아내어야만 하는 입장에서는 마냥 재미있을 수만은 없었다. 끝내 정답을 확인할 수 없는 문제는 답답함만 더할 뿐이었다. 한 가지 어렴풋이 눈치를 챌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또 부처인지 명왕인지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종교 같은 것에 관심이 많으신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럴 리가. 남들이 아는 만큼만 알 뿐이야.”

   “그래서, 뭔가요? 그 ‘애연취’라는 것은.”


   기권을 하기로 한다. 우에스기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카네츠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제가 어렵던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한 눈이었으나, 나무라는 것은 아니었다. 카네츠구는 잠자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돌연히, 우에스기의 손이 카네츠구의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몸을 감아 잡고 있던 안전벨트가 지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늘어났다. 종종 회백색의 화문이 떠오르곤 하는 볼 위를 커다란 손이 덮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힘에 끌려간 얼굴 앞에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좀처럼 눈을 맞추는 일이 없는 우에스기가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카네츠구의 눈동자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처 감기지 못한 채 떨리고 있던 눈은 그 칠흑 같은 시선을 참지 못하고 결국 눈꺼풀을 닫는다. 높은 콧마루가 볼을 문지르고 있었다.

   시각이 차단되고 나니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입술을 감아오는 감촉이었다. 저쪽의 입술을 열고 나온 혀에, 카네츠구는 쉬이 제 안으로의 침입을 허락했다. 여린 점막 사이로 파고드는 살덩이가 혀끝을 시작으로 옭아매듯 닿아 왔다. 찌푸려진 눈살 옆으로 눈썹이 움찔거렸다. 운전대 위에 가볍게 올라 있던 손가락은 어느새 마디마디마다 지그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 긴 시간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카네츠구의 얼굴을 놓아 준 우에스기는 미식을 충분히 맛본 듯 만족스레 제 입술을 쓸었다. 카네츠구의 볼을 덮고 있던 손이, 어느새인가 허벅지 옆에 누워 있던 물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무엇, 을…….”

   “애(愛)가 있기에 취(取)하게 된다는 것.”


   뜻밖의 일에 겨우 말을 찾은 카네츠구가 우에스기를 바라봤을 때, 그는 이미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후였다. 완전히 정지했던 회로를 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는 카네츠구를, 우에스기는 잠자코 기다려 주기로 한다. 명석한 부하이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다. 손가락 끝에 걸려 있는 물병의 찰랑거림만이 차 안에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애염왕이 바라던 것은 분명 이게 아닐 텐데요.”


   나직하고도 조용한 웃음소리가 흔들리는 물소리에 섞여들었다. 여느 때와 같은 여유를 가장하고는 있으나, 아직 다잡지 못한 속마음이 채 걸러지지 못한 채 녹아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영리한 저의 예속은 언제나 기어코 주인의 속내를 읽어 내고 만다. 


   “하지만, 원하는 부분만 취하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게 어른의 방식. 그렇죠? 우에스기 씨.”

   “카네츠구의 말대로다.”


   카네츠구의 노트북 위로 금빛을 두른 愛 자가 새겨진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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