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썰

[전국남사][마사카네] 190924-25

Snailer 2019. 9. 26. 21:20

원본 타래: https://twitter.com/snail_er/status/1176214167407058944

1. 본편 이후에 재회 후 마사무네가 일방적으로 바라서 꾸준히 만나는 마사카네 기반.

2. 본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쓰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떠들었던 걸 그대로 옮겨 놓은 거라서 앞뒤 내용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투도 왔다 갔다 함.







   카네츠구는 마사무네를 만나는 중에도 꾸준히 뭔가 일을 하고 있겠지. 여전히 愛 자가 쓰여 있는 노트북을 쓰고, 앞에 마사무네가 있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업무를 보는 날이 많을 것이다. 마사무네가 염려하던 것보다 카네츠구는 훨씬 괜찮아 보일 거다. 한번은 'SLPM 말고 다른 회사에 들어간 거야?' 하고 물은 적도 있겠지. 거기에 카네츠구는 '비슷해.' 정도로 대답했을 거야. 어차피 말해도 모르겠지 싶었을 테고 굳이 구구절절 설명해 주기에도 귀찮았을 테니까. 그 이후로도 종종 마사무네는 카네츠구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이면서 물어보기도 했겠지. 카네츠구 옆에 나란히 앉을 때면 왠지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부러 노트북 화면이나 서류에서 눈을 피하는 편이지만, 한번은 "봐도 돼?" 하고 먼저 묻기도 했을 거야. 카네츠구는 마사무네가 있는 동안에는(비단 마사무네뿐 아니라 카페처럼 다른 사람이 있는 때면 언제든) 기밀 사항과 밀접한 업무는 일부러 안 꺼내 놓으니 상관없다 생각하겠지. 카네츠구가 "마음대로."라며 허락해 주면 마사무네는 테이블에 놓인 서류 중 아무것이나 하나 들고 읽어 볼 거야. 근데 온통 재미없거나 어려운 내용 투성이라서 한 페이지도 채 못 읽고 그대로 내려놓겠지. 그러다가 카네츠구 옆으로 조금 더 다가앉아서 카네츠구가 보고 있는 화면을 같이 볼 거야. 사업이나 프로젝트 계획서 같은 게 대부분이라 거기에도 흥미를 못 붙이고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려 버리겠지만. 그럴 때면 카네츠구는 종종 마사무네한테 "심심하면 돌아가지그래?" 하곤 하지만, 마사무네가 그대로 돌아가는 일은 많이 없을 거야. 대신, (카네츠구의 집이라면) "부엌 써도 돼?" 하고 묻겠지. 늘 그렇듯 카네츠구는 쉽게 허락해 주고, 마사무네는 부엌으로 가면서 시간을 확인해. 시간은 2시쯤 될까? 저녁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야. 스위츠류도 만들려면야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결국은 과일 주스 정도나 만들겠지. 빵 같은 게 있다면 설탕과 해서 달달한 간식을 만들 수도 있을 거고. 금방 만들어서 카네츠구가 마실 커피와 함께 내놓으면, 카네츠구는 고맙다는 인사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마사무네가 만든 걸 별다른 거부감 없이 쉽게 먹을 거야. 마사무네와 카네츠구는 그런 식으로 특별하다기엔 너무나 평온한 시간을 함께 보내겠지.


   그러던 어느 날 마사무네가 혼자 길을 걷고 있던 때였어. 카네츠구를 길에서 보게 됐지. 마사무네와 카네츠구는 첫 재회를 제외하고는 따로 약속을 잡아 외출을 하는 게 아닌 이상 밖에서 만날 일은 한 번도 없었어. 그래서 마사무네는 색다른 느낌이 들겠지. 그리고 당연히 반가웠을 거야. 마사무네는 꼭 주인을 다시 만난 강아지라도 되는 것처럼 활짝 웃으면서 카네츠구를 향해 달려가려고 하는데, 카네츠구 옆에 누가 있어. 회사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렇다기엔 복장이 묘해. 카네츠구는 제대로 정장을 갖춰 입은 반면, 카네츠구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회사원의 복장이 아니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에 익은 체형이었어. 분명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야. 마사무네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 자리에서 뒤돌지 못하고 카네츠구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어. 몰래 지켜보려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들키면 안 될 것 같았어. 그럼에도 그날따라 길거리에는 주차되어 있는 차라든가 전봇대 같은 것도 없어서 마땅히 숨을 만한 곳도 없었어. 당연하게도, 어느 정도 이상 마사무네가 다가가서는 카네츠구도 마사무네가 있다는 걸 눈치챘지. 근데 마사무네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카네츠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왜냐하면 카네츠구 옆에 있던 사람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에야스였거든. 마사무네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어. 카네츠구가 한참 동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에야스도 카네츠구에게서 눈을 떼고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지. 곧, 이에야스도 마사무네를 발견했어. 그리고 웃었지.


   "반가운 얼굴이네."

   "이에야스…?"

   "오랜만이야, 마사무네 군."


   마사무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에야스를 계속 바라보다가 다시 카네츠구를 향해 눈을 돌렸어.


   "나오에 씨?"


   설명을 해 달라는 뜻이었어. 그렇지만 카네츠구는 말없이 그저 마사무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 마사무네는 그 눈을 잘 알았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는 눈이었어. 그러니까, 종이 뭉치나 노트북이나 커피잔 같은 걸 바라보는 눈 말이야. 눈앞에 있기 때문에 시선을 줄 뿐인, 아무 의미도 감정도 없는 그런 눈빛이었어. 그리고 생각해 보면 카네츠구는 마사무네를 향해 시선을 준 적이 거의 없었지. 힐끔 보고 다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곤 했어. 다시 말하면 카네츠구는 마사무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 호불호의 감정을 할애할 관심조차 없었던 거야. 그걸, 마사무네는 지금 뒤늦게 깨닫고 있었어.

   혼란스러워하는 마사무네를 여전히 바라보면서, 이에야스가 말했어.


   "당초 예정보다는 빠르지만……. 나오에 씨, 갑작스러지만 지금 당장 해 주셔야 하는 일이 있어요."

   "알고 있어."

   "도와드릴까요?"

   "필요 없어."

   "혼자서는 힘드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네가 있으면 오히려 방해만 돼."

   "그러시다면."


   이에야스가 빙긋 웃으며 한 발 물러서자, 그 자리에서 카네츠구는 망설임 없이 현현했어. 그 힘이 향하는 곳은 마사무네였지. 언제나 마사무네를 향하지 않던 눈이 이 순간만큼은 뚜렷하게 마사무네를 바라보고 있었어. 다만 그 눈에는 마사무네가 원하던 감정이라곤 조금도 없었지. 허한 눈동자에 담긴 것은 목표물을 노리는 사냥꾼의 태도였어. 마사무네는 현현도 하지 못한 채 반사신경에만 의지해 카네츠구의 공격을 피했어. 몇 번인가 맞으면서도 마사무네는 카네츠구를 공격할 수가 없었어. 그렇지만 그런 마사무네의 태도는 카네츠구한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 도망치고 공격을 막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바뀌어 있었어. 이에야스의 모습은 한참 전부터 보이지 않고, 폐 건물 같은 게 남아 있는 곳에는 인적도 무척 드물었어. 덕분에 마사무네는 겨우 입을 열 수 있었어. 카네츠구에게 목이 죄일 뻔한 것을, 겨우 손으로 막고 있던 참이었지.


   "나오에 씨, 왜 당신이 이에야스와…!"

   "이유가 필요한가?"

   "하지만 이에야스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역시 당신 아직도……. 근데 어째서 이에야스 같은 녀석과 함께하고 있는 거야!"


   마사무네의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어. 카네츠구는 마사무네의 말에 대답하기를 멈추고 더욱 마사무네의 목을 조이겠지.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을 것 같던 마사무네는 카네츠구의 팔을 붙아 그대로 앞으로 메쳤어. 마사무네의 힘에 넘겨진 카네츠구는 능숙하게 몸을 굴려 충격을 완화하곤 금방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어. 마사무네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지만 카네츠구는 마사무네의 이해 따위는 필요치 않않겠지. 사실 그대로 다시 입을 닫을 생각이었지만, 왠지 카네츠구는 한마디를 더 얹고 싶어졌어.


   "네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건 조금 아쉽군."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 한마디는 마사무네를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지. 그리고 카네츠구의 말에 흔들리고 있던 찰나 마사무네의 뒤에 돌연 그림자가 나타났어. 발소리도 없이 나타난 그림자는 손쉽게 마사무네를 기절시킬 수 있었어. 카네츠구가 표정을 조금 구기며 혀를 찼어.


   "쓸데없는 짓을."

   "기다려 드릴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지루해서요. 그나저나 나오에 씨가 마사무네 군과 만나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미리 알았다면 계획이 훨씬 더 앞당겨졌을 텐데."

   "공사 구분은 확실히 지키고 싶었을 뿐이야."

   "그건 우에스기 씨 일 때문인가요?"

   "……."

   "하하, 화내지 마세요. 그럼 갈까요?"


   이에야스가 정신을 잃은 마사무네를 짊어진 채 먼저 나아가고, 카네츠구는 대답 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어.


   마사무네가 눈을 뜬 곳은 사방이 어두운 방이겠지. 몸은 움직일 수 없을 거야. 시간이 좀 지나 눈이 어둠에 적응하고 나서 고개만 겨우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방이었어. 쿰쿰한 곰팡내도 나겠지. 벽지도 발려 있지 않은 컴컴한 곳이니까 지하인 것 같아. 마사무네가 누워 있는 곳은 딱딱한 침상이었어. 매트리스나 쿠션은커녕 베개도 없었지. 아무래도 자려고 만들어 놓은 건 아닌 것 같아. 몸은 팔다리는 물론이고 몸통까지도 튼튼한 가죽 벨트에 묶여 있었어. 아무튼 마사무네 본인한테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닌 것 같아. 그래서 현현으로 끊어내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현현을 할 수가 없네. 마사무네가 당황스러워하며 무작정 바둥거리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어. 이에야스와 카네츠구였지.

   카네츠구는 이에야스를 따르는 게 아니라 이에야스와 함께 노부나가를 따르고 있는 거였다. 미츠나리와 우에스기가 서로 사이가 안 좋았음에도 같이 일하던 것처럼, 지금 카네츠구는 이에야스랑 그렇게 일하고 있을 뿐이지. 길을 잃었던 카네츠구는 우에스기(정확히는 히데요시지만)가 따르던 사람을 따르기로 한 거겠지. 이걸 알게 되는 건 카네츠구가 죽고 난 다음이었으면 좋겠네. 이에야스한테 듣겠지.

   노부나가가 마사무네를 노리는 이유는 검은 갑옷을 다시 만들어내고, 혼노지를 계기로 잃었던 진성 현현의 힘을 다시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노부나가는 카네츠구에게는 다시 현현의 힘을 줬지만 이에야스한테는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이에야스는 워낙 야망도 크고 예측할 수 없게 움직이는 부분이 있어서 노부나가 자신이 현현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현현시킬 생각이 없었던 거겠지. 카네츠구는 업무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인간인 데다 우에스기의 일을 이어받았다는 자각이 있어서 배신 같은 건 안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우에스기에게 헌신했던 것만큼 일해 주지는 않을 테지만, 이 정도만도 충분하다는 느낌이겠지.

   마사무네가 현현하지 못했던 건 일시적인 현상일 거야. 약물로 현현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걸 역으로 이용해서 현현을 막는 방법을 찾은 거겠지. 가성 현현자는 완전히 힘을 잃게 되지만 마사무네는 진성이라서 일시적으로밖에 막을 수 없는 거였으면 좋겠다. 방으로 들어온 이에야스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마사무네는 다시 현현의 힘이 돌아오고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물론 그것도 노부나가의 예상대로였겠지만. 마사무네를 붙잡아 놓은 건 그 약물을 테스트하기 위함도 있었을 거야. 마사무네는 가죽 벨트를 끊어버리자마자 이에야스한테 달려들겠지. 이에야스는 마사무네한테 맞고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치는데, 그 뒤에서 카네츠구가 주사기를 꺼내 마사무네의 등에 박아 넣고 약을 주입하겠지. 마사무네가 한 번 맞은 적 있는 그 약물이었어. 마사무네의 현현은 맥없이 풀려 버리겠지. 주사기가 꽂혔던 어깨쯤을 감싸쥐고 마사무네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으면 좋겠다. 막으려면야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에야스와 카네츠구는 굳이 막거나 쫓아가지 않았어. 진성 현현의 힘을 옮기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대로 놔 주기로 한 거겠지. 이대로 약물을 쓰면서 계속 가둬 놓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거야. 비용 문제도 있고 혹시나 거듭된 약물 주입으로 완전히 현현을 잃어 버리면 그것도 곤란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네츠구는 마사무네가 다시 자기를 찾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겠지.


   카네츠구의 예상대로 마사무네는 며칠 후 카네츠구를 찾아왔어. 아무런 거리낌없이 카네츠구는 문을 열어 줬지. 꼭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어. 카네츠구가 보여온 일련의 행동들을 마사무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오늘 찾아온 것도 그걸 알고 싶어서였지. 카네츠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카네츠구는 자기의 생활 반경 안으로 자신을 들인 것인지, 받아들였다고 생각한 자신을 어떻게 그리도 쉽게 공격할 수 있는지, 자신은 카네츠구한테 뭐였는지 그런 것들을 마사무네는 묻고 싶었어.


   "묻고 싶은 게 많아."

   "말해 봐."


   마사무네는 여러 가지를 물었어. 그에 대한 카네츠구의 대답은 길지 않았어. 결론은 하나였지. '일이니까.' 다만 한 가지, 당신에게 있어 나는 뭐였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어.


   "그건 아무 의미 없어."


   답을 회피한 거였지만, 마사무네는 자신이 카네츠구한테 의미 없는 존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겠지. 대답을 들을수록 배신감을 느낀 끝에 마사무네는 말해.


   "역시 당신은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야."


   사실 마사무네는 카네츠구를 싫어했어. 미츠나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거든. 기본적으로 SLPM이란 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사무네와 함께할 수 없는 인간상이었어. 그런 맥락으로 카네츠구를 믿지 못하고 싫어했지. 그런 마사무네가 카네츠구를 받아들인 건 작은 등불같이 마음 한 켠에 피어 올랐던 동정심이 시작이었겠지. 다시 만난 카네츠구는 늘 무언가를 붙잡고 있지만 어딘가 기운이 없는 듯했고 외로워 보였어. 사람들 챙기길 잘하는 마사무네가 지나치기에는 너무 위태로워 보였지. 더군다나 마사무네는 카네츠구가 오열하던 순간을 본 사람이잖아. 신경을 끄기 어려운 성격이 카네츠구에게 손을 뻗게 했고, 그렇게 관계가 시작되고 이어졌지. 그리고 관계가 이어질수록 그 위에 쌓이는 감정은 깊어졌어. 전한 적은 없었어도 카네츠구는 알고 있었고, 카네츠구가 알고 있음에도 답해 주지 않는다는 걸 마사무네도 알고 있었어. 그리고 마사무네가 알고 있다는 것을 카네츠구도 알아. 그런데 그런 미묘한 감정을 사이에 두고도 카네츠구는 마사무네를 밀어내지 않았거든. 그건 자기가 품고 있는 감정과는 달라도 정이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일 거라고 마사무네는 생각하고 있었어. 그 믿음이 이번 일을 계기로 깨지게 되어 버렸지만. 마사무네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어.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카네츠구는 덤덤하게 하고 있던 일을 이어서 했어.


   마사무네가 카네츠구와 다시 만나게 된 건 그날로부터 보름~한 달쯤 뒤였어. 카네츠구는 정장을 입고 있었어. 그게 뭘 의미하는지 마사무네는 잘 알고 있었지. 카네츠구는 '일'을 하러 온 거야. 카네츠구는 이미 현현을 한 상태였어.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만큼은 마사무네도 망설임 없이 현현했어. 카네츠구와 마사무네 사이의 공방이 시작됐어. 사실 마사무네가 진심으로 상대한다면 싸움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마사무네는 아직 마음을 완전히 접지 못했거든. 카네츠구를 공격해야 할 순간마다 멈칫거리는 자신이 있었어. 그리고 카네츠구를 공격하고 나서 울컥하는 마음이 드는 자신이 있었지.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도 좀처럼 잘 안 돼. 그렇지만 자기만의 의지로는 이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마사무네는 계속 싸워야 했어. 셀 수 없을 만큼 합을 주고받으며, 시간은 계속 흘렀지. 카네츠구가 마사무네 위에 올라타 팔로 목을 내리 누르며 제압하는 양상이 되었어. 마사무네는 카네츠구의 팔을 붙잡은 채 버티다가, 견디지 못하고 외쳤어.


   "역시 납득할 수 없어! 당신은… 나오에 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나만의 착각이었던 거야? 나오에 씨가 나를 받아들여 줬다고, 내가 착각했던 것뿐이야?"

   "무르군. 말했잖아, 그런 건 의미 없다고."

   "나오에 카네츠구!"


   그 순간이었어. 겪어 본 적 없는 고통이 퍼졌어. 떨리는 눈동자를 굴려 통증의 근원지를 내려다본 곳에는 기다란 검날이 배를 꿰뚫고 있었어. 그런데 자기가 찔렸다는 것보다도 마사무네를 당혹스럽게 한 건 자기 위에 올라타 있는 카네츠구의 모습이었어. 마사무네를 찌른 검은 카네츠구의 몸을 꿰뚫고 들어온 거였거든. 마사무네는 자기를 짓누르고 있던 팔에 힘이 빠지고 있음을 느꼈어. 곧 이어 카네츠구와 마사무네의 몸을 관통했던 검이 빠져나갔어. 그와 함께 카네츠구의 몸은 검이 빠져나가는 방향을 따라 쓰러졌어. 카네츠구의 배에서 왈칵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피가 분홍색 셔츠를 흥건히 적시며 바닥으로 퍼져 나갔어.

   쓰러지는 카네츠구의 몸 뒤에 서 있던 건 이에야스였어. 두 사람을 찌르고도 이에야스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어. 강한 열망이 고여 있는 눈이었어. 마사무네는 배의 상처를 감싸쥐고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고 이에야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어. 현현을 하지 않은 이에야스의 몸은 쉽게 나가떨어졌지만 기절하지는 않았나 봐. 이에야스는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섰어. 그 짧은 사이에 부쩍 퀭해진 듯한 카네츠구의 눈이 이에야스를 향했어.


   "이에야스……."


   기침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카네츠구가 이름을 부르자, 이에야스는 검을 고쳐 잡으며 입을 열었어.


   "아무래도 노부나가 씨의 계획에는 마사무네 외에도 꽤나 강한 가성 현현자 한 명 정도 필요한 모양이라서요. 노부나가 씨는 저를 다시 현현시켜서 재료로 쓸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럴 수는 없죠."


   이에야스는 어딘가 핀트가 나간 듯한 모습이었어. 아무래도 카네츠구와 마사무네가 있는 곳으로 오기 전에 무슨 일을 당한 건가 봐.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는 몸으로 이에야스는 다시 카네츠구에게 달려들 모양새였어. 그 앞을 막아서고 있는 마사무네도 이에야스의 목표물이기는 마찬가지였어. 이에야스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어. 마사무네는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칼에 찔린 곳 때문에 몸을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어. 머리 위로 들리는 검에 마사무네가 꼼짝없이 베이게 생겼을 때, 이에야스는 그 자리에서 갑자기 쓰러져 버렸어. 앞으로 고꾸라진 이에야스의 목덜미에는 주삿바늘 자국 같은 게 여럿 있었어. 한조 남매가 없으니 약물을 써서 다시 현현시키려고 했던 흔적이었을 거야. 그런데 약물만으로는 한조 남매가 현현시키는 것만큼 완벽하고 강하게 성과가 나지 않으니 약물을 과다 투입한 거겠지. 실험의 의미도 있었을 거야.

   어쨌든 가까스로 살아남은 마사무네는 카네츠구를 향해 기어갔어. 카네츠구의 숨은 벌써 미약해져 있었어. 카네츠구는 마사무네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어. 그리고 속삭이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어.


   "난 말이야,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건 이제 질색이야."

   "뭐?"

   "그런 건 그때 한 번으로 족해."


   마사무네는 카네츠구가 말하는 게 언제인지 바로 알 수 있었어. 과거 마사무네와 싸웠던 그 폐건물, 그리고 세키가하라를 말하는 거겠지. 그리고 마사무네는 곧 지난번에 카네츠구가 이에야스와 하던 대화를 떠올렸어. 공사 구분을 확실히 하고 싶다던 그 말 말이야. 마사무네의 질문에 의미 없다고 대답했던 것과도 이어지는 거였어. 마사무네는 그걸 지금에서야 깨달았지. 카네츠구의 그런 말과 태도는 일종의 포기였어. 마음속 무언가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에야스 옆에 있을 수 있었고, 마사무네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또 그렇게 받아들인 마사쿠네를 거리낌 없이 제거하려고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역시 이에야스는 증오스럽군."


   카네츠구에게 있어 남은 삶은 어떻게 해도 후회를 떠안고 살 수밖에는 없었겠지만, 이에야스와 함께하는 건 꼭 우에스기를 배신하게 된 느낌이었겠지. 자조하듯 힘없이 픽 웃는 소리는 숨에 섞여 생명이 빠져나가는 소리 같았어. 마사무네는 다급해졌어. 119든 경찰이든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를 않았어.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움직이는데도 말이야.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나오에 씨!"


   마사무네는 축 늘어진 카네츠구의 손을 붙잡으며 외쳤어. 하지만 카네츠구는 마사무네의 손을 맞잡아 주지 않았어.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카네츠구는 자기가 이 자리에서 생이 끝날 걸 잘 알고 있었어. 더 살아가고 싶은 마음도 그다지 없겠지. 이런 순간에도 카네츠구는 포기하고 있었어. 마사무네도 그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카네츠구의 이름을 불렀는지도 몰라.


   "나오에 씨. 카네, 카네츠구 씨…. 카네츠구…!"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카네츠구'라고 불릴 때 잠깐이나마 그 손이 움직였던 것 같아서, 마사무네는 계속 카네츠구의 이름을 불렀어. 부르고 부르다가 속마음까지 뱉어 버렸지.


   "좋아해. 나 카네츠구를 좋아해.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싫어하고 싶은데, 그런데 내 생각대로 안 돼. 그러니까 죽지 마. 죽지 말아 줘…."


   마사무네는 흐느끼고 있었어. 아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거야. 카네츠구를 세상에 붙잡아 놓고 싶어서 되는 대로 막 말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카네츠구의 손가락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어. 마사무네의 정신이 흐려지는 것처럼, 카네츠구의 생명도 꺼져 갔어.


   마사무네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어. 이에야스가 도검을 든 채 거리를 뛰어가던 걸 어느 시민이 신고했었거든. 이에야스가 향한 곳으로 경찰이 출동했고, 그곳에 쓰려져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겼던 거였어. 미리 말하자면 카네츠구는 죽었어. 애초에 본인에게 살 의지가 없었던 데다, 상처가 너무 깊었거든. 피도 많이 흘린 채 시간을 오래 보냈고.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건 마사무네와 이에야스뿐이었어. 카네츠구의 죽음을 마사무네에게 전한 건, 급하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다테 일파와 아이겠지. 카네츠구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분위기는 싸해졌을 거야. 마사무네는 자기가 겪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말해 줬고, 혹시 또 마사무네를 노리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다테 일파는 입원한 마사무네를 열심히 지켜줬어. 같은 병원으로 실려 왔던 이에야스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어. 아마 노부나가 쪽에서 데려갔겠지.

   상처의 크기에 비해서는 비교적 빠르게 회복한 마사무네가 퇴원하고 바로 찾아간 곳은 카네츠구가 있는 곳이겠지. 묘지든 납골당이든 카네츠구는 우에스기와 함께 있을 거야. 우에스기 옆에 놓인 카네츠구의 이름을 보면서 마사무네는 조용히 그 이름을 불러 보겠지. 자기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던 목소리에 끝내 대답해 주지 않던 카네츠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거기서는 더 이상 무언가를 포기할 필요 없이 편하게 무언가를 바라고 욕심 내면서 잘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돌아서서 나오겠지 "다음에 또 올게." 하면서.


   사실 마사무네가 정신을 완전히 잃었을 때 카네츠구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였어. 마사무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카네츠구는 정장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쪽지를 꺼냈겠지. 짤막하게 무어라 적혀 있는 그 종이를 마사무네의 손에 쥐여 줬을 거야. 그래서 현장에 경찰이 도착했을 때에는 카네츠구가 마사무네의 주먹 쥔 손을 감싸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 그 쪽지는 아마 마사무네가 병원으로 실려오던 날 입고 있던 옷 주머니에 있었을 거야. 손에 쥐고 있던 걸 구급대원이든 의사든 누군가가 주머니에 넣어 놓은 거겠지. 그 쪽지는 다테 일파와 아이가 처음 마사무네의 병문안을 왔을 때 아이가 발견했을 거야. 마사무네의 옷을 챙겨 가고 새 옷을 가지고 오던 날이었겠지. 주머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놓던 중에 발견했어. 마사무네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쪽지는 아이가 잠깐 보관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마사무네가 처음 깨어나던 날 쪽지를 건네줬을 거야. 마사무네는 종이에 쓰여 있는 게 뭔지는커녕 쪽지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종이에 쓰인 글자가 카네츠구의 글씨체라는 건 알고 있었어. 카네츠구가 일하던 모습을 옆에서 많이 지켜봤었거든. 그러다가 문득 비밀번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카네츠구가 암호를 쓰는 곳이 있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노트북밖에는 없는 것 같았을 거야. 그래서 곧장 카네츠구의 집으로 가겠지.

   카네츠구의 집은 주인이 없어졌는데도 그대로였어. 카네츠구는 가족이 없으니까 아마 명의는 유키무라한테 넘어가도록 해 놨을 거야. 유키무라는 카네츠구의 소식을 듣고 한번쯤 집에 찾아온 적은 있었겠지만, 물건을 건드리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아무튼 마사무네는 조심스레 카네츠구의 침실로 들어섰어. 이 집은 많이 들락거렸지만 침실을 들어가 본 건 처음이라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지. 침대 옆의 협탁에 카네츠구의 노트북이 보였어. 마사무네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어. 쪽지에 쓰여 있던 의미 모를 문자들은 카네츠구의 노트북 비밀번호였던 거야. 암호를 풀고 폴더를 이리저리 뒤져보자 여러 가지 문서와 정보들이 나왔어. 그리고 그중에는 카네츠구가 마사무네에게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문서들도 많았지. 예컨대 노부나가의 계획에 관한 것들 말이야. 마사무네는 카네츠구가 남겨 놓은 그 문서들을 통해 노부나가의 계획과 그 계획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어. 노트북을 덮으면서 마사무네는 다시금 카네츠구를 떠올리겠지. 돌이켜 생각해 봐도 카네츠구는 마사무네한테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어. 그럼에도 카네츠구는 분명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었다고, 결이 다른 감정일지라도 카네츠구 역시 자신을 좋아해 줬을지도 모른다고, 마사무네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문득, 노트북에 새겨진 愛 자가 눈에 들어왔어. 그 위를 손가락으로 쓸면서 마사무네는 조용히 말했어.


   "고마워. 역시 나는 카네츠구가 좋아."


   그 뒤로는 다테 일파에게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겠지. 이번 싸움의 적은 노부나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싸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던 사람이야.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에게 제거되었지만, 마사무네를 얻을 수 없었던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와 이에야스가 가져온 마사무네의 피(일종의 샘플)을 통해 반쪽짜리 진성 현현자가 됐겠지. 하지만 다테 일파는 어떻게든 이겨낼 거야. 이 싸움에는 유키무라도 끼어들 거고, 미츠히데한테 이용당한 전적이 있는 우지나오도 참전했으면 좋겠네.

   카네츠구가 마사무네 앞에 나타나 싸웠던 그날, 노부나가는 검은 갑옷도 이미 완성했고 진성 현현의 힘을 완전히 빼앗을 방법도 찾았었어. 그래서 카네츠구를 보냈지. 마사무네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말이야. 어쨌든 검은 감옷은 완성되어 있는 상태였고, 다테 일파에 의해 궁지에 몰린 노부나가는 불완전한 현현의 힘으로 검은 갑옷을 사용하기로 했어. 처음에는 십여 년 전 못지않은 힘을 보여 주었지만 역시 한계가 왔겠지. 결국 노부나가는 자멸하는 결말을 맞게 될 거야. 그리고 다테 일파와 유키무라는 이런 비인간적인 실험과 그로 인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부나가의 아지트에 있던 모든 자료를 말소하겠지. 새로운 현현자를 만드는 방법은 더 이상 없고 진성 현현자라고 해도 세상에 묻혀 함께 살아가는, 그런 엔딩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