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편 이후 시점입니다. 우에스기 주종 관련 후반부 스포일러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백 제외 8,039자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점원의 인사말과 싸구려 풍경 소리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왔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제법 쌀쌀해진 공기가 뺨에 와 닿자, 미미하게 아린 감각이 올라왔다. 요즘 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졸음으로 곤혹스럽던 차에 이 정도 추위는 오히려 반길 만한 것이었다. 싸늘한 공기가 가져다주는 통각은 잠기운을 몰아내는 데 제법 효과가 있는 편이었다. 뭐, 그것도 조금 지나면 금방 적응해 버리는 탓에 곧잘 부질없는 일이 될 테지만.

   해는 아직 하늘의 꼭대기에서 내려올 생각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평일 한낮의 거리에 사람이 넘치는 시간이란 뻔한 것이었기에 굳이 시계를 확인할 것도 없었다. 온갖 음식의 냄새가 가게 문을 넘어 길거리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침으로 먹곤 하는 빵 몇 조각과 커피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위장이 난리를 피우고는 있었으나, 무언가를 먹을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급한 일이 있거나 바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안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는 졸음에 기름을 부어 주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사실 사무실을 나온 것은 허기만 가볍게 달래 줄 것을 사기 위함이었으나, 찬 공기를 맞으면서도 좀처럼 잠이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탓에 생각을 바꾸었다. 그렇게 조금은 충동적으로 산 것이 담배였다.

   담뱃갑을 한 겹 싸매고 있는 비닐을 벗겨내고, 딱 20개비 위로 덮여 있는 종이 뚜껑을 열며 손목을 털듯 가볍게 흔들었다.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딱 맞게 제 몸을 붙잡고 있던 종이 갑에서 벗어나 위로 툭 튀어나온 담배 몇 개비 중 가장 높이 솟아난 것 하나만을 뽑아내어 입에 문다. 그러는 중에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다리 덕에 몸은 담배에 불이 붙기 전 흡연 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칙, 작은 마찰음과 함께 일어난 불꽃이 궐련 끝을 물들였다. 담배를 끊은 지는 5년도 더 넘었으나,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손을 보니 한 번 밴 습관은 잘 빠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담배꽁초 몇 개가 버려져 있는 곳은 빛도 잘 들지 않아 미관상으로는 영 별로였으나, 늘 꼭 한 명쯤 자리를 잡고 있는 곳에 웬일로 사람 한 명 없는 것은 퍽 반가운 일이었다. 오늘이 유독 추운 날인 탓이라고 적당히 이유를 붙여 본다. 바람이 제법 매서운 날씨였으나, 구석에 박혀 있는 탓인지 이곳에는 바람도 잘 불어 닥치지 않았다. 좋다면 좋은 것이었으나,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을 뜨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잠이 오는 만큼, 입에 문 궐련을 깊게 빨아들였다. 오랫동안 손을 대지 않았어도 담배 연기의 찝찝함이나 매캐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담배는 흐리멍덩한 정신에 잠시나마 물을 끼얹어 주기엔 적당한 기호품이었다. 한번 끊은 것을 이런 이유로 다시 잡게 될 줄은 몰랐지만, 더 이상 금연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으니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었다.

   빨아들인 연기를 한 숨에 내쉬었다. 싸늘한 공기에 녹아 사라지는 한 모금의 연기를 보며, 피로한 눈을 잠시, 가볍게 감는다.


*


   사무실에 기침 소리가 잦아졌던 시기였다. 사무실에서만이 아니었다. 종종 외근으로 회사 밖에 있을 때에도 꼭 한 번씩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에 말을 멈춰야 하는 일이 늘었었다. 평소라면 두 명, 많아 봐야 세 명밖에 되지 않을 차 안에서도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으레 봄가을의 계절이 그렇듯 일교차가 조금 벌어졌던 때이기는 했어도, 그것 외에 다른 증상은 없었으니 감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우에스기 씨의 이야기다.


   “그리고 조만간…….”

   “콜록, 콜록.”

   “……우에스기 씨, 괜찮으십니까?”

   “크, 흠……. 별거 아니야. 신경 쓸 거 없어.”


   이런 식의 대화가 반복된 것이 어림잡아 일주일쯤은 되었었다. 이틀, 사흘 정도라면 신경이 쓰이더라도 별것 아니라는 말에 지나갈 수 있었겠으나, 주가 바뀌고도 증상이 멈추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랐다. 다행인 것이 있다면, 본인도 계속된 기침이 단순히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무어라 덧붙이려고 하던 부하의 말을 손짓으로 멈춘 후 그가 꺼낸 것은 약봉지였다. 언제나 손이 닿는 곳에 놓아두는 물병을 집어 들기 전, 그는 바스락거리는 약 봉투를 뜯어 몇 알쯤 되는 알약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한 손에 가볍게 들어오는 물병의 뚜껑을 연 것은 그다음이었다. 우에스기 씨는 물 세 모금가량을 넘기고서야 병뚜껑을 닫았다. 가득 차 있던 병에는 물이 반도 남아 있지 않았었다.


   “기침약인가요?”

   “뭐, 비슷해.”

   “병원에 다녀오셨던 겁니까? 말씀하셨으면 모셔다드렸을 텐데요.”

   “일일이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건 어린애나 그런 거지.”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렸던 것은…….”

   “사과할 거 없어.”


   기죽은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웃음 뒤로 몇 차례 마른기침이 이어졌다. 약효가 바로 돌 수는 없었어도, 약을 삼키기 위해 들이켰던 물 몇 모금은 제법 도움이 됐는지 기침 소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만 해도 꽤 여러 번 숨을 터뜨려야 했던 탓에 기도에는 꽤 부담이 갔던 모양이었다. 픽 웃던 흔적이 금세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인상을 찌푸린 얼굴뿐이었다. 턱 아래에 가져다 댄 손은 목을 달래듯 가볍게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채 가다듬지 못한 목소리는 다소 잠긴 음색이었다. 상대가 그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듯 아까 자신이 끊어 버렸던 말만 마저 이어 주기를 요구했다. 그 짧은 한마디의 행간을 바로 읽지 못한 탓에 무의식적으로 ‘예?’ 하고 되물을 뻔했으나, 그의 몸에 대한 염려가 반응을 한 박자 미뤄 준 덕에 미숙한 소리는 삼킬 수 있었다. 그의 물음 뒤로 잠시 텀을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음 주에 임원 회의가 있어 일단 보고서를 작성해 두었습니다. 이시다 씨에겐 애초에 전달했던 내용이니 사장님께서도 이미 확인을 하셨으리라 생각되지만, 회의의 형식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는 대답을 대신하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내려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물병으로 다시 손을 뻗었다. 물을 들이켜는 습관적인 행위가 화제 하나를 일단락 짓고 있었다. ‘확인은 안 하십니까?’ 목구멍까지 나오려 하던 말은 굳이 뱉지 않았다. 정확히 어느 때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그가 입버릇처럼 하기 시작한 말이 있었다. ‘카네츠구의 말대로다.’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습관처럼 툭 던지곤 하는 그 한마디는 단순한 긍정의 표시를 넘어선 언어였다. 부하가 제 판단과 선택의 과정을 설명하며 상사를 납득시키고 승인을 받아내야 했던 절차는 그 말버릇이 나타나면서 사라졌다. 전달받는 것은 결론과 결과로 족한 모양이었다. 그와 만난 지는 5년이 넘어가고 있었어도, 비서와 같은 위치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공유하는 관계가 된 지는 불과 1~2년밖에 되지 않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직급도, 인연도 한참 모자란 이에게 대부분의 일을 위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한 신뢰였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금방 빈 물병을 곧바로 새것으로 바꾸어 놓고,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가 심호흡을 겸하여 내쉰 한숨에 색색 긁히는 소리가 미세하게 섞여들어 있는 것은 애써 무시했다.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더 캐묻는 것은 실례가 될 것이었다. 미처 삼키지 못하고 새어 나가 버린 한숨은 키보드 소리로 가렸다. 입력한 값에 따라 변하는 그래프를 들여다보다가 잠시 힐끔 바라본 곳에서는 우에스기 씨 역시 마저 자신의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아까보다는 인상이 풀어져 있기는 했어도, 여전히 불편함이 다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터져 나오려는 숨을, 이번에는 삼켰다.

   서로 물을 것도, 확인받을 것도 없었으니, 입을 열 만한 일도 마땅히 없었다. 둘뿐인 사무실을 채우는 것은 달각거리며 눌리는 키보드의 축 소리와 손목 위에서 속닥거리는 시곗바늘 소리뿐이었으나, 어색함이나 불편함 따위에 방해받는 일은 없었다. 익숙한 적막 속에서 시계를 확인하지 않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나아간 시침은 어느새 다음 숫자로 넘어가 있었다. 아랫선에서 올린 서류를 검토하던 일도 끝난 참이었으니, 10분 정도 쉬어 가기에는 좋은 타이밍이었다. 노트북 화면에 맞추어 줄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턱을 하늘로 밀었다. 천천히 한 바퀴 머리를 돌리면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어깨 근육에 딱 기분 좋을 만큼의 통각이 일었다. 하아……. 시원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숨 좀 돌릴까.”


   그렇게 말한 사람은 목덜미와 어깨를 가볍게 매만지고 있었다. 마침 우에스기 씨도 무언가 일 하나를 마무리 지은 모양이었다.


   “그럴까요.”


   마저 대답을 듣지 않은 채 먼저 몸을 일으키는 그를 따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앞장 서 걸어 나가는 그의 손에는, 또 어느새 반쯤 비어 있는 물병이 들려 있었다.

   회사 내에 사무실을 벗어나 갈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몇 분가량의 휴식을 위한 공간은 사내에 마련된 휴게실 몇 곳과 옥상이 전부였다. 어느 곳으로 가든 상관없었으니, 그저 우에스기 씨가 원하는 곳으로 향할 따름이었다. 이번에는 옥상이었다. 굳게 닫힌 문이 열리자 하늘을 갈라놓은 듯 솟아난 마천루 몇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볕에 적당히 데워진 공기를 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제법 길어진 머리칼은 미풍에도 쉬이 날리곤 했으므로, 얼굴을 간질이기 전에 적당히 귀 뒤로 넘겨 정리했다. 으레 큰 도시가 그렇듯 바람에 실려 온 공기는 깨끗하다고 하기 어려웠고 푸르게 우거진 숲 따위도 볼 수 없는 곳이었으나, 온종일 서류와 모니터를 들여다봐야 했던 눈이며 지리함과 피로를 먹고 자란 졸음을 달래기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난간을 향해 걸어가며, 그는 늘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 두곤 하는 종이 갑 하나를 꺼냈다. 더 볼 것도 없이 담배였다. 가락가락이 길게 뻗어 있는 손은, 다른 손을 쓸 것도 없이 능숙하게 담뱃갑의 뚜껑을 젖혀 열었다. 엄지손가락에 밀려 올라간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을 때 그는 난간 위로 팔을 얹으며 멈추어 섰다. 그 끝에 불을 붙이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자신의 담뱃갑보다 먼저 꺼내 쥔 라이터를 그의 앞으로 가져다 대자 그의 눈동자에 불이 비쳤다. 그 위로 만족스레 연기가 피어오르고 난 후에야, 라이터를 쥐고 있던 손도 담배 한 개비를 쥘 수 있었다. 제법 푸른빛이 도는 하늘로 두 가닥 담배 연기가 올라갔다.

   헤진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연기의 무리를 올려다보며 뻑뻑한 눈을 몇 번인가 깜박이고 있을 때, 다시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린 것은 밭은기침 소리였다. 물병을 들고 있던 손이 연신 기침을 뱉는 입 앞에서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페트병은 난간 위에 놓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떨어질 것 같은 물건을 우에스기 씨 대신 손에 챙기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껐다. 아직 반 정도밖에 태우지 못한 궐련이었으나 아쉽지는 않았다.


   “우에스기 씨.”

   “신경, 콜록, 쓰지 마.”

   “하지만 역시…….”


   그는 또 무어라 비슷한 말을 하려던 듯했지만, 다시 시작된 기침은 좀처럼 멎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쿨럭거리며 기침 소리가 터져 나오는 동안 부질없이 혼자 타고 있던 담배가 필터까지 불씨에 침범당할 때에 가서도, 입을 가린 손은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에스기 씨, 일단은 담배를.”

   “쿨럭, 큼, 그래.”


   그의 손가락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타오르던 꽁초를 받아 불씨를 완전히 꺼뜨렸다. 불이 꺼지고도 담뱃잎에서 한참을 올라오는 연기처럼 그의 기침은 한참이나 이어졌었다. 이후로도 연거푸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는 그를 보다가 다시금 말을 꺼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꾸 여쭤보는 것이 실례가 되리란 것은 압니다만, 우에스기 씨, 편찮으신 곳이 있다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똑바로 눈을 맞추며 제법 강하게 대답을 요구하는 행위는 그에겐 별스러우면서도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주 닿아 오는 시선에 불쾌감은 보이지 않았었다. 보였던 것은 약간의 놀라움, 그리고 무언가 흥밋거리를 발견한 듯한 눈빛이었다.


   “그렇게나 신경 쓰고 있는 줄은 몰랐군.”

   “……우에스기 씨를 모시는 입장이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예. 그보다도, 몸은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혹시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은…….”

   “아아, 뭐, 지병 같은 게 있을 뿐이야.”

   “지병?”

   “가끔 이런 식의 발작이 있긴 해도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그렇습니까…….”


   까끌까끌한 플라스틱 뚜껑을 손안에 굴리며, 고개를 조금 떨구었다. 알고 싶었던 것을 모두 듣지는 못했으나, 이 이상 묻는다고 만족스러운 해결 방안 따위가 떠오를 것 같지는 않았다. 별것 아닌 화제인 것처럼 덤덤한 태도로 물음에 응해 주던 그는 얼추 대화가 맺어진 듯 보이자 잠시 미뤄둔 일을 처리하듯 입술 위로 물병을 기울였다.

   그가 말이 많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조용한 사람이라고 해도 술이 들어가면 말수가 늘기 마련일 텐데, 매일 저녁 함께하는 술자리에서도 그는 늘 과묵함을 유지했다. 그러니 아침부터 밤까지 줄곧 함께 있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1~2년밖에 되지 않는 시간으로는 많은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고, 부지에 대한 책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납득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부아가 치밀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은 상사의 비위 따위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불현듯 마주친 제 안일함에 그때의 자신은 분명 화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무심코, 예의를 차리는 것조차 잊은 채 말을 뱉어 버린 것인지 모른다.


   “우에스기 씨, 금연,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흠?”

   “호흡기 질환이 있으신 줄 알았다면 진작에 말씀드렸을 것입니다만…….”

   “그렇게 유난 떨 정도는 아니야.”


   아마도 그는 꽤나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의도가 나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테지만, 기호품은 개인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었다. 아랫사람이 멋대로 뻔하디뻔한 잔소리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주제였다. 사적인 영역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상사에게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지금도 그 말을 뱉은 데에 후회는 없었다. 물론 지금의… 아니, 일 년 전쯤의 자신이었다면 더 요령 좋게 말을 꺼냈을 테지만, 어차피 시기와 화법의 문제일 뿐 결국은 해야 할 말이었다.

   어쨌든 그때의 자신은 아직 어리숙했다. 그런 미숙한 사회인이었어도 제가 부주의하게 뱉어 버린 말이 그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뱉어 버린 말을 수습하기보다는 제 의견을 관철하기를 택했었다.


   “저도 끊겠습니다. 우에스기 씨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 드리도록 할 테니, 부디 진지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랫동안 피워 온 것을 단번에 끊는 일이 어려우리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를 위해 금연에 방해가 되는 주변 환경을 바꾸어 드리겠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을 터다.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한 말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으나, 그때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다. 말하자면 젊은 ― 사실 젊다기보다는 어린 ― 혈기만으로 밀어붙였던 셈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조급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불안감 탓에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붙이든 그저 변명이 될 뿐이리라. 어쨌든 그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에 마모되어 뭉개진 영상 속에서는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인상을 구기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동적으로 또 말을 뱉어 버린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머릿속 어느 부분의 톱니바퀴가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거름망조차 거치지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 큰 목소리가 아니었기에 바람 소리나 도시의 소음에 가려졌을 만도 하건만, 상대방에게는 확실히 들린 모양이었다. 말을 계속하라는 듯, 우에스기 씨는 고개를 조금 까닥여 보였다. 멈추었던 머리를 억지로나마 다시 굴려 보았으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애써 가다듬는 것이 고작이었다. 시간을 끌듯 한 차례 깊은숨을 쉬고, 이내 말을 계속하기로 했다. 분명 입 밖으로 뱉을 생각은 추호도 없던 이야기였건만, 아무래도 머릿속의 여과기가 고장이라도 났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에스기 씨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오늘따라 별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하는구나.”

   “…….”


   직설적으로 뱉기에는 꽤나 부끄러운 말이었기에 고개를 숙이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똑바로 눈을 마주해야만 할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좀처럼 읽기 힘든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답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어질 말이 가늠되지 않는 탓인지 공연히 조급함이 일었다. 다음 말을 기다리면서, 어쩌면 자신은 후회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작 몇 초밖에 되지 않을 시간이 어지간히도 길게 느껴졌었다. 꼭 억겁처럼 늘어날 것 같았던 시간을, 그의 말이 잘라냈다.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끝까지 피울 것을 그랬군.”


   말의 의미를 되묻기도 전에, 그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뱃갑을 꺼냈다. 이번에는 라이터도 함께였다. 아직 반의반도 비워지지 않았을 종이 갑은 내용물째로 쓰레기통에 떨어졌다. 무게도 얼마 되지 않는 물건은 바스락하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 조용히 버려졌다. 작은 통으로 떨어지는 물건들을 따르다가 다시 시선을 끌어올린 곳에는 몇 번 보지 못한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쉬움이라곤 전혀 없는, 더욱이 후련한 듯 보이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손에 묻은 담배 가루와 재킷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간다.”


   저를 바라보던 눈을 내려다보다가 그는 곧 눈길을 올리며 발을 떼었다. 망설일 것 없이 앞으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다리를 따라 뚜벅뚜벅 묵직한 구두 소리가 울렸다. 어깨 옆으로 지나치는 훤칠한 몸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그를 따라 걷기 전 자신도 재킷의 안주머니를 비웠다. 그리고 미련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플라스틱 뚜껑과 함께 쓰레기통 안으로 던져 넣었다. 무게가 느껴지지도 않았을 물건임에도 어쩐지 재킷이 가뿐해진 듯했다. 가벼운 몸을 돌려, 벌써 저 앞을 걷고 있는 등을 쫓았다. 버린 것들은 오랫동안 토막토막의 휴식을 함께했던 물건이었으나, 아쉽지는 않았다.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할 사람이 있었다.


*


   “어라라.”


   귀에 익은 목소리에 눈이 뜨였다. 얼마 감고 있지 않았음에도 눈꺼풀이 무거운 것을 보니 또 어느새 잠결로 빠진 모양이었다. 그래 봐야 1~2분쯤 지났을 터다. 콧대를 주무르며 뻑뻑한 눈을 달래자 서서히 선명해지는 시야 안에서는 가쿠란의 새빨간 빛이 회색 거리에서 유독 튀고 있었다. 굳이 얼굴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인지는 목소리만으로도 뻔히 알았다.


   “유키무라냐.”

   “이런 데서 자면 감기 걸릴걸.”

   “학생은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닌가?”

   “오늘은 땡땡이.”

   “아, 방학이라고 했던가.”

   “뭐야, 알고 있잖아.”


   심심풀이 삼을 말씨름을 원한다는 것쯤은 뻔히 보였으나, 그런 흐름에 어울려 주며 힘을 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재미없네. 들리라고 던지는 혼잣말에도 돌려줄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상대를 해 주지 않으면 떠나겠거니 했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아예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지간히도 한가한 모양이었다. 쯧, 혀를 차며 담배를 껐다. 어차피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새에 거의 다 타 버린 개비였다.


   “끌 필요 없었는데.”

   “다 피웠으니 껐을 뿐이야.”


   여전히 손안에 남아 있는 담뱃갑을 잠시 만져 보다가, 그대로 안주머니에 넣기로 한다. 원래 한두 개비쯤은 더 피울 생각으로 쥐고 있던 것이기는 했지만, 어린애 옆에서 담배질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적잖게 거슬리는 목소리에 몇 번 대꾸하는 동안 잠도 깨었으니 지금은 굳이 피우지 않아도 되었다.


   “담배 예전에 끊었었다고 들었는데, 다시 피우나 봐?”

   “그래.”

   “흐응, 스트레스라도 받는 걸까나.”


   시답잖은 말에 작게 코웃음을 쳤다. 흔히 기호품들이 그렇듯 처음도 지금도 별스럽지 않은 것을 계기로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유를 찾아 붙이는 것이 도리어 새삼스러운 일인 것이다. 끊는 데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을지 몰라도, 시작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몇 번의 고비가 왔던 때에도 몇 년간 독하게 피했던 것을 이제 와 다시 피우기 시작한 일에 이유를 붙이자면.


   “굳이 참을 이유가 없어졌을 뿐이야.”

   “음?”

   “간다. 심심하다면 이런 곳 말고 차라리 다테 마사무네 쪽에나 가 보는 게 어때.”


   셔츠의 깃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앉아 있는 녀석은 궁금한 것이 더 남아 있는 모양이었으나, 별것 아닌 호기심을 일일이 해소해 줄 만큼 친절한 성격은 못 되었고 그럴 사이는 더더욱 못 되었다. 뭐, 물어 온 쪽도 그렇게까지 궁금해하는 것이 아닐 게 뻔했다. 대화 상대가 사라진 그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듯했으나, 그 모습은 끝까지 보지 않은 채 돌아섰다. 일일이 인사를 주고받을 사이도 아니었다.

   빌딩의 입구 코앞까지 오니 공연스레 다시 흡연 욕구가 일었으나, 그냥 털어 버리기로 한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었다. …아니, 사실은 관성일 것이다. 참는 것은 줄곧 당연한 일이었다. 인내해야 했던 일이 그렇지 않은 것이 되었다고 한들, 이미 참는 것에 익숙해진 몸은 욕구를 따라 곧바로 뛰어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습관이었다. 아직까지도 말의 사이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들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놓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 이름과 함께 긍정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마는 것처럼, 아직은 완전히 없앨 수가 없는 습성인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더 참기로 한다. 애써 버리지 않아도 될 버릇이었으므로, 오늘까지는 참기로 한다. 가슴께에 닿아 오는 안주머니에 조금의 위화감을 느끼며, 재차 옷의 매무새를 정돈했다. 늘 입는 것임에도 오늘따라 유독 정장 재킷이 묵직한 듯했다. 딱 오늘 내려놓은 습관만큼의 무게가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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