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1. 권력을 이용한 강제적인 성관계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백 제외 1,835자




   “야, 아리타.”

   “네.”

   “너한테도 공포란 게 있나?”

   “…….”

   “너도 죽는 건 무섭나?”

   “…….”


   아리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대라는 집단에서 상관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런 시간만큼은 예외였다. 대장은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아리타를 찾았고, 멋대로 몸을 취했다. 그리고 매번 질리지도 않고 시시한 것들을 묻고, 떠들었다. 몸을 섞는 과정에는 분명히 강압과 명령이 있었지만, 부질없는 질문에 대답할 것까지 강요하지는 않았다. 대장은 질문에 대한 답을 바라지도, 제 말을 들어주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 듯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나, 아리타는 스테이시 앞의 자신과 비슷한 상태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편했다. 감정도 마음도 없고, 타인과 말을 섞는 일도 없으며, 몸을 요구하면 요구하는 대로 따른다. 편리한 스테이시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누가 스테이시에게 죽었다고 했다. 오늘의 화제는 분명 그 일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아리타는 결론을 내렸다. 아리타는 학자였다. 스테이시 도륙이라는 취미 탓에 일반 부대원과 비슷한 일도 겸하고 있기는 했으나, 그는 부대 구성원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위치는 아니었다. 얼굴을 외운 인물은 눈앞의 부대장과, 취미를 겸한 연구를 위해 스테이시를 빼 오는 창고의 창고지기뿐이었다. 대장은 종종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을 강요하곤 했기에 이름까지 알고 있었으나, 창고지기 쪽은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연구를 비롯한 일과 일상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에 무언가를 느낄 리가 만무했다. 죽음은 일상이었다. 사람의 죽음도, 이미 죽은 것의 죽음도 모두 일상이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하게 물들어 있는, 원래라면 새하얀 색이었을 천장을 보던 아리타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제 것임에도 제 것 같지 않은 몸뚱아리는 움직이지 말라며 아우성을 쳤지만, 그런 신체에 움직임을 강제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대장은 아리타를 힐끔 보다가 다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시선은 조금 전까지 아리타가 바라보고 있던 그 천장이었다.


   “가 보겠습니다, 대장님.”


   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관계를 끝낸 후 자리를 뜨려는 아리타를 종종 붙잡은 일도 있었으나 오늘은 그럴 기분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미처 끝내지 못한 분할 작업이 남아 있었다. 체육관에서 짐승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을 스테이시 몇몇을 떠올리니 손이 근질거렸다. 이런 몸으로는 스테이시에게 물려도 이상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스테이시란 지능 없이 달려드는 것이 전부인 시체일 뿐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오, 아리타. 웃는 거냐?”


   천장을 보고 있던 대장은 어느새 아리타를 향해 시선을 주고 있었다. 나는 웃고 있었던가. 흥미롭다는 듯 눈에 불을 밝히고 있는 대장에게 아리타가 다시 눈을 돌렸을 때는 이미 표정 같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곧 그 얼굴에는 또 다른 표정이 만들어질 것임을 아리타는 알았다. 어떤 얼굴인지 자신은 한 번도 본 일이 없으니 알 수 없었으나, 대장이 그런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 가학적으로 군다는 것도 알았다. 역시나 이해할 수는 없는 성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스테이시 앞의 자신과 같으리라 생각하기로 한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오늘 계획해 두었던 스테이시들과의 오붓한 시간은 뒤로 미뤄야 한다. 대장에게 다시 한번 잡히는 날은 온종일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이리 와.”

   “네.”


   자신의 것이 아닌 시트 위에 익숙하게 엎드리는 아리타의 목덜미로 대장의 뭉툭한 이빨이 파고들었다. 예고 없이 습격해 오는 통증에 퍼뜩 뛰는 몸을, 대장은 우악스러운 힘으로 내리눌렀다. 지금 아리타를 누르고 있는 손은 스테이시를 맨손으로 제압할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총도 칼도 라이더맨의 오른손도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대의 누구나 배워야만 하는, 말하자면 호신술 같은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써먹을 것은 아니었으나. 

   베개를 쥐어뜯고 있는 손을 보던 아리타의 머릿속에 문득 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죽는 게 무섭나?’ 그의 목소리는 마중물이 되어 시시하고 부질없는 생각들을 속에서 끌어올리고 있었다. 생살이 씹히고 있음에도 고통은 멀어져 가고 있었고, 잡스러운 생각들이 의식을 침범해 와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일단 살아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가. 165조각으로 토막나기까지 끊임없이 달려들기만을 반복하는 스테이시처럼, 몸이 비틀거려도 스테이시를 향해 달려들던 자신은 살아 있는 것인가? 동료가 죽어 나가도, 자신의 몸이 훼손되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이 상태를 살아 있음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아하하하, 아리타, 이렇게 보니 꼭 스테이시 같구나.”


   허브티의 향 대신 지독한 피비린내와 송장 냄새를, 은빛으로 반짝이는 인분(鱗粉) 대신 퀴퀴한 먼지와 시커먼 핏물을 뒤집어쓴 스테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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