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제외 3,159자




   “아직도 하고 있잖아, 여기.”

   “그렇게 오래전에 왔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가?’ 하고 얼빠진 말을 하며 좁고 지저분한 계단을 내려갔다. 코하쿠와 츠쿠모가 오지 않았던 사이에 건물 안과 밖으로 페인트를 덧칠한 모양이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군데군데 벗겨진 페인트칠은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해 보였다. 사실 코하쿠나 츠쿠모나 이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깔끔한 모습을 본 게 손에 꼽을 정도니, 그들에게 이런 것쯤은 눈에 띄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다소 턱이 높은 계단을 내려가 문을 무겁게 밀자, 어렴풋이 들렸던 소음이 귓전을 때렸다.

   낡은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곳은, 무겐이 아직 ‘코하쿠가 사랑하던’ 그 무겐이었을 적에 자주 왔던 가라오케였다. 워낙 양아치들이 들끓는 마을인 데다가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곳이다 보니, 순수하게 놀러 왔다가도―굳이 이런 이유를 붙이지 않더라도, ‘당시’의 무겐 멤버 누구도 먼저 시비를 걸 만한 성품은 아니었다.― 금세 누군가와 싸움이 붙어 난장판을 만들곤 했었다. 그렇게 시비가 붙을 때면 매번 쫓아내면서도, 다음 날 다시 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손님으로 받아 주는 주인이 썩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마을 사람답게 인상은 더러웠지만. 물론 주인 입장에서야 이런 후미진 마을에서 돈을 벌려면 단골 장사밖에 답이 없을 테니 구태여 손님을 내쫓지 않았을 뿐이리라.


   “확실히 전이랑 다른 게 없는 것 같긴 하네.”

   “리뉴얼 같은 것도 안 하는 거냐.”

   “뭐, 노래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잖아.”


   변한 게 없어서일까, 바로 어제도 왔던 사람들처럼 둘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직업이랄 게 없는 게 이럴 땐 좋았다. 번듯한 사람들이라면 회사든 가게든 어딘가에 틀어박혀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에 팔자 좋게 노래방에 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덕분에 1000엔짜리 지폐 한 장으로 맥주 두 캔 값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숫자에 약한 츠쿠모 대신에 코하쿠가 계산을 하는 것도 그때와 같았다.


   “전에 여기서 시비 붙었던 거 기억나?”

   “한두 번도 아니고, 일일이 기억할까 보냐, 그런 거.”

   “코하쿠 씨 노래하는 거 듣고 옆방에서 시끄럽다고 쳐들어왔던가.”

   “시끄러워, 멍청아.”


   시종 뚱한 표정이 일순 풀리며 10대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마냥 개구지게 웃는다. 며칠 전에도, 아니 따지고 보면 츠쿠모의 웃는 얼굴이라면 바로 오늘 아침에도 봤던 것 같은데. 매캐한 담배 연기와 듣기 싫은 누군가의 노랫소리, 지저분한 복도를 배경으로 웃는 모습은 퍽 오랜만이라 묘한 향수가 느껴지는 듯도 했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적당히 한산한 방을 찾다 보니 거의 노래방 끝까지 왔다. 여기까지 들어온 사람은 없는지 다른 방에서 부르는 노랫소리도 나름 멀찍이 느껴졌다. 남자 둘이서만 들어가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방뿐이었으나, 길게 빠진 다리는 거침이 없었다. 검은 광택을 자랑하는 구둣발이 시원시원하게 들어섰다.

   당연한 일과처럼 먼저 들어선 츠쿠모는 마이크부터 들었다. 사람이 들어온 걸 인식하고 노래방 기계가 요란스럽게도 화재 시 대피 경로를 화면에 밝혔다. 츠쿠모는 다른 하나의 마이크를 들고, 자기보다 한 걸음 뒤에 들어온 코하쿠에게 흔들어 보였으나, 코하쿠는 고개를 저었다. 츠쿠모는 그럴 것 같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 흔들고는 다시 기계 옆에 마이크를 걸었다.

   굳이 노래방이 아니더라도 코하쿠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별달리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본인이 노래를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꽤 뻔뻔한 구석이 있는 성격이었지만, 남 앞에서 노래하는 것만은 그런 그도 꽤 부끄러워하는 모양이었다. 코브라와 야마토는 그런 그에게 억지로 마이크를 쥐여 준 적이 몇 차례 있었으나 츠쿠모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코하쿠 씨 노래하는 거 싫어하면서 노래방은 잘만 다니네.”


   나야 돈 굳어서 좋지만. 그런 말과 함께 가볍게 넘겨 버리며, 츠쿠모는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들고 꾹꾹 숫자를 눌렀다. 노래방에 와선 늘 가장 먼저 부르던 노래였고, 평소 츠쿠모가 보이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제법 감성적인 노래였다.


   “사람을 지갑 취급하냐.”


   그런 불평 섞인 말을 뱉으며 코하쿠는 다소 딱딱한 감이 있는 소파에 털썩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텁텁한 연기가 입술 밖으로 넘실거리며 흘러넘쳤다. 사방이 꽉 막혀 환기라고는 조금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방이었으나, 적어도 그 방에는, 아니 4년, 5년 전부터도 담배 연기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다소 쓸쓸한 느낌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큼, 크흠 하고 몇 차례 목을 푸는 츠쿠모의 앞에 맥주 한 캔이 불쑥 들어왔다. 밑도 끝도 없이 코앞에 들이미는 것이 당황스러울 법도 했으나, 츠쿠모에게는 그게 당연히 제 것인 모양이었다. 코하쿠에게도 그랬다. 그래도 감사 인사는 잊지 않았다. 맥주 캔을 살짝 흔들어 보이며 ‘땡큐.’ 하고 입술 말을 해 보이는 것이었다. 코하쿠도 가벼운 눈짓으로 답을 대신했다.

   소리 없이 오물거리던 입술로 쌉쌀한 음료가 기포를 터뜨리며 넘어갔다. 하― 길게 늘어지는 탄성으로 입을 닦고, 곧장 노래를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다시 들어 봐도 역시 신기하다고 코하쿠는 생각했다. 평소의 무신경한 말투라든가, 싸움질할 때마다 기 싸움을 한답시고 사납게 긁어대는 목소리만 듣던 사람이 노래하는 츠쿠모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리라. 코하쿠뿐만 아니라 타츠야나 야마토, 코브라도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땐 꽤 놀랐었다. 선곡은 차치하고서라도 생각보다 미성인 데다 노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츠쿠모에게 지금 부르고 있는 노래만큼 잘 어울리는 노래가 또 없었다. 적어도 코하쿠가 듣기에는 그랬다. 멜로디니 리듬이니, 가사가 좋니 별로니 하는 것 따위 코하쿠는 몰랐다. 그저 단순한 사랑 노래라기에는 너무도 절실한 분위기라든가, 외로운 어둠 속에서도 끝내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짖는 가사에 마음이 동했고, 그런 노래였기에 누구보다도 ‘타카무라 츠쿠모’라는 인간에게 어울렸다. 독한 담배 연기를 씁쓸한 술로 적시며 들을 노래로는 제일이었다.


   오직 너만을 믿고 살고 있어…….


   그렇게 노래가 끝났던 것 같다. 시종 왼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화면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츠쿠모가 코하쿠의 옆자리에 털썩 소리가 나도록 앉았다.


   “코하쿠 씨, 다음 노래 뭐 할까.”

   “노래 같은 걸 내가 알 리가 없잖아.”

   “하긴 예전부터 노래 듣는 취미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진짜 바이크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네, 당신.”


   츠쿠모의 첫 선곡은 항상 고정이었지만, 두 번째 노래부터는 그때그때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근데 오늘만큼은 정말이지 끌리는 노래가 없다. 부르고 싶은 노래가 더 이상 없다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다음 곡이 예약되어 있지 않자, 노래방 기계는 방금 불렀던 곡을 멋대로 다시 틀어 주었다. 거슬리는 코러스도 없는 노래였기에 그냥 배경 음악 삼기에도 나쁘지 않아 츠쿠모도, 코하쿠도 굳이 노래를 끄지는 않았다.


   “코하쿠 씨, 재 떨어진다.”


   6분 가까이 되는 노래를 마냥 듣고 있었더니 어느새 담배가 꽤 타들어 가 있었다. 그 동안 한 번도 재를 털지 않은 덕에 이미 떨어진 담뱃재는 테이블 위를 굴러다녔다. 츠쿠모가 알려 주지 않았더면 또 애먼 바닥을 더럽힐 뻔했다. 어느 새 입에 담배를 꺼내 물고 있는 츠쿠모가 재떨이를 코하쿠의 손 언저리에 가져다주었다.


   “모처럼이니까 당신도 한 곡 정도 부르면 좋을 텐데 말이야.”

   “부르겠냐.”

   “안 부르겠지만.”


   실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이 적당한 즐거움이 그리웠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직도 변화가 무서운 사람에게는 딱 알맞은 정도의 행복이라고, 코하쿠는 생각했다. 지옥 불에서 타들어 가는 듯했던 1년을 지내고 마시는 단물, 이런 것도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Maria인가.”

   “뭐?”

   “아무것도 아니야. 더 부를 거 아니면 갈까.”


   구태여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츠쿠모가 먼저 일어섰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도 거침없는 걸음이었으나, 방을 나서기 전에는 우뚝 멈춰섰다. 문을 앞에 두고 츠쿠모는 반쯤 몸을 돌려 코하쿠를 바라봤다. 축축한 휴지가 깔린 재떨이에 담뱃불을 끄고, 코하쿠도 츠쿠모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코하쿠가 먼저 방을 나섰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츠쿠모가 그의 뒤를 따랐다.


   “야마토네, 얼굴이나 좀 볼까.”


   츠쿠모의 시선이 코하쿠의 등에 닿았다. 조금 놀란 듯 눈을 치켜뜨던 그는, 이내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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